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秘話 국민의 정부]<44>5부②세무조사의 노림수

  • 입력 2003년 11월 12일 17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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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래(오른쪽에서 두번째) 당시 서울지방국세청장이 132일 동안의 세무조사를 마친 뒤 그해 6월 20일 국세청 간부들과 함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손영래(오른쪽에서 두번째) 당시 서울지방국세청장이 132일 동안의 세무조사를 마친 뒤 그해 6월 20일 국세청 간부들과 함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세무조사는 꼭 세금을 걷기 위해서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지도층의 기강 확립을 위해서도 실시할 수 있는 것이다.”

국세청이 언론사 세무조사 계획을 발표한 지 꼭 일주일 뒤인 2001년 2월 6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 출석한 안정남(安正男) 당시 국세청장은 세무조사 배경을 묻는 의원들의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그의 발언은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포함한 그 누구와도 사전 상의하지 않고 독자 결정한 것이다”는 정부의 공식 입장과는 뉘앙스가 다른 것이어서 미묘한 파문을 일으켰다.

이날 회의에 참석했던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의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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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여권 전체가 나서 세무조사는 정치적 배경 없는 단순 조사에 불과하다고 설명하기에 바쁜 상황이었다. 그런 마당에 안정남 청장이 ‘지도층 기강 확립’ 운운하며 세무조사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했던 만큼 우리 입장에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안정남 발언 파문 이후 청와대와 여권 관계자들은 언론 세무조사에 대한 언급 자체를 회피하기 시작했다. 언론 세무조사 기간동안 정권 관계자로부터 나온 관련 언급은 DJ가 ‘국민과의 대화’(3월 1일)에서 “(세무조사를 놓고) 언론 길들이기 이야기가 나왔는데 분명히 언론 길들이기는 하지 않는다. 지금 세무조사를 하지만 언론이 얼마나 자유롭게 (정권을) 비판하는가”라고 말한 것 정도가 거의 전부다.

하지만 2월 8일부터 시작된 국세청의 언론 세무조사는 ‘정권의 의도’를 충실히 반영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900여명의 서울지방국세청 직원 중 400여명을 동원해 23개 중앙언론사를 대상으로 132일 동안 실시한 세무조사가 끝난 뒤 손영래(孫永來) 당시 서울지방국세청장은 6월 20일 TV로 생중계된 조사 발표를 통해 5056억원의 세금 부과 방침을 발표했다. 이 중 절반이 넘는 2541억원은 동아 조선 중앙일보에 부과된 것이었다. 이와 함께 동아 조선 등 몇 개 언론사 사주가 검찰에 고발됐다.

동아 조선 중앙일보에 대한 세무조사는 다른 언론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혹독했다. 국세청은 특히 3개 언론사에 모든 간부들의 인적사항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고 몇몇 특정인의 금융 계좌는 10년 전의 자료까지 ‘저인망 조사’를 폈다.

조사 규모도 여타 매체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동아 조선 중앙일보에는 40여명씩의 조사반을 투입해 4개월이 넘도록 조사를 한데 비해 H, M사 등에는 7, 8명의 조사 인력만 투입해 두 달 만에 조사를 마치고 철수시켰다.

국세청은 당시 연간 10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A기업에 대한 세무조사에 15명의 조사인력을 투입했고, 연 매출액이 역시 수조원에 달하는 B기업도 8명이 투입돼 두 달 만에 조사를 마치기도 했다. 연 매출액이 수천억원에 불과한 동아 조선 중앙일보에 이들 대기업보다 훨씬 더 많은 인력과 기간을 투입해 세무조사를 했다는 사실은 언론 세무조사에 정권 차원의 의지가 작용했음을 뒷받침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세무조사 결과가 발표되고 세금추징 및 관계자 사법처리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정권측 인사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세무조사 관련 사항은 무조건 함구하던 태도를 벗고 언론계에 대해 적극적인 발언을 시작했다. 세무조사 기간 동안 접촉을 삼갔던 언론계 인사들, 특히 국세청의 집중 타격 대상이었던 동아 조선 중앙일보 관계자들에 대해 다양한 방식의 접촉이 시도됐다.

언론계 중진 C씨의 증언.

“세무조사 결과 발표 뒤인 그해 7월 서울 신문로의 H한정식 집에서 여권 핵심 모씨를 만났더니 ‘당신 회사 요즘 어렵겠다. 그런데 지금 상태로 제대로 갈 수 있겠느냐. 어차피 시대의 흐름이라는 게 있다’며 우리 회사 편집국장 교체 문제를 거론해 깜짝 놀란 일이 있다. 그런데 그의 말로는 박지원(朴智元) 당시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이 다른 언론사 편집국장 X씨를 거론하며 ‘X가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입사 동기뻘 되는 다른 사람이 맡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C씨는 “정권 관계자가 국세청 세무조사가 끝난 만큼 본격적으로 거래를 통해 그 ‘성과’를 챙기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여권 핵심인사들과 선이 닿는 인사들이 ‘충고’ 형식으로 언론사에 정권 내부 기류를 전하기도 했다. 한 언론사 간부는 7월 중순경 정권과 가까운 호남 출신의 한 법조인을 만난 자리에서 “지금처럼 했다가는 회사가 오래 못가는 것 아니냐. 아무리 그래도 정권은 정권이다. 편집국장은 물론 주필까지 바꿔야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들이 많더라”는 말을 듣고 황당했었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정권과 그 주변 인사들의 이런 움직임은 세금추징과 관계자 사법처리를 무기로 비판언론에 대해 본격적으로 영향을 행사하려는 시도로 해석됐다.

언론의 입장에서는 정권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이 같은 직간접적인 압력을 수용할 수 없었다. 당연히 언론과 정권의 관계는 세무조사 이후 더 악화돼갔다. 시민단체와 일부 친정부 매체 등은 세무조사 결과를 두고 “공정 조세를 통해 언론개혁의 단초를 마련했다”고 지지론을 폈지만 여론주도층을 중심으로 ‘세무조사는 결국 비판 언론 말살책이었다’는 비판여론도 강하게 대두됐다.

결국 정권측은 각계 인사들과의 소규모 간담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세무조사 결과 홍보에 나섰다. 이해 8월 초 어느 날 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실의 K비서관이 KBS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 제작진 및 진행자들을 초청해 마련한 비공식 오찬 간담회도 그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언론 세무조사의 당위성을 설명하던 K비서관과 프로그램의 여성 진행자 D씨간에 예기치 않은 논쟁이 벌어졌다.

▽K비서관=이번 세무조사는 언론개혁의 중요성을 절감케 한 계기가 됐다고 보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D씨=그런데 하려면 정권 초기에 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언론들이 정부를 좀 비판했다고 지금 와서 수천억원씩 세금 물리고 검찰에 고발하고 하는 데, 사람들은 나라님이 시켰다고밖에 안 보죠.

▽K비서관=그렇지 않습니다. 이번 세무조사는 아무런 정치적 의도 없이….

▽D씨=내 주변 아줌마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던 데요.

결국 이날 간담회는 당초 의도와 달리 논쟁만 벌이다 서먹한 분위기로 끝났다.

곳곳에서 반발에 부닥치면서도 정권이 홍보작업을 강행한 것은 세무조사를 통해 모처럼 맞은 호기를 ‘언론개혁’으로 연결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었다. 당시 민정수석비서관실의 한 관계자는 “얼마나 어렵게 한 세무조사냐. 이런 모멘텀을 잃어버리면 다시는 언론 개혁의 기회가 없다는 분위기가 내부적으로 팽배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8월 5일 신광옥(辛光玉) 당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기자간담회에서 “언론이 본연의 자세로 가야한다. 언론사 사주는 사주로만 남고 언론이 본연의 정도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언론개혁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권의 구상과 달리 언론 세무조사의 ‘약효’는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국세청이 신문의 무가지 제공을 접대비로 간주해 법인세 수백억원을 부과한 것이 세무조사 결과 발표 한 달여 만에 국세심판원의 판결로 무효 처리됐다. 언론사 세무조사에 비판적이었던 공인회계사 M씨는 “국세청이 발표한 추징세액은 이것저것 다 합쳐 최대한으로 세금을 늘린 결과”라며 “국세청이 고 정주영(鄭周永) 회장의 대선 출마 실패 후 92년 현대그룹에 추징했던 1361억원의 세금이 2년 뒤 161억원으로 줄어든 사건을 연상케 한다”며 국세청의 세무조사 자체가 무리하게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9월에는 국제언론인협회(IPI)가 현지 실사를 거친 뒤 우리나라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유일하게 언론탄압감시대상국(watch list)에 포함시키는 등 대외 환경도 정권에 점차 불리해졌다. 오홍근(吳弘根) 국정홍보처장은 요한 프리츠 IPI 사무총장과 서신 공방을 벌이는 데 상당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세무조사 주역 안정남-손영래▼

2001년 당시 국세청장과 서울지방국세청장으로 언론사 세무조사를 주도했던 안정남과 손영래는 이후 각각 건설교통부장관과 국세청장으로 영전했지만 비리와 추문에 연루돼 명예롭지 못하게 공직에서 물러났다.

99년 국세청장 취임 당일 오전3시에 강화도 마니산에 올라 “정도 세정을 다짐했다”고 밝혔던 안정남은 2001년 세무조사 직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수십억원대의 ‘안정남 패밀리 타운’을 조성한 사실이 드러나 구설에 올랐다. 그는 또 신승남(愼承男) 전 검찰총장의 동생이 관련된 감세 청탁 의혹에 연관되기도 했다.

언론 세무조사를 마친 뒤 9월 7일 건교부장관으로 화려하게 영전했던 안정남은 ‘패밀리 타운’ 조성 의혹으로 취임 23일 만인 9월 30일 지병(근육암 3기 및 당뇨) 치료를 이유로 사퇴했다. 안정남은 11월 출국 후 그해 12월 31일 모친상을 당하고서도 귀국하지 않아 ‘도피성 외유’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용호 게이트’ 특검 수사 과정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弘業)씨가 모 피자회사측으로부터 특별세무조사 무마 부탁과 함께 1억7000만원을 받고 이수동(李守東) 전 아태평화재단 상임이사를 통해 안정남에게 감세 청탁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안정남은 DJ정부가 끝난 뒤인 2003년 3월 역시 신병 치료를 이유로 극비 귀국, 서울의 S병원에서 6월까지 치료를 받았다. 최근 강금실(康錦實) 법무부 장관은 국회답변을 통해 “부동산 투기 의혹과 관련해 조사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으나 검찰은 아직까지 “구체적인 혐의 사실이 없어 조사하기가 여의치 않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손영래는 2001년 9월 국세청장에 취임해 DJ 정부 말기까지 임기를 채웠으나 올초 SK수사과정에서 SK로부터 2000만원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 불구속 기소됐다. 손영래는 세무조사 직후 언론사 관계자들을 만나 “나도 (언론사 세무조사를 주도하는 등) 이러고 싶지는 않았다”는 발언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취재팀▼

▽팀 장=이동관 정치부장

▽정치부=반병희 차장

박성원 최영해 김영식 부형권

윤상호 이명건 이승헌 기자

▽경제부=홍찬선 박중현 김두영 기자

▽기획특집부=윤승모 차장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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