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고 싶은 2004과학기술인]<9>표준과학연구원 문대원박사

  • 입력 2004년 6월 1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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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 문제 풀이과정을 설명할 사람! 문대원, 네가 대답해 볼래?”

“저, 그건….”

결코 몰라서 머뭇거린 게 아니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나노표면연구그룹의 문대원 박사(52)는 고등학교 시절 수학선생님이 질문하면 떨려서 아는 것도 답을 못했을 정도로 겁 많고 조용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유쾌한 성격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점점 더 어두워졌어요. 가뜩이나 수줍음도 많이 타는데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밝아지려고 노력했죠. 지금 그 시절 친구들을 만나면 성격 정말 변했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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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마저도 의지를 가지고 변화시킨 셈이다. 이런 적극적인 자세 덕분에 과학의 여러 영역을 넘나드는 과감한 도전의식이 생겼다.

문 박사는 20여년 동안 물리학 화학 재료공학의 집합체인 표면과학을 연구했다. 당구공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지그재그로 여러 줄 놓여있다고 하자. 여기에 당구공을 치면 어디선가 맞고 튕겨나온다. 마찬가지로 물체의 표면을 구성하는 여러 층의 원자에 수소원자를 충돌시키면 튕겨나온다. 이때 어느 층에 부딪히느냐에 따라 발생하는 에너지가 다르다. 이를 측정하면 수소원자가 어디서 튕겨나왔는지, 원자들이 어떻게 배열돼 있는지 알아낼 수 있다.

“우리나라 주력 산업인 반도체 분야에서도 표면과학은 매우 중요해요. 미세한 회로를 만들기 위해 반도체 소자 표면에 붙이고 깎는 일을 반복하기 때문이죠. 소자가 작아질수록 성능은 표면 상태에 더 민감해질 수밖에 없어요.”

문 박사는 지난해 반도체에서 불순물을 측정하는 기술의 국제표준을 만든 연구성과를 인정받아 올해 3월 물리·화학·재료 분야의 세계적 학술지인 ‘고체물리 재료과학 리뷰’ 편집위원으로 선임되는 영예를 안았다.

그의 한국표준과학연구원과의 인연은 남다르다. 미국 유학 전에도 연구원으로 일했고,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도 때마침 표준과학연구원에서 표면과학 분야에 수억원의 연구비를 투자하겠다는 제의를 받은 것. 망설임 없이 귀국해 연구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물론 시련도 있었다. 물체 표면의 원자를 관찰하는 연구실 3배 크기의 장비가 반쯤 완성된 상태에서 뜻하지 않은 화재가 발생해 고스란히 잿더미가 돼버린 것.

“꼬박 보름 동안 손으로 그을음을 닦아냈죠. 한마디로 ‘죽을 맛’이었어요. 다행히 보험으로 3억원가량의 손실을 보상받고, 새로운 기계를 설치했죠.”

이 사건을 계기로 더욱 심기일전한 문 박사는 식당에서 줄을 서는 시간조차 아까워 도시락을 싸오면서 연구에 정열을 쏟았다. 자다가도 일어나 꿈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메모해 놓곤 한다고.

“여러 분야 과학자가 모여 서로에 대해 칭찬과 질타를 하며 연구할 수 있는 한국에서 태어난 게 행운이죠. 덕분에 매일매일 과학자로서의 자부심을 느껴요.”

문 박사는 2003년부터 표면과학과 나노과학의 측정기술을 생명과학 분야에 적용하는 ‘나노·바이오 융합 사업’의 사령탑을 맡았다. 이 과제에 도전하면서 그가 내건 슬로건은 ‘노(no) 벤치마킹’이다. 기존 사례들을 보지 않아야 새로운 연구영역을 선점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신념.

“과학기술계에도 젊은이들의 모델이 될 만한 인물이 필요해요. 저 정도면 연구에 한번 도전해 보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성공한 과학자가 10명만 나와도 이공계 기피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겁니다.”

문 박사는 현재 연구원에서 원장보다 높은 최고액의 연봉을 받는다. 그의 희망대로 젊은이들이 과학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다시 태어나도 과학자가 되겠느냐는 질문에 거리낌 없이 “물론이죠. 역시 표면과학을 연구할 겁니다”라고 대답하는 문 박사는 한국 과학계의 ‘표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기자 sohyung@donga.com

▼문대원 박사는▼

1952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때 훈련도중 수류탄을 덮쳐 전우를 구한 소령의 얘기를 듣고 육군사관학교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쳤다. 생각을 바꿔 물리학과 열역학 분야에 푹 빠져 지내다 서울대 화학과로 진학했다. 하지만 손에서 물리책을 놓지 않아 물리학에서 물리학과 학생들보다 좋은 성적을 받았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1984년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현재까지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을 떠나지 않고 있고 연구원을 마치 자신의 집처럼 여긴다. 1999년 호주국립대 전자재료과 방문연구원, 2001∼2002년 미국 일리노이대 재료학과 초청교수로도 활동했다.

▼청소년에게 한마디▼

청소년은 우리나라의 가장 소중한 자원이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라. 그러면 어느새 자신이 성공한 과학자의 모델이 돼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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