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최성각/'3보1배'는 고단위 평화운동

  • 입력 2003년 6월 6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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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없이 입에 한번쯤 올렸을, 이 초여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삼보일배(三步一拜)가 끝났다. 자그마치 800여리 길 65일이었다. 사람으로서 감당할 수 있는 인내의 임계점까지 다다랐을 이 가혹한 자발적 기도수행은 무엇을 소망했을까. 표면상으로는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메워질 여의도 140배의 새만금 갯벌을 살리려는 소망이었다.

새만금 논란은 자그마치 12년여에 걸쳐 지루하고 답답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런 소모와 낭비가 어디 있을까. 처음부터 새만금 소동은 갯벌의 가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됐다. 갯벌은 인간을 포함한 생명들에게 마른 땅보다 몇십 배 유용한 땅이건만, 갯벌을 메우려던 권력은 갯벌 가치에 대해 무지했다. 12년 전이니 사실 이해할 수도 있다. 굴뚝에서 연기가 펑펑 나고, 여기저기 길이 뚫리고, 대량생산에 소비가 부추겨지고, ‘내 차’가 실현되기 시작한 게 신기하고 황홀하기조차 하던 시절이었으니까. 당시 가난은 견디기 힘든 치욕이었다. 지도자가 내세웠고 우리 모두가 동의했던 ‘오로지 나를 따르라’란 개발과 성장신화는 반공 이데올로기만큼이나 견고했다. 발전과 경제성장만이 곧 풍요로운 삶으로 직결된다고 믿었다.

그러니 질척거리는 개흙에 보잘것없어 보이는 갯것들이 꼼지락거리고, 철새들이나 떼거지로 날아드는 갯벌을 단지 쓸모없는 땅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다분히 ‘육지적 상상력’이었다. 그게 당시 사회인식의 수준이었고, 자연관의 한계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조금씩 고개를 가로젓기 시작했다. 이렇게 끝없이 산천을 파괴하고, 불필요한 토목공사와 대량생산에 의존하는 경제로 우리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런 물질적 성취의 대가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혹시 없을까,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없는 성장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 노릇인가, 골똘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갯벌 가치에 대해 환경단체 ‘풀꽃세상’에서는 5회 풀꽃상 상패를 통해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갯벌은 갯지렁이가 꼬물대고, 망둥어가 설쳐대고, 농게가 어기적거리고, 수백만 마리 찔룩이와 저어새가 끼룩거리는 생명의 땅입니다. 또한 해일과 태풍이 오기 전에 모든 생명체에게 재해의 예감을 느끼게 하고 자연의 파괴력을 완화시키기도 하는, 은혜로운 땅입니다.”

갯벌은 신비로운 생명의 격전장이며, 자연의 질서가 완벽하게 구현된 어머니의 땅이며, 실용성으로 봐도 사람들이 버린 것들을 정화시키는 천혜의 자연정화조다. 그뿐인가. 누천년에 걸쳐 전통적인 갯마을이 형성되어 왔고, 독특한 해양생태계와 경관은 이 땅에 어울리는 해양문화와 풍습을 낳았다. 갯벌과 사람의 거리가 한 차례도 떨어진 적이 없었다. 그 땅과 바다가 쓸모없이 죽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네 분 성직자들이 자기희생의 삼보일배로 우리 사회에 말하려고 했던 것은 함께 누려야 할 갯벌과 생명체들의 존속뿐 아니라 자연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례함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뜻도 담겨 있었다. 그 모든 파괴와 욕망의 한복판에 바로 우리가 서 있으며, 자연과 멀어진 우리 살림살이 모습에 ‘우리 모두 책임이 있다’는 자책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다시 보고, 다르게 살자’는 호소였고, 각오였다. 인류가 산업사회로 진입한 이래 전 세계 어디에서도 삼보일배 기도만큼 처절하고 아름다운 참회운동은 없었다.

삼보일배는 새만금에 대한 권력의 결정과 관계없이 우리 사회를 지금보다 아름답게 끌어올렸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 네 분 성직자에게 빚을 진 셈이다. 대한민국 2003년 초여름, 고단위 평화운동으로 우리 사회는 월드컵과는 다른 차원에서 세계를 감동시켰다고 생각한다.

▼약력 ▼

소설가. 환경운동가. 1955년 강릉 생. 198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잠자는 불’ ‘부용산’ 등 펴냄. 1999년 환경단체 ‘풀꽃세상’ 창립. 현재 풀꽃평화연구소 소장. 제2회 교보환경문화상 수상.

최성각 소설가 · 풀꽃평화연구소 소장

박은선기자 sunney7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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