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교의 농구 에세이]우지원 ‘오빠와 아빠 사이’

  • 입력 2003년 11월 3일 17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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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야 빨리 일어나, 응∼.” “어, 알았어. 금방 일어날게.”

남편은 잠꼬대 같은 말을 남기고 이내 다시 코를 곤다. 아내는 다시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오늘 서윤이 예방접종하러 가는 날이란 말이야.” 몸은 천근만근으로 벌떡 일어나기 힘이 들지만 아내의 계속되는 성화에 남편은 한편으로는 서운한 마음도 없지 않다.

“나, 정말 피곤한데 자기 혼자 아이 데리고 다녀오면 안돼?”

여느 집 휴일 아침 표정과 흡사하지만 이 집은 월요일 아침에 이런 광경이 펼쳐졌다.

이 집의 바깥주인은 ‘코트의 황태자’ 우지원. 일요일 잠실에서 삼성과의 격전 끝에 역전패하고 모처럼 집에서 하룻밤을 지낸 남편의 피곤함을 모를 리 없는 아내지만 그래도 이 날은 욕심을 내고 싶었다. 두 달 전 태어난 서윤이의 뇌수막염 예방접종 날. 다른 날 다른 사람과 갈 수도 있으나 지난 두 달 동안 세 식구가 함께 변변한 외출 한번 해보지 못했기에 오늘은 졸라 보는 것이다. 그 곳이 병원일지라도.

남편 우지원 역시 피곤하지만 가족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함께 나섰다. 사실 지난 두 달 동안 서윤이 아빠는 무척 바빴다. 전지훈련과 합숙훈련으로 가족과 함께 지낸 시간은 불과 한 주일을 넘지 못했다.

그의 가족은 경기 용인시 수지에 산다. 선수단 숙소 역시 수지와 인접한 동수원. 집과는 약 5분 거리에 있다. 경기는 안양시 등 집과 가까운 곳에서 펼쳐졌지만 가족을 보러 갈 여유는 없었다. 요즘은 팀 분위기도 무겁다. 감독께 잠깐의 외출을 요청하는 것 역시 생각만으로 그쳐야했다. 최희암 감독과의 인연을 감안한다면 그러한 생각을 한 것만으로도 죄송스럽기 때문이다. 그가 울산 모비스를 맡으면서 제일 먼저 불러들인 선수가 우지원이다.

요즘 팀의 분위기를 묻는 질문에 우지원은 “미치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그만큼 팀의 부진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오랜만의 가족 외출 겸 들른 병원에서 나와 맛있는 점심식사도 아내와 함께했다. 즐거워하는 아내의 얼굴을 보며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가족과의 시간은 그것이 모두였다. 그날 오후 그는 다시 선수단 숙소로, 남은 가족은 아빠 없는 집으로 향해야 했다. 아기의 뺨에 아내의 뺨에 몇 번씩 입을 맞춰보지만 그것으로 그들의 허전한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그래도 모처럼 딸 서윤이에게 아빠 노릇을 한 것 같아서 뿌듯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가족을 뒤로하고 숙소쪽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코트의 황태자 우지원은 아빠에서 오빠로 이미 바뀌어 있었다.

방송인 hansun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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