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고 싶은 2004과학기술인]<4>테라급 나노사업단장 이조원 박사

  • 입력 2004년 5월 11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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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소자 연구로 정신없이 바쁜 이 단장은 주말에 혼자 산행을 하며 사색에 잠길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센티멘털리스트이기도 하다.-사진작가 박창민
나노소자 연구로 정신없이 바쁜 이 단장은 주말에 혼자 산행을 하며 사색에 잠길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센티멘털리스트이기도 하다.-사진작가 박창민
킬로, 메가, 기가….

각각 1000배, 100만배, 10억배를 뜻하는 단어이다. 그렇다면 기가보다 1000배 큰 값인 1조배를 뜻하는 단어는 무엇일까. 바로 테라(tera)다. 그리스어로 1조를 뜻하는 테라는 수식에서는 1012를 의미한다. 반대로 작아지는 방향의 단어는 어떤 게 있을까. 밀리, 마이크로, 나노가 있다. 각각 1000분의 1, 100만분의 1, 10억분의 1을 뜻한다.

그런데 반도체기술에서는 이들 접두사간에 묘한 상관관계가 있다. 트랜지스터를 비롯한 반도체를 이루는 기본소자의 크기가 작아질수록 정보를 처리하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테라헤르츠의 속도, 즉 1초에 1조번 이상의 연산을 처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노미터 수준으로 반도체소자의 스케일을 줄여야 한다.

1999년 삼성종합기술원에 근무하던 이조원 박사가 이 일을 해보겠다고 나섰다. 이듬해 이 박사는 ‘테라급나노소자개발사업단’의 수장이 돼 지난 4년간 1021이라는 엄청난 스케일의 차이, 즉 테라와 나노를 오가며 연구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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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장은 모시로 유명한 충남 서천군 한산면에서 태어났다. 주변에 금강을 비롯해 수려한 경치가 많아 어린 시절 맘껏 자연을 즐기며 보냈다고. 이러다보니 암기 위주인 학교공부에는 별 취미가 없었고 결국 대학 진학에도 실패한다.

“제 어릴 때 별명이 진드기였어요. 뭐라도 한번 관심을 갖게 되면 끝까지 물고 늘어졌으니까요. 그런데 무조건 외우는 공부는 정말 지겨웠습니다.”

하지만 이 단장은 어렸을 때의 꿈인 ‘연구원’이 되기 위해서는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여 열심히 재수생활을 했다. 덕분에 당시 학원강사 중 1명이 ‘전망이 밝다’며 추천해 준 금속공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에서도 암기식 교육의 연장일 줄은 몰랐습니다. 다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가고 싶었죠.”

공부에 취미를 붙이지 못한 이 단장은 결국 2학년을 마치고 방황하는 젊은이의 피난처인 군대에 들어갔다.

“제대 후 복학해서는 취직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억지로 공부했습니다.”

다행히 졸업과 함께 국방과학연구소에 들어간 이 단장은 이곳에서 일하며 유학을 준비하게 된다. 본격적인 연구를 하다보니 암기로는 습득할 수 없는 진짜 ‘실력’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12년간 미국에 머무르면서 정말 맘껏 연구했습니다. 제 인생의 전성기였죠.”

이 단장은 박사과정에서 투과현미경으로 처음 금속원자를 봤고 1990년에는 IBM 잡슨연구소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이때 벌써 IBM에서는 기존 메모리소자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 돌파구로 나노기술을 생각하고 있더군요.”

1992년 귀국한 이 단장은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삼성경영진들에게 나노기술의 중요성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1996년 나노소자팀을 만들어 본격적인 연구에 뛰어들어 국내 나노기술의 선봉에 선 이 단장에게 또 한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1999년 나노기술 관련 21세기프런티어연구개발사업의 공고가 났던 것. 10년간 1700억원이 투입되는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이 단장은 자신의 비전이 한 기업을 넘어 국가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회사에서도 저의 의도를 적극적으로 밀어줬습니다. 나노기술은 산학연이 공동으로 참여해야 결실을 거둘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죠.”

지난 4년간 이 단장이 이끄는 사업단은 ‘테라비트급 단전자 메모리 개발’ 등 테라시대를 가능하게 할 나노소자를 속속 만들어 내고 있다. 현재 사업단에 참여하고 있는 500여명의 연구자 중 박사급만도 150여명이다. 이 단장은 “프로젝트가 끝나는 2010년에는 10여명의 세계적인 과학자를 배출하는 게 목표”라고 귀띔한다. 우수한 인재를 알아보고 그들이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도 자신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을 다지기 위해서일까. 이 단장은 철강왕 카네기의 묘비명을 늘 마음에 되새긴다.

“여기 자신보다 현명한 사람을 주위에 모으는 기술을 알고 있었던 한 인간이 잠들다.”

강석기 동아사이언스기자 sukki@donga.com

▼이조원 단장은▼

1952년 충남 서천군 한산면에서 1녀4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초중고교를 시골에서 보낸 후 1971년 한양대 금속공학과에 입학했다. 연구원 생활을 하던 1980년 유학을 떠나 198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금속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 삼성종합기술원에 입사 후 신소재연구실장을 지냈고 2000년 테라급나노소자개발사업단 단장에 임명됐다. 현재 국가나노기술전문위원회 위원, 나노기술연합회 부회장, 한영나노기술포럼 한국측 대표, 나노기술정보자문위원장, IMS-나노기술 국제운영위원 등을 맡고 있다.

▼청소년에게 한마디▼

꿈과 도전의식을 가져라! 도전하면 반드시 꿈은 이루어진다. 눈높이를 올리고 세상을 조금만 다르게 보면 그 꿈이 내 손 안에 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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