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의 테마여행]진시황 영욕의 흔적을 따라 중국 시안

  • 입력 2003년 9월 18일 16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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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은 최초의 황제다. 앞으로 짐의 뒤를 잇는 황제들은 제2대, 3대 황제라 불릴 것이며 이 법칙은 천대, 만대 이어질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온 명문이다.

진시황은 지금으로부터 약 2200년 전인 기원전 3세기 후반의 인물이다. 중국역사의 기본 틀로 알고 있는 황제 지배, 군현지배의 전국적 확대, 통일제국의 출현 등은 모두 그에게서 시작됐다. 만리장성, 아방궁, 분서갱유 등 고대 중국을 떠올리는 중요한 코드들 역시 대부분 진시황과 연결돼 있다. 영생불사를 꿈꾸며 기이한 행적을 남겼던 그를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도시는 중국 시안(西安)이다.

●2000년 세월을 건너온 진의 대군들

1974년 우물을 파던 농부가 발견한 진시황의 병마용갱은 진시황릉과 불과 1km 거리에 있었다. 시황제의 즉위부터 무려 38년에 걸쳐서 수십만명이 완성한 진시황릉은 세계 8대 불가사의이자 중국 고대문화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다.

진시황의 병마용갱이 발굴되자 전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5년 후 1979년엔 시안에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이 건립돼 수많은 관람객이 몰려들었고 해외에서도 잇따라 전시됐다. 진시황릉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그 규모가 엄청나고 너무나 사실적인 묘사 때문에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위압감을 느끼게 된다.

1호갱의 경우,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수천개의 병사와 말, 그리고 전차들이 마치 전투 개시 명령이 떨어지기만 하면 엄청난 기세로 달려 나갈 듯한 느낌을 준다. 2000년이 넘는 세월의 무게를 견뎌온 조각상이 마치 살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과 몸 위에 진흙을 바른 듯한 착각을 하게 할 만큼 생생하다.

사학자들은 도용들의 상체와 하체, 귀 등 동체 부분이 대량 제작됐고, 머리 부분도 계급에 따라 일률적으로 제작된 이후 조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머리 장식이나 옷소매, 얼굴 표정, 수염 등의 세밀함과 다양함을 들여다보면 당시 장인들이 병사 개개인을 오랫동안 관찰한 뒤 하나씩 제작한 것이라는 추측도 나올 법하다.

이곳에서는 당시 죽음을 무릅쓰고 전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일반 백성들의 공포와 애환도 함께 느껴진다. 가족과 고향을 떠나 황제의 명에 따라 유혈의 정복을 일삼던 병사들의 비극적인 정서가 전해진다. 병마용갱은 그런 비애감 속에서도 세월의 고단함을 이긴 채 생생한 모습으로 이방인들을 맞고 있다.

●거대한 지하도시, 진시황릉

진시황릉은 전체 면적이 2km²(60만여평)에 이르는, 지하 4층의 거대한 궁전으로 돼 있다. 묘역 안팎에는 내성과 외성을 쌓아 당시 도읍지인 시안의 모습을 담은 듯하다. 외성곽 길이만 12km에 달하니 무덤이라기보다 지하도시란 표현이 더 적합하다.

이곳의 핵심은 단연 진시황의 지하궁전이다. 지하 4층까지 파 들어가 4층 중앙에 관을 안치해 놓았다. 또 살아 있을 때처럼 무덤 안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한 별도의 편전, 부장품을 놓은 부장묘구를 설치했다. 지형은 서쪽을 배경으로 동쪽을 바라보는 형상에 남쪽이 북쪽보다 85m 높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돼 있다. 전체적으로 ‘돌아올 회(回)’자 모양이다.

능 안에 대형 말 형상, 31마리의 갖가지 동물들, 48명의 궁인들의 부장묘 등도 특이하다. 능의 거대함은 이뿐이 아니지만 함양궁과 아방궁은 모두 불타 없어져서 그 잔해를 통해 화려함과 웅장함을 추측해볼 따름이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시황제는 즉위하면서부터 여산에 능을 만들기 시작했다. 통일 후에는 70만명을 동원해 땅을 깊이 파고 구리를 부어 곽의 둘레를 메웠으며 지상의 궁전과 관청, 각종 기이한 물건들을 옮겨와 가득 채웠다…중략…수은으로 강과 바다를 만들고 기계장치로 흐름이 가능하게 했다. 위로는 별자리를 갖추고 아래로는 땅의 형세를 갖추었다”고 썼다.

진시황은 불로장생에 대한 집착이 남달리 강했지만 사실은 죽음을 두려워했던 나약하고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20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이처럼 생생하게 자신의 군대와 영적인 권위를 세상에 드러낸 황제가 또 어디 있을까. 이집트의 파라오조차 현세에 자신의 군대를 데리고 오지 못했지만 진시황은 세월의 벽을 넘어 현대인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2000년이 지나서야 모습을 드러낸 진시황 병마용 1호갱의 내부.사진제공 진시황전시기획단

●곳곳에 유적…개발 제한

시안엔 다른 중국 도시들에서 볼 수 있는 고층빌딩이 없다. 문화유적을 보존하자는 의도 때문이다. 워낙 방대한 유적이 시안 시내 곳곳에 퍼져 있어 높은 빌딩의 그림자에 훼손되거나 빛을 잃게 될까 아예 개발을 제한하고 있다.

시안은 진, 한, 수, 당의 도읍으로 무려 3000년이나 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고도이다. 오래 전 시안을 둘러본 한나라의 유방은 이곳이야말로 중국 최고의 명당이라며 꼭 능을 이곳에 지으라고 명을 했다고 한다. 중국 역대 9명의 황제들 역시 이곳에 능을 건설했다.

진시황이 시안의 외형적인 모습을 완성한 사람이라면 그후 역대 중국 황제들이 내부의 문화적 콘텐츠를 채웠다고 볼 수 있다. 당 현종이 사랑했던 양귀비, 잔혹했던 것으로 유명한 측천무후, 당 고승 현장 같은 인물들이 시안의 역사를 엮어왔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약 50km 정도.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는 동서 3.8km, 남북 2.8km, 둘레 14km 정도의 규모다. 시안 관광은 2박3일 정도 걸리는데 하루는 교외의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과 화칭츠 같은 동부관광에, 이틀째는 첸링(乾陵), 양귀비 묘 같은 서북부 관광에 적합하다.

작은 야산처럼 보이는 진시황릉은 시안시의 동쪽 약 30km 거리에 있다.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은 황릉근처에서 발견된 병마용갱을 정비한 곳이다. 1호갱은 힘의 군진으로 주력 보병부대에 해당하는 병마용, 6000구가 좌우대칭으로 매장되어 있다. 2호갱은 규모는 작지만 4개의 작은 군진을 묶어서 하나의 큰 군진을 형성한 전략군의 모습을 하고 있다.

3호갱은 일종의 지휘사령부로서 중앙엔 사슴뿔이 있고 여기서 전운에 관한 점을 쳤다고 한다. 1호갱 남쪽의 영화관에서는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고 병마용을 만들어 현대에 발견되기까지의 영상을 360도 스크린을 통해 체험할 수 있다.

시안엔 진시황릉 외에도 꼭 가볼만한 관광명소들이 즐비하다. 우선, 현장과 인연이 있다는 다옌타(大雁塔)를 들 수 있다.

당 3대 황제 고종이 어머니인 문덕황후를 기리기 위해 세운 다츠언쓰(大慈恩寺) 경내에 자리한 64m 높이의 대탑이다. 현장이 인도에서 가져온 산스크리트 경전을 보존하기 위해서 648년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7층의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면서 각층의 아치형 창으로 시안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직선적이고 남성적인 다옌타에 비해 좀더 여성적이고 완만한 느낌의 불탑인 샤오옌타(小雁塔)도 고종의 아들 예종이 아버지를 공양하기 위해 세운 젠푸쓰(薦福寺) 경내에 있다.

불탑 외엔 실크로드의 시발점이 되었던 시안의 성벽들을 방문해 볼 만하다. 특히 실크로드의 입구로 유명한 시먼(西門·안딩먼)은 명나라 때 성루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다.

시안은 몇 가지 점에서 특별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마치 2300년의 세월을 1막 1장부터 차례로 펼쳐서 보여주는 연극무대 같다. 중국 역사의 문을 연 고대의 진시황릉과 병마용갱부터 자동차와 수많은 자전거들이 북적거리는 현대의 길거리까지 한꺼번에 모든 것이 고스란히 뒤섞여 있다.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에서도 시안이 아니면 이런 모습을 과연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여행칼럼니스트 nolja@worldpr.co.kr

당현종황제와 양귀비가 사랑을 나눈 온천지의 아름다운 풍경. 사진제공 월드콤

●唐 현종과 양귀비 사랑 띄운 화칭츠

“아, 이 세상 모든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사랑 양귀비여! 그대가 있음에 내 인생이 있고, 활활 타오르는 정열의 마음은 영원하리.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양귀비의 고운 살결, 앵두 같은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시안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 달리면 화칭츠(華淸池)((華淸池)에 도착한다. 화칭츠는 주나라 때부터 있었던 3000년 역사의 온천지로 역대 왕들의 겨울 휴양지로 쓰였다. 당 황제 현종과 양귀비는 매년 10월이 되면 이곳에 와서 봄까지 지냈다고 한다. 양귀비는 현종의 아들인 수왕(壽王)의 비였다. 현종이 아내 무혜비가 죽자 며느리였던 양귀비를 후궁으로 맞은 셈이다.

경국지색이란 말대로 현종은 양귀비의 미색에 홀려 정치를 소홀히 하던 끝에 안녹산의 난까지 맞게 되었다. 결국 반란군의 종용으로 현종은 양귀비에게 자결을 명했고 1년 후 몰래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화칭츠는 그런 사연을 떠올리기엔 지나치게 평화로운 분위기지만 현종이 양귀비와 노닐었던 화청궁, 수온 43도를 유지한 온천탕, 중국식 정원과 양귀비 동상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관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정도.

어탕견지 박물관에는 양귀비의 부용탕과 현종의 구룡탕이 지금의 연화탕으로 복원되어 꾸며져 있다. 부용탕은 1986년에 발견된 것으로 욕탕이 해당화 모양을 하고 있다. 궁녀 전용의 상식탕도 함께 발굴돼 공개 중이다.

온천수가 분출되는 곳에서는 자욱한 김으로 휩싸여 관람객들에게 온천수를 판매하고 있지만 그 효능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온천수 한 병 받아들고 백거이의 장한가 한 구절 음미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봄날 쌀쌀한데 여산 화청궁서 목욕하니 온천물은 매끄러이 고운 살갗 씻었네.’

●여행정보

여행정보

1.찾아가는 길:

인천공항에서 중국 시안까지는 아시아나 항공과 중국 서북항공이 운항하고 있다. 소요 시간은 3시간 정도. 베이징에선 국내선을 갈아타고 1시간 25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2.시차:

베이징은 우리나라보다 1시간 늦다. 중국은 우리나라의 44배에 달하는 넓은 국토를 가졌지만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제외한 전역이 베이징 표준시각을 따른다.

3.기타정보:

중국 여행에 관한 일반정보는 중국관광청(02-773-0393/www.cnto.or.kr)에서 얻을 수 있다. 최근 진시황에 관한 미공개 유물전이 다음달 26일까지 서울 코엑스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어 한번 들러볼 만하다.(02-5252-997/www.qine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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