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아크로폴리스]<21>성장과 분배 우선순위는

  • 입력 2004년 6월 9일 18시 17분


코멘트
《성장과 분배는 정치·사회 분야에서의 자유와 평등처럼 경제의 방향을 이끌어가는 두 축이다. 하지만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소득불평등은 급격히 심화됐고, 성장률도 60∼70년대 고성장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졌다. 이제 한국사회는 잠재성장률을 높여나가는 동시에 빈부격차를 줄여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 신도철 숙명여대 교수(49·경제학), 한승희 재정경제부 경제홍보기획단장(47·경제학 박사), 김성주씨(18·연세대 사회계열 1년), 김은지양(18·경기 부천북고 3년)이 최근 ‘성장과 분배’의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성장을 통한 분배

▽신도철 교수=장기적으로 보면 국민후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바로 생산성의 증가를 가리키는 경제성장입니다. 그런데 경제성장이 잘 되려면 열심히 배우고 일하고 기술을 개발하려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적 장치가 잘 돼 있어야 해요. 시장경제가 계획경제보다 성공을 거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사유재산권제도, 계약의 자유 등을 기반으로 한 시장의 존재에 있지요. 그리고 자유무역과 대외개방도 성장에 기여하는 주요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분배란 기본적으로 시장이 잘 돌아가서 그 결과로 나오는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열심히 일하려는 의욕이나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창조적 자발성이 손상되지 않을 거예요. 다만, 노약자처럼 시장에 참여하기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정부의 배려는 필요하죠.

▽김성주=성장과 분배는 조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차가 굴러가는 데도 양쪽 바퀴의 균형이 중요한 것처럼요. 하지만 정부는 기업들의 성장을 촉진하는 것보다 분배에 더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요.

▽김은지=제가 보기엔 현 정부가 이미 분배 쪽에 많이 치중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기업에서 세금을 많이 거둬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배하려 한다는 인상을 줘요. 성장과 분배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요.

▽한승희 단장=성장과 분배는 서로 상충되는 것만은 아닐 거예요. 현 정부도 성장과 분배는 선택의 문제도, 선후(先後)의 문제도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양자가 조화를 이루도록 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일자리 창출이 가장 효과적인 분배라는 생각에서 성장을 통해 일자리를 많이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죠. 지방 균형발전 정책 같은 것도 결국 지역별로 특화해서 전체 국가경제의 성장을 도모하자는 거죠. 분배 문제는 그 과정에서 자연히 해결되는 겁니다.

▽신 교수=시장의 결과로 나타나는 빈부격차를 교정하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도 적지 않아요.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의 사회보험, 누진적 성격을 가진 세제, 기초생활보장법, 교육에 대한 지원 등 아주 다양하지요. 우리나라의 제도는 아직 개선의 여지가 상당히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전체 세금에서 누진적인 성격이 강한 직접세의 비중을 높이고, 대신 시장거래의 활성화를 위해 거래 관련 세금은 낮출 필요가 있어요.

●실업 해소를 통한 분배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김성주=대학생인 저에게 당장 시급한 분배 문제는 청년실업 해소예요. 청년실업이 50만∼60만명이나 되는 상황은 노동시장이 활성화되지 않고는 해결이 안 될 거예요. 그런데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이 연세대에 와서 강연할 때 이 문제에 대해 “조금만 기다리십시오”라고만 이야기하더군요. 현 정부의 노동시장활성화 정책이 대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신 교수=실업은 고용하려는 수요는 적고 일할 사람은 많아서 생기는 것이죠. 이런 현상은 임금이 어떤 이유에서건 시장균형보다 높기 때문에 생긴다고 할 수 있어요. 정규직으로 고용하자니 임금이 너무 높고, 일자리를 못 구하는 사람은 그보다 적은 돈을 받고라도 일을 해야 하니까 비정규직도 생기는 거예요.

▽한 단장=전체 실업률이 3% 수준인데 청년실업률은 7∼8%로 두 배에 이르고 있습니다. 기업은 숙련노동자나 경력자를 더 쓰려고 하는 데 반해, 일을 구하는 사람들은 좀 더 괜찮은 자리만 찾으려 해요. 중소기업은 계속 일손이 부족하다고 난리예요.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정부는 중소기업의 근무여건 개선을 위해 지원하고 대기업도 인턴사원제 등을 활용해서 청년 고용을 늘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 활성화를 통한 분배

▽김은지=지금까지 정부의 경제정책이 너무 대기업 위주로 진행돼왔기 때문에 빈부격차가 커진 듯해요. 중소기업을 발전시켜야 분배도 더 골고루 되고 경제가 탄탄해지는 것 아닌가요. 게다가 최근에는 기업들이 해외로만 진출해서 공장을 지어 산업공동화(空洞化)까지 급속히 진행된다니 그나마 있는 국내 자산마저 외국으로 다 빠져나가는 게 아닌가 걱정돼요.

▽한 단장=변화에 대응하는 신축성 등에서 볼 때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유리합니다. 그만큼 중소기업의 중요성도 더 커질 거예요. 그런데 중소기업도 한국에서 유지 못하겠다며 중국이나 동남아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임금이 높다는 것인데, 기업하는 사람이 생산비용이 낮은 데로 가는 거야 당연한 일이죠. 그래서 국내에서는 차세대 첨단산업을 키우고 전통 제조업에 정보기술(IT) 같은 첨단기술을 접목시켜 고부가가치화해 나가면서, 고용창출능력이 높은 서비스업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신 교수=그 방향에 동의해요. 이제 한국경제를 생각할 때 국내 시장만이 아니라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둬야 할 것 같아요. 우리 생산물에 대해 수요가 많은 지역에는 수출만 할 것이 아니라 직접 현지생산까지 해서 돈을 벌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세계시장에서 값싸게 수입해서 사용하면 되지요. 좀 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해요.

정리=김형찬기자 khc@donga.com

▨성장과 분배 이해를 돕는 책

▽경제성장론(김신행 지음·경문사)=대표적 경제성장 모형들을 설명한 이론서. 한국을 비롯해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신흥공업국들의 지난 30년간 경제성장을 성장모델에 대입해 설명.

▽한국경제성장사(안병직 엮음·서울대출판부)=한국경제의 전개과정을 경제성장사학의 관점에서 정리. 시장경제가 원활히 작동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형성돼 온 과정, 한국경제가 직면해 온 과제들에 대한 정부의 산업정책적 대응 등에 초점을 맞춤.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 전망:2003∼2012(한진희 최경수 지음·한국개발연구원)=1981∼2000년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 변화추이에 대한 분석을 기초로 2003∼2012년의 잠재성장률을 전망. 아울러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을 좌우할 요인을 파악함으로써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한 정책 방향을 제시.

▽소득분배의 이론과 현실(이준구 지음·다산출판사)=불평등 발생의 원인, 불평등도의 지수, 재분배정책의 성격과 한계, 소득분배의 추이 등 소득분배와 관련한 이론적 정책적 문제들을 체계적으로 다룸.

▽소득분배 국제비교와 빈곤 연구(유경준 김대일 지음·한국개발연구원)=한국의 소득불평등도와 빈곤율의 변화추이를 국제 비교를 통해 조망. 아울러 그 변화의 원인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정책적 시사점을 끌어냄.


한승희 단장, 김성주씨, 신도철 교수, 김은지양(오른쪽부터)이 서울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옥상에서 한국경제의 상징처럼 보이는 고층빌딩 숲을 배경으로 자리를 함께했다. 이들은 “분배는 시혜로서가 아니라 경제성장을 통해 지속적·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김동주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