[인물 포커스]‘대안문화학교 달팽이’ 이기원 교장

  • 입력 2004년 9월 7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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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시의 ‘대안문화학교 달팽이’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자연을 벗삼아 예술적 감수성을 키워 나가는 곳이다. 이기원 교장이 어린이들에게 농작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성=박주일기자
경기 안성시의 ‘대안문화학교 달팽이’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자연을 벗삼아 예술적 감수성을 키워 나가는 곳이다. 이기원 교장이 어린이들에게 농작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성=박주일기자
《“달팽이는 느려도 제 할 일을 다 합니다. 사람이 보기에 느릴 뿐이죠. 달팽이에게는 자연의 감수성이 있습니다. 달팽이는 테크놀로지의 대표격인 ‘골뱅이(@)’의 대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기 안성시 금광면. 안성 시내에서 승용차로 10분쯤 논길을 달려 들어가면 낮은 언덕 위에 금광면사무소 건물이 보인다. 면사무소 바로 옆에 ‘대안(代案)문화학교 달팽이’가 자리 잡고 있다. 언덕에서 보는 푸른 하늘과 들판은 그야말로 ‘자연’이다. 안성지역의 어린이 90여명이 이곳에서 매일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찍고, 발레와 바이올린도 배운다. 물론 마음대로 뛰어놀 수도 있다.》

이기원(李基元·48)씨는 2001년 5월 개교부터 ‘달팽이’의 교장을 맡고 있다. ‘달팽이’는 이 교장을 포함해 안성지역 예술가 등 100여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해 설립한 학교.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그가 교장으로 ‘뽑혔다’. 무보수다. 그는 틈틈이 사진 일을 해 생계를 꾸려 간다. 중앙대 사진학과 출신인 그는 원래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달팽이 학교에는 입학식도 졸업식도 없습니다. 학칙도 없어요. 어린이에게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입학해서 한달만 지나면 어린이들이 제 스스로 질서를 잡습니다. 어떻게 하면 다른 친구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학교생활을 할까를 깨닫는 거죠.”

대안학교이긴 하지만 ‘달팽이’는 정규학교 방과 후에 수업을 하는 시스템이다. 달팽이 학교의 목적은 뭔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입시 위주의 교육에 시달리는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문화, 예술교육을 통해 다양한 감성을 일깨워 주자는 것이다. 매년 2월 면접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는데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나 예술적 정서를 북돋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 학생들에게 우선권이 주어진다. 수업료가 싸기 때문에 학부모는 큰 부담이 없다.

이 교장이 ‘달팽이’ 학교를 구상한 것은 1994년 안성에 내려와 산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다. 그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과 도시 빈민을 위한 야학 활동을 했다. 빈민의 삶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던 그는 1986년 영화감독 여균동씨, 미술평론가 이영준씨 등과 함께 ‘사회사진연구소’를 만들어 문화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문민시대’의 문을 연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뒤 ‘할 일’이 사라졌다는 생각에 안성에 내려와 ‘은둔’을 시작했다.

“갑자기 전선(戰線)이 사라진 셈이지요. 개인 작업도 하고 영화일도 하다가 불현듯 ‘뭔가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발기인을 모으고 안성시청과 시의회에 지원을 요청했다. 농부인 한 시의원과 논두렁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설립 취지를 설명하고 설득한 일도 있다. 마침 안성지역의 레스토랑 겸 아트센터 ‘마노’가 건물을 빌려줘 2001년 학교를 열 수 있었다. ‘달팽이’의 활동을 눈여겨본 안성시가 이듬해 11월 각 층 100평 규모의 2층인 현재의 건물을 내주며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제 ‘달팽이’는 어린이 대안학교에서 영역을 넓혀 안성지역의 문화활동을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있다. ‘달팽이’는 성인을 위한 문화 워크숍과 중고교생 워크숍도 운영하고 있다. 이달 18일부터는 경기도문화재단과 함께 안성시민이 참여하는 ‘안성문화지도’ 만들기도 시작할 예정이다. 이는 안성지역의 문화 유적과 생활상 등을 시민 스스로 카메라에 담아 펴내는 ‘인문 지리지’로 12월 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고마운 분들이 많아요. 차비 수준의 강사료만 받고 봉사하는 강사들, 일이 있으면 기꺼이 나서서 몸으로 도와주는 지역 주민들, 시 당국을 비롯한 각종 단체의 지원 등. 그런데도 여전히 재정이 부족합니다. 틈만 나면 지원을 호소하는 것이 교장의 할 일이죠.”

이 교장은 ‘달팽이’를 장차 ‘시립예술학교’로 전환해 제도화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내면에 숨어 있는 ‘미래의 감수성’을 키우는 것은 결국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서다.

안성=주성원기자 swon@donga.com

▼이기원 교장은…▼

▽1956년 대구 출생

▽1982년 중앙대 사진학과 졸업

▽대학 재학 중 학생운동과 도시빈민 야학운동에 참여

▽1986∼92년 사회사진연구소 소장, 문화운동 전개

▽1994년 안성시 정착

▽2001년 5월 대안문화학교 ‘달팽이’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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