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의 테마여행]헤르만 헤세가 만난 페낭과 수마트라

  • 입력 2003년 8월 28일 17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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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마트라를 여행하다보면 물위에 떠있는 수상가옥을 쉽게 만날수 있다.사진제공 캠프스튜디오
수마트라를 여행하다보면 물위에 떠있는 수상가옥을 쉽게 만날수 있다.사진제공 캠프스튜디오
1911년 9월 4일 서른네 살의 헤르만 헤세는 고향 가이엔호펜을 떠나 아주 긴 여행길에 오른다.

최종 목적지는 인도였다. 그의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선교사로 활동을 했던 곳이며 어머니가 태어나 성장한 곳이다. 어린 시절부터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인도 본토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대신 페낭섬과 말레이반도, 그리고 수마트라섬으로 목적지를 돌려야 했다.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병약한 그로서는 인도의 숨 막히는 더위와 습한 기후, 열악한 위생상태 등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나는 인도 여행을 통해서 낯설고 이국적인 나라를 알게 됐고 내 안의 나를 발견했으며 시련을 이겨내는 법을 깨달았다.”

헤세가 친우 뮌첼에게 보낸 자작 동판 초상화.동아일보 자료사진

기행문 ‘인도여행(원제:인도에서, Aus Indien)’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헤세는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여행스케치 수필 편지 시 일기 등 다양한 형식으로 적었다. 100일간에 걸친 길고도 험난한 여행길에서 그는 직접 움직인 거리만큼이나 영혼의 방랑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기행문은 식민지 통치하에 비참하게 살아가는 가난한 원주민들, 낙후된 문명, 관광상품으로 전락한 신전들, 그리고 열악한 환경을 지혜롭게 이용하는 중국인들에 이르기까지 이방인의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을 미화나 첨삭 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헤세가 오랜 배 여행으로 지칠 대로 지쳐 도착한 섬, 페낭에 가면 90년 전 그가 냉담하게 묘사한, 아름다운 도시의 모습을 아직도 볼 수 있다.

헤세도 모험 기분에 들떠 삼륜자전거 모양의 릭샤를 불러 타고 시내 유람에 나섰다. 중국 유곽이나 가게, 노점상들이 즐비한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담배를 피우는 노인들과 상인들의 모습을 바라보기도 하고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중국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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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동양의 옛날이야기 속 인물들이 살아나 휘황한 조명 아래서 배회하고 있었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말레이 연극을 보고 나서는 ‘탈선한 유럽예술의 패러디’라고 혹평하며 동양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떨쳐버렸다.

●동양적 정서 가슴에 안고

헤세는 페낭에서 싱가포르를 거쳐 남수마트라로 향했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은 네덜란드령 동인도로 불렸던 곳. 그가 집중적으로 여행하고 체험한 지역이었다. 남북 길이 1700km, 최대 너비 450km로 적도가 이 섬의 중앙을 통과한다. 서해안을 따라 산맥이 뻗어 있고 동쪽은 대부분 습한 평원으로 밀림에 뒤덮인 곳이 많다.

말레이시아 최고의 리조트 휴양지로 알려진 페낭의 바투 페링기 비치.사진제공 월드콤

수마트라의 중심도시인 팔렘방은 헤세가 방문했을 때만해도 인구 7만5000명의 제법 큰 수상 가옥 도시였다. 그는 팔렘방이 뜨내기 여행자들로부터 ‘말레이의 베네치아’라는, 말도 안 되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묘사했다. 이 도시는 정오부터 자정까지는 물 속에, 자정부터 정오까지는 늪지에 잠겨 있고 갯벌에서 나는 악취가 코를 찌를 정도였다.

하지만 헤세는 씻지 않는 유럽인들 보다는 목욕을 생활화하고 있는 동양인들의 습관을 호평했다. 서구인 특유의 우월감 없이, 균형감각을 갖고 동양을 바라보려고 한 헤세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헤세는 수마트라를 끝으로 긴 여행을 마치지만 자신이 동경해온 고대의 지혜나, 그토록 목마르게 찾던 고요한 인도의 정신과는 접촉할 기회가 없었다. 육체적으로 지치고 실망에 가득 차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페낭섬에는 삼륜자전차인 릭샤를 타고 관광에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사진제공 월드콤

기행문에서 그는 동남아 경제와 문화가 유럽에 의해 유린되고 황폐화되는 데 대한 자성과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 속에서 고스란히 동양의 정서와 사유의 흔적들을 스며들게 했다. ‘어느 인도 왕의 전설’ ‘숲 속 인간’ ‘인도의 이력서’ 등이 그렇다.

헤세 특유의 감성을 풀어놓은 ‘인도여행’은 그가 쓴 시 한 구절로 이렇게 마무리된다.

“심장이 느긋하게 뛰는 사람만이 앉아서 쉴 수 있으리라. 그러나 방랑자는 번번이 기대가 빗나가도 여행의 수고와 고난을 견뎌낸다…중략…나를 따스한 고향 가까운 곳에 옥죄어두기보다는, 혹 발견하지 못한다 해도 찾아다니는 것이 낫다. 이 세상에서 나는 그저 손님일 뿐, 결코 주인은 될 수 없기에.”

여행칼럼니스트 nolja@worldpr.co.kr

▼'인도양의 에메랄드' 페낭 ▼

●조지타운에 남은 식민지 흔적

수마트라의 밀림엔 아직도 독화살을 사용해 사냥하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다.사진제공 캠프스튜디오

:페낭:말레이반도의 북서부에 있는 섬, 페낭은 ‘인도양의 에메랄드’란 별칭을 갖고 있다. 식민지풍의 낡은 건물과 허름한 뒷골목들이 있는 조지타운 시내가 볼 만하다. 바다를 향해 늘어선 리조트 타운도 대표적인 관광명소다.

페낭에 들어가는 방법은 세 가지. 하나는 24시간 운항하는 대형 페리를 타면 20분밖에 안 걸린다. 또 페낭으로 가는 관문인 버터워스까지 기차를 타고 간 뒤 페낭대교를 건너거나, 아예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들어가는 방법도 있다.

밤바다를 가르며 섬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페리를 권하고 싶지만 요즘엔 비행기로 들어가는 게 일반적이다. 페낭대교는 13.5km의 길이로 우리나라 현대건설이 건설했다.

역사를 되짚어보면 페낭은 정말 많은 이름을 지녔다. 말레이 사람들은 ‘플라우 카 사투(Pulau Ka Satu)’ 혹은 ‘싱글 아일랜드(Single Island)’라고 불렀다. 나중에 발견된 항해 지도에는 ‘플라우 피낭(Pulau Pinang)’이나 ‘빈랑나무 섬(Island of Betel Nut Tree)’으로 표기돼 있다. 포르투갈인에 의해 서양세계에 알려진 뒤 영국 식민지가 되었을 때는 ‘웨일스 왕자의 섬’이란 세례명을 받기도 했다. 말레이시아 독립과 함께 ‘플라우 피낭’으로 불렸다.

이 섬에는 식민지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성의 중심지인 조지타운에는 고풍스런 유럽식 스타일의 건축들이 늘어서 있고 섬의 북동쪽에는 오래된 성채인 콘월리스 요새(Fort Cornwallis)가 있다. 지금은 공원으로 변신했지만 예전엔 해적과 다른 열강의 침입을 대비한 성채였다.

조지타운은 두 개의 거리(페낭과 출리아 거리)만 짚으면 쉽게 시내를 돌아다닐 수 있다. 페낭 거리에는 호텔, 쇼핑타운, 레스토랑, 유흥가 들이 즐비하고 출리아 거리에는 싼 숙소와 여행사들이 밀집해 있어 페낭의 화장하지 않은 맨 얼굴을 바라보는 듯하다.

또 각 종파의 사원들과 식민지풍의 오랜 건축물, 거기에 신시가의 모습이 기묘하게 섞여 약간 혼란스럽긴 하지만 말레이 특유의 향취를 느낄 수 있다.

시내 서쪽에 우뚝 솟아있는 64층 건물 콤타(Komtar)는 시내 어디서나 볼 수 있어 관광객들의 이정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 자체가 재미있는 관광명소이기도 하지만 원통형의 건물 안에는 페낭 최대의 근대적인 쇼핑센터, 콤플렉스 툰 압둘 라자크가 자리해 쇼핑을 즐기러 온 현지인들로 붐빈다.

헤세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훌륭한 유럽인 호텔이라고 극찬했던 이스턴 오리엔탈 호텔도 조지타운에 있다. 1885년 창립한 이 호텔은 헤세 외에도 수많은 문화인들의 사랑을 받은 명소이다. 소설가인 윌리엄 서머싯 몸의 단골 숙소이기도 했다. 전부 100여 객실은 오래된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격식과 우아함을 갖춰 독특한 매력을 풍긴다.

페낭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은 바투 페링기(Batu Ferringi) 비치. 오토바이로 북적거리는 시내를 벗어나 이곳으로 걸음을 옮기면 내로라하는 다국적 리조트들이 즐비하게 시선을 메운다. 바다를 테마로 한 거의 모든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좀 더 활달한 여행자라면 케이블카를 타고 페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페낭힐(해발 820m)에 오르거나 페낭과 말레이 고유의 민속 문화를 엿볼 수 있는 페낭 문화센터를 방문할 것을 권한다. 또 뱀 사원은 사연도 많고 스릴도 넘친다.

●수상가옥과 근대건물의 조화

:수마트라:밀림 지대가 많은 수마트라섬은 동서 교통의 요충인 말라카 해협을 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고대부터 인도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이다. 주요 도시로는 메단, 팔렘방, 파당, 잠비가 있는데 가장 유명한 곳은 팔렘방이다.

7세기에 팔렘방을 중심으로 불교 왕국인 스리비자야가 일어나 꾸준히 번영했기 때문이다. 신라의 고승 혜초도 이곳에서 체류하며 다음 여행길을 준비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싱가포르라는 이름은 팔렘방의 왕이 잠시 표류하다 지었다는 얘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등 이래저래 역사적으로 사연이 깊은 도시다.

인도네시아는 독립 후 주민의 이주를 장려하고 수마트라를 ‘제2의 자바’로 만들기 위한 개발계획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넓은 면적은 밀림이 자리하고 있다.

오늘날의 팔렘방은 인구 140만의 대도시이다. 유전이 개발되어 메머드급의 외항선들이 드나드는 수마트라 제2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여전히 수상가옥들이 근대적인 건물들 사이에 자리하고 있어 이국적인 정취를 보여준다.

페낭이나 수마트라에선 어떤 곳을 들르든 헤세가 방문했던 1911년 이후 그대로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여행정보

1. 찾아가는 길

말레이시아의 수도인 콸라룸푸르에서 페낭의 바얀 레파스 국제공항까지는 비행기로 이동하는 것이 편하다. 소요시간은 1시간 정도. 중심도시 조지타운은 공항으로부터 약 20km 떨어져있다. 수마트라는 인도네시아 령으로 자카르타에서 국내선을 갈아타고 들어갈 수 있다. 소요시간은 1시간. 인천에서 자카르타까지는 7시간 정도 걸린다. 가루다 인도네시아 항공사(080-773-2092/www.garuda.co.kr)

2.숙박정보

헤르만 헤세가 묵었던 페낭의 이스턴 오리엔탈 호텔(604-222-2000/http://hotel-info@e-o-hotel.com)과을 추천할만 하다. 페낭의 이스타나 문화센터는 현지인들의 문화나 풍습을 보여준다. 밤에는 민속공연을 관람하면서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는 대극장도 마련해 놓고 있다.

3.기타 정보

페낭에 관한 일반 정보는 말레이시아 관광청(02-779-4422/www.mtpb.co.kr)에서 찾을 수 있고 수마트라에 관한 여행정보는 인도네시아 대사관(02-783-5675∼7)에서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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