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송민순/"자랑스러운 외교관 더 많아요"

  • 입력 2003년 12월 19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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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순
필자는 석 달 전까지 주폴란드 대사를 지낸 외교관이다. 일부 우리 외교관들의 부끄러운 행태가 보도되고 있기에 외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실상과 심경을 말하고자 한다.

비록 일부라 할지라도 외교부 내부통신망에 뜬 그런 일이 있다는 데 대해 우선 부끄럽다. 그렇지만 우리 국민들이 너무 상심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한국의 많은 외교관들은 나라의 위상을 올리고, 해외투자를 끌어오고, 재외동포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런 외교관들이 공사를 구분 못하고 부끄러운 처신을 한 외교관보다는 비교가 안될 만큼 많다.

우리 외교관 중에는 정보를 찾아 헤매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 라면으로 저녁을 때우는 이도 적지 않다. 우리 기업의 애로 현장을 찾아가기 위해 험한 길을 하루에 1000km씩 달리기도 한다. 상대방에게 우리의 의지를 보이기 위해 아픈 허리에 요대를 찬 채로 자리에서 꼼짝 않고 7, 8시간씩 협상을 하기도 한다.

외교관은 국가의 이익을 보호하고 증진시킬 때 보람을 찾는 직업이며, 이 보람은 공직에서 추구할 수 있는 다른 어떤 가치와도 타협할 수 없는 것이라고 늘 생각해 왔다. 후배들에게도 돈이나 권력에 우선순위를 둔다면 그에 맞는 다른 직업을 찾으라고 충고해 왔다.

그러나 다짐과 의욕은 있지만 총체적 의미에서의 외교 능력이나 도덕 수준에서 늘 모자람이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 수백 년의 외교 전통과 축적된 힘을 가진 선진국의 외교관들과 어깨를 겨루면서 내면적 열등감이 생기지 않도록 발버둥도 쳤다.

경위와 이유가 어떻든 외교관들이 잘못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잘못에 대해서는 응분의 벌을 받을 것이다. 외교부의 대다수 동료들이 이와 비슷한 심정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자식들이 다른 집 자식들보다 잘 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있을까. 우리 국민이 밖에 나가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들을 바라보는 눈이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충고와 매질은 아프지만 약이 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대다수 외교관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나라에 대한 열정만은 살려줬으면 좋겠다.

송민순 경기도 국제관계 자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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