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 생각에는]조숙한 꼬마숙녀들 "남자들은 사랑을 몰라"

입력 2003-07-01 16:48수정 2009-10-10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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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파트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 재훈이가 들려준 얘기다. 같은 반인 혜주는 옆 반 창수를 좋아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쓴 편지를 마침 학교 가는 길에 만난 창수에게 주었다. 쉬는 시간. 혜주네 교실 앞문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열리며 창수가 나타났다. 창수란 녀석, 혜주를 노려보며 교실이 쩌렁쩌렁 울리게 소리쳤다. “정혜주! 재∼수 없어!!” 쾅 소리가 나게 문을 닫고 창수는 사라지고 속절없이 무너진 첫 사랑의 아픔에 혜주는 책상에 엎드려 펑펑 울었단다!

요즘 아이들은 정말 깜찍하다. 아무래도 남자아이보다 여자아이들이 조숙한데, 빠른 아이들은 초등학교 3학년만 되어도 이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어느 초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는 남자친구 준다고 뜨개질하는 아이까지 있었다나.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본격적으로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얘기가 아이들 사이에서도, 엄마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하게 떠돌기 시작한다. 엄마들 입장에서는 아이들의 이런 변화가 대견하기도 하고, 엄마들 어린 시절과 다른 것이 재미있기도 하다.

이만한 또래에서는 남녀 성숙도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데,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의 미묘한 심리가 이해 안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연애편지를 준 혜주에게 재수 없다고 화를 내는 창수 같은 목석도 생긴다. 여자아이가 500원 짜리 커플링을 사서 함께 끼자고 반지를 건네주자 그 자리에서 옆 공사장에 던져버린 ‘악동이’도 보았다.

지금 고등학생인 내가 아는 집 한 아들은 여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많아 초등학교 때부터 밸런타인데이만 되면 초콜릿이 넘쳤다. 초콜릿을 준 여자아이들에게 관심이 없다보니 초콜릿은 포장도 안 뜯은 채 방구석에 처박혔는데, 애가 탄 것은 그 집 엄마였다. 여자아이 엄마들과도 뻔히 다 아는 사이인데, 혹시나 아들이 무례하다고 욕 먹을까봐 화이트데이에 여자아이들에게 답례 초콜릿을 보냈다.

남자아이들이 이성에 대해 느리고 둔한 반면 여자아이들이 훨씬 적극적이다. 중1인 우리 큰 아들 친구 녀석은 여자아이들이 휴대전화로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너무 많이 보내와 한동안 부모가 휴대전화를 뺏을 정도였다. 메시지 내용이 ‘누가 너를 좋아한대’에서부터 ‘나와 안 사귀면 죽음이야’까지였으니 그 집 엄마 아빠가 기겁할 만하다.

우리 집 이웃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인 형준이도 요사이 같은 글짓기학원에 다니는 지현이로부터 편지공세를 받고 있다. 형준이가 책상에 편지들을 모아놓고 그 위에 ‘일급비밀’이라고 써놓았으니 온 식구가 다 볼 수밖에. 마침 초등학교 2학년인 그 집 둘째아들도 형과 같은 글짓기학원에 다녔는데, 지현이를 만나자 놀리듯 물어보았단다. “누나, 우리 형 좋아해?” 우리 엄마들 같았으면 얼굴이 빨개졌으련만 역시 요즘 여자아이의 대답은 씩씩했다.

“니가 사랑을 아니?”

박경아 서울 강동구 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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