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의 나무]<6>김병익 前문학과지성사 대표

입력 2003-05-12 18:27수정 2009-10-10 18:31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군사독재 시절의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계간지 ‘문학과지성’을 발간하며 한국문단의 큰 기둥이 돼 온 김병익 전 문학과지성사 대표(65). 그는 정치학도이면서도 문학적 성찰을 통해 사회의 본질에 다가갔고, 지난 시대의 소명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세대가 자신의 시대를 열어나가도록 묵묵히 지원하며 이 시대를 지켜보고 있다. 지사적 언론인이 기자의 모델이 되고 있는 현실에서 그는 기자가 지성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 기독교·실존주의·자유민주주의

그는 한국문단에 이른바 ‘문지사단’이라는 엘리트집단을 만드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소심하고 수줍음을 잘 타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어린시절 사내아이들이 한 번쯤 꿈꿔보곤 하는 정치가나 장군은 자신과 인연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문학을 좋아하긴 했지만 작가나 예술가는 천재들이 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연재물 리스트로 바로가기

그가 서울대 정치학과에 들어간 것도 정치학과를 나온 형의 영향을 받아 별 생각 없이 택한 길이었다. 굳이 어떤 일을 하겠다거나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다만 작은 무리에 끼어서 화목하게 살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데는 그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갔던 교회의 영향이 컸다. 교회에서 사람들이 열심히 기도하고 참회하는 것을 보며 인간의 삶에 대해 깊이 반성하는 한편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교회의 생활을 사랑했다.

그런데 대학생이 되자 예수의 부활, 신의 구원, 야훼의 인격성 등에 회의가 들며 황량한 번뇌의 시기를 보냈다. 그러던 중 대학 3학년 때 카를 뢰비트의 ‘역사의 의미’ 서문에서 ‘종말론’이란 단어와 마주치며 일종의 ‘개안(開眼)’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세계는 언제나 이 자리에서 종말을 맞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현재의 삶에 충실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지적 경험을 겪으며 그는 교회를 떠났다. 하지만 이해관계나 거대한 명분보다 존재 자체가 부닥치는 ‘관계’와 작은 행복을 중시하며 지금도 자신이 기독교적 문화와 사유방식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실존주의와 만나게 됐다. 그는 특히 카뮈와 도스토예프스키, 손창섭 등의 작품을 읽으며 실존주의에 탐닉했다.

한편 그가 정치학과에서 ‘정치’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게 된 계기는 민병태 교수의 ‘정치사상사’ 강의를 통해서였다. 이 강의를 들으며 철학 역사 경제 사회 문화 등 인간 삶의 모든 부문에 ‘정치적인 것’이 파급돼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고 그래서 ‘정치적인 것’을 폭넓은 의미에서 바라보게 됐다. 대학 4학년 때 목격한 4·19혁명은 자유민주주의 실현 가능성에 희망을 줬지만 대학원에서 정치학 공부를 시작할 무렵 닥친 5·16군사정변은 이 모든 것을 탱크로 깔아뭉갰다. 서양의 이론을 통해 배운 정치란 민주주의와 자유를 향해 발전해 온 것이었지만 한국 현실에서는 이 모든 것이 탱크 앞에 무기력했다. 그는 정치학 공부를 그만두고 대학원을 떠났다.

● 문화주의의 힘

졸업 후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1965년 동아일보 기자가 됐고 약 10년간을 문화부에서 근무하며 문화의 의미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문학 학술 출판분야를 주로 담당했던 그는 ‘근대화’와 ‘한국학’ 연구의 붐이 일고 4·19세대가 등장하면서 50년대 전후의 패배감을 극복하고 자의식을 갖게 되는 한국사회의 지적 분위기를 익힐 수 있었다. 박정희 정권의 독재 권력이 사회 전반을 장악해 모든 분야의 자유를 억압해 가는 상황에서 그는 “이런 정치에 대항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 바로 문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정치학과 출신으로 문화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그는 친구들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대학시절부터 친구였던 시인 황동규(서울대 교수)를 통해서 문학과 작가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됐고 문학평론가 김현은 독자였던 그가 비평적 시각으로 문학을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줬다. 중고교 동창으로 70년대부터 인권변호사가 된 황인철을 통해 당시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특히 황인철은 ‘문학과지성’의 물질적 후원자가 돼 주기도 했다.

1970년 창간된 ‘문학과지성’은 김현과 황인철의 지원을 받으며 그가 운영을 맡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1990년대 초반에 세상을 떠난 이 두 사람이 “내게 좋은 일만 하고 먼저 갔다”며 늘 안타까워한다.

그는 1974년 박정희 정권의 유신치하에서 제12, 13대 한국기자협회장을 연임하며 ‘남산’에 끌려가기도 했다. 결국 그는 1975년 해직됐고 곧 문지 동인들과 ‘문학과지성사’를 설립해 관리를 맡게 됐다.

● 급진적 사회주의엔 분명한 선 그어

그는 4·19세대인 자신을 보수주의자라고 평가한다. 4·19혁명은 당시로서는 진보적이었지만 이념적으로는 보수우파의 이념을 구현하려는 것이었다. 마르크스주의를 전혀 배우지 못하고 빨갱이는 무조건 나쁘다고 배운 그의 세대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해야 할 가장 큰 가치로 여겼다. 사회주의와 북한의 존재는 그들의 사고에서 배제돼 있었다.

배제됐던 부분을 배우게 된 것은 1980년대 들어서였다. 그래서 그는 80년대를 후배세대에게 많이 배운 시기라고 한다. 그러나 사회주의리얼리즘의 급진주의가 등장하자 그는 여기까지가 자신이 나아갈 수 있는 한계라고 생각했다. 자본주의의 물신적 반인간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해 공감하며 이념적 진보성을 지지하기도 했지만 편향적인 계급론적 해석, 도식적 혁명론 등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급하고 가볍게 움직이는 세상에서 자신과 같은 보수적 입장이 필요하기는 해도 시대의 흐름과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2000년 문학과지성사를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고 고문으로 물러난 것도 이런 생각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90년대 초부터 문학과지성사는 개인에서 다른 개인으로 넘어갈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세대 그룹에서 다음 세대의 그룹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현 황인철이 세상을 떠나자 그는 ‘문학과지성사’를 주식회사로 바꿔 다음 세대가 참여할 공간을 만들었고 2000년대에는 컴퓨터시대에 걸맞은 사고구조를 지닌 새로운 세대가 운영을 맡아야 한다며 자발적으로 물러났다.

그는 어느 시대건 그 시대의 주역이 되는 세대가 있다고 생각한다. 잘 되든 못 되든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주도해야지 완고하게 늙은 세대가 이들과 경쟁해서 뭔가 하려 한다면 설령 성공한다 해도 그것은 ‘과잉’이라는 것이다.

● 일산에서

2002년 그는 경기 고양시 일산으로 이사를 갔다. 문학과지성사 대표직에서 물러난 후 말로만 은퇴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적으로나 내면적으로 은퇴를 완성하려면 서울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러나서 이 시대를 담당하고 있는 주역 세대들의 일을 조용히 관찰하며 음미하거나 격려하겠다는 것이다. “‘노욕(老慾)’의 추한 꼴을 보이고 싶지 않다”며 그는 웃었다.

현재를 주도하는 오늘의 세대에게 물러나는 세대의 보수주의적 태도와 사유도 필요하겠지만 그는 그것을 자신이 주장하고 가르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 스스로 필요하거나 배울 것이 있다고 판단한다면 자발적으로 배워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특히 “인문주의적 사고와 비판적 사유는 근래의 기능적 ‘신지식인’ 세대가 선배들에게서 배워야 할 덕목”이라고 말했다.

완전히 물러나 있기에는 아직도 그에게 많은 세월이 남아 있다. 하지만 그는 그저 친구나 후배들에게 기여할 일이 생기면 그런 일을 하면서 조금씩 뒤로 물러나다가 어느 날 “그 사람 아직도 살아 있어?”라는 말을 들으며 소리 없이 사라지기를 원한다.

그는 70∼90년대에도 ‘조용히’ 문지세대를 주도했었다. “이제 물러나 있기에 좀더 거리를 두고 현실을 바라볼 수 있게 됐지만 현장감을 잃어가고 있다”며 지적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그를 보며, 노병(老兵)은 쉽게 생겨나는 것도 쉽게 사라지지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지성인임을 선언하는 것은…▼

한 사람이 스스로

지성인임을 선언하는 것은

전폭적인 비극성을 내포한다.

그는 자신의 내부를 끊임없이 동요시키는

현세적 유혹과 자신의 선언을 줄기차게 회의시키는

타인의 무관심과 싸워야 한다.

남들이 차분한 행복감 속에 젖어 깊은 잠을 자는 동안

그는 절망적인 고통 속에

불면의 고통과 씨름을 해야 하며

대낮에도, 간밤의 미진한 악몽에 시달려야 한다.

남들은 그 풍성한 빛과 열을 즐기는 태양 아래서

그는 한 구석 어둠의 조각을 찾아다녀야 하며

깜깜한 한밤중에 한줄기 별빛을 찾아 율리시즈와 같은 방랑을 계속해야 한다.

보통사람들이 무심하게 혜택을 향유하고 있을 때

그는 그 혜택을 증오하며 그 혜택 뒤에 숨은 결함의

그림자를 꼬집어내야 한다.

세계, 그것은 평범한 사람에겐 힘든 낙원이겠지만

그에겐 ‘즐거운 지옥’이다.

-‘지성과 반지성’ 중에서 -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