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의 나무]<14>예술종합학교 석좌교수 이강숙

입력 2003-07-14 18:24수정 2009-10-10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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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학자 교육행정가를 거쳐 뒤늦게 소설가로 등단한 이강숙 석좌교수는 문학이라는 보다 대중적인 도구를 통해 일반인들이 다양한 음악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을 모색 중이다.-김미옥기자
《이강숙 한국예술종합학교 석좌교수(67)는 한국음악학의 기틀을 마련한 음악학자인 동시에 한국에술종합학교의 초대 총장을 맡아 예술계를 이끌어갈 인재의 산실로 키워낸 탁월한 교육행정가이다. 그는 정년퇴임 직전인 2001년에 소설가로 등단한뒤 이제 음악과 문학의 접목을 위해 고민하는 '신진 문인'으로 제3의 인생을 열어가고 있다.》

“음악이란 불변적 요인과 가변적 요인의 상호작용이다.”

음악학자인 그는 음악에 대해 이렇게 알 듯 모를 듯한 정의를 내렸다. 그만큼 이 교수에게도 음악은 간단하게 정의내릴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그가 대학 시절까지 한국에서 배운 음악은 바흐, 모차르트, 하이든, 베토벤, 쇼팽, 슈만 등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만국 공통의 음악’이었다. 그러나 서울대 음악대학을 나와 계명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68년 그가 음악을 제대로 공부하겠다며 미국에 유학 가서 터득한 것은 ‘어떤 음악도 만국 공통어는 아니다’라는 점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만국 공통의 음악’이라고 배웠던 음악이 1750년부터 1900년경까지 서구에서 유행했던 음악 조류의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그는 “역사와 국경을 초월해 있는 줄 알았던 음악 역시 백지에서 태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우쳤다.

그는 휴스턴대와 미시간대에서 앨런 메리엄, 맨틀 후드, 찰스 시거 등의 강의를 들으며 음악인류학(Ethnomusicology)에 관심을 돌렸다. 음악을 이해하려면 그 음악이 태어난 역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맥락을 알아야 했다. 그 시대 그 지역의 언어를 모르면 의사소통이 안 되듯이, 음악도 그 시대 그 지역의 ‘음악언어’를 모르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그는 음악이 ‘함’(Do)의 대상만이 아니라 ‘앎’의 대상도 될 수 있다는 입장에서 음악사, 음악문헌학 등을 포괄한 ‘통합음악학’에 접근했다. ‘음악의 감성과 의미’ ‘음악, 예술, 아이디어’ ‘음악에 대하여’ 등 레너드 마이어의 책들을 통해 ‘앎’의 대상으로서의 음악에 접근했고, 또한 월리스 베리, 테오도어 아도르노 등을 통해 예술 대상을 분석하며 예술의 본질에 대한 이해에 다가가는 방법도 익혔다.

그리고는 한국에 돌아와 “음악은 만국 공통어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한국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만들어지는 음악에 관심을 기울였다. 지금도 그는 한국 특유의 새로운 음악언어를 만드는 사람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그는 ‘앎’으로서의 음악을 한국에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 1988년 12월 사재를 털어 계간 ‘낭만음악’을 창간했고 이 학술지는 현재 58집까지 단 한 번의 결호도 없이 발간되고 있다.

미시간대에서 음악학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던 이 교수는 1993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음악학과 예술교육의 문제에 대해 활발하게 사회적 발언을 하며 ‘자유인’처럼 지냈던 그에게 직접 이상적인 예술교육기관을 만들어 보라는 기회와 책임이 주어진 것이었다.

자신의 삶을 구속하는 일들에 얽매이기 싫어서 주저하기도 했지만 결국 “말로만 떠드는 사람”이란 비난을 듣기 싫어 총장직을 수락했다. 그는 한국에서 음악이 제대로 가르쳐지고 행해질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일도 ‘음악학’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를 ‘행동음악학’ 또는 ‘예술행정학’ ‘예술경영학’이라고 부른다. 그는 “현실에서 부딪히는 일들을 체계화 이론화해서 세상살이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면 그것도 세상에 유익한 하나의 학문이 아니냐”고 말했다. 학자에서 교육행정가로 변신한 그는 관계 부처를 찾아다니며 예산을 따내고 직제를 만들고 건물을 지어 나갔다. 그의 놀라운 변신을 지켜본 사람들은 “예종 총장 이전의 이강숙과 이후의 이강숙은 전혀 다른 사람이다”라고 얘기한다.

그 자신도 “총장직을 수행하면서 사회와 세계를 보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며 “예전에는 ‘나 만들기’에 급급했는데 학교 일을 하면서 ‘학교 만들기’에 전념해야 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 하나를 배웠다. 국정감사를 받고 국회의원들에게 시달리면서 의원들은 ‘나라 만들기’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사고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는 교육행정가로서 ‘학교 만들기’란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 만들기’에 골몰하는 교수들과 ‘나라 만들기’에 애쓰는 관리나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양쪽의 의사를 소통시키는 ‘통역’을 자임했다. 그리고 정년퇴임과 함께 9년 만에 총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다시 ‘학교 만들기’에서 ‘나 만들기’로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요즘 그는 행복한 ‘잠적 중’이다. 늦깎이 작가로 작품 집필에 몰두하기 위해서다. 학자와 교육행정가를 거쳐 이제 소설가로서 또 다른 삶을 개척하고 있다.

문학에 대한 그의 열정은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그의 문학에 대한 구애는 오래도록 짝사랑으로만 그쳐야 했다. 중학교 2학년때 존경하고 따르던 국어선생님으로부터 “너 문학은 안 되겠구나”라는 말을 듣고 좌절했고, 서울대 작곡과에 입학한 후에도 ‘사상계’ ‘현대문학’ ‘자유문학’ 등에 계속 투고했지만 어디서도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년퇴임을 앞둔 2001년, 새로운 인생을 찾으라는 하늘의 뜻이었는지 ‘현대문학’을 통해 단편 ‘빈병 교향곡’으로 등단했다. 연이어 발표한 작품들도 ‘이달의 좋은 소설’, ‘2002년 문제작’ 등으로 선정되는 등 문단의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참에 글쓰기에 전념해 볼 생각으로 이번 여름방학에는 난생 처음 ‘잠적계획’을 실천에 옮겼다.

“저에게는 병이 있습니다. 항상 일을 해놓고는 이게 아니다, 이건 내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가 경솔하게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부터 늘 자신에게 던지는 세 가지 질문이 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가 거기에 어떻게 가려고 하는가?’

‘거기에 갔다면 갔는지 가지 못했는지 내가 어떻게 아는가?’

목적, 방법, 평가라는 측면에서 자신에게 던지는 이 질문들은 음악교육학자인 로버트 메이거의 글을 보며 배운 것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러 강의실에 들어갈 때, 짐을 싸들고 길을 떠날 때,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언제나 이렇게 자신의 행위에 대해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하루, 일주일, 한달, 일년, 평생 등의 단위로 반복해서 던지는 이런 질문은 자신이 무엇을 향해 가고 있으며 어떻게 어디쯤 가고 있는지 성찰하며 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는 다시 이 질문들과 함께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마음이 급해진다며 방학 때만이라도 잠적해 글을 쓰겠다고 길을 나섰다. 책 몇 권과 노트북컴퓨터를 들고 강릉, 대구, 원주 등 발길 닿는 곳으로 돌아다닐 생각이다.

그렇다고 음악을 떠난 것은 아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B F 스키너가 ‘월덴 투’라는 소설을 통해 심리학적 관점에서 이상사회를 그렸듯이 소설이라는 양식을 통해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세상에 쉽게, 널리 전달해 볼 생각이다. 개학을 하면 다시 학교로 돌아와 음악에 관한 특강도 할 계획이다. 일흔을 앞둔 나이지만 그는 여전히 지칠 줄 모른다. 소설을 정열적으로 발표하던 그가 어느 날 문득 ‘제4의 인생’을 선언하고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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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음악의 민주화란…▼

음악의 민주화는 사회 구성원 전체의 음악적 경험방식의 개혁에서만 가능하다. 개혁 전의 방식과 개혁 후의 방식은 어떻게 다른가. 기존의 공연장에서 행해지는 전문가의 음악활동에 값어치를 부여하는 경험방식이 개혁 전의 경험방식이라면 개혁 후의 방식은 민주화의 연습장에서 행해지는 애호가의 음악활동에 값어치를 부여하는 경험방식이다. 개혁 전의 경험방식은 요리에 입맛이 도는 혀에 비유된다면, 개혁 후의 경험방식은 음식에 입맛이 도는 혀에 비유될 수 있다. … 연주가라고 하면 전문가를 생각하는 통념에서 인간이면 누구나 될 수 있는 애호가를 생각하는 통념으로 변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음악의 생활화라는 말은 인간이면 누구나 작곡행위, 연주행위, 청취행위, 판정행위, 해석행위 등을 생활 속에서 해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잘하고 못하는 행위가 음악 운운의 기준이 되는 사고를 송두리째 뽑아 버리지 않는 한, 음악의 생활화, 즉 민주화는 불가능하다.

(‘음악의 이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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