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의 나무]<4>장회익 녹색대학 총장

  • 입력 2003년 4월 21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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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생명'이론을 통해 생명운동 분야의 새 흐름을 이끌고 있는 장회익 녹색대학 총장. -동아일보 자료사진
'온생명'이론을 통해 생명운동 분야의 새 흐름을 이끌고 있는 장회익 녹색대학 총장. -동아일보 자료사진
《녹색대학의 장회익 총장(65)은 한국 물리학계를 대표하는 중진학자로서 1980년대부터 ‘온생명’ 이론이란 독특한 생명이론을 제시하며 생명운동 분야에서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현실에서 검증 실천하기 위해 올해초 서울대 교수직을 사직하고 3월초 개교한 경남 함양의 녹색대학 총장으로 갔다.》

▼대학 물리학 교재 이해한 工高生 ▼

그는 타고난 과학도였다. 토목기사였지만 유난히 수학과 물리학 책을 많이 보시던 아버지 곁에서 그는 그 책들에 담긴 ‘이상한’ 기호들을 보며 과학도의 꿈을 키웠다. 과학과 기술의 구분도 명확치 않던 시기에 그는 과학자가 되겠다며 청주공고 기계과에 입학했지만 공고의 특성상 학교에서는 물리학을 제대로 배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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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서울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갓 부임했던 담임선생님은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그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고, 그가 공부할 수 있도록 자연과학의 기초가 될 만한 책들을 빌려줬다. 그 때 담임선생님은 대학생용 교재였던 클라이드 E 러브의 ‘미적분학’을 권했는데 그는 이 책을 혼자 읽고 이해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자연의 이치를 찾기 위해 과학도가 되고 싶었던 그는 이렇게 혼자서 과학의 기초를 공부했다. 당시 읽었던 책들 중 방성희의 ‘물리교과서’(상, 하)는 물리학의 이해에 많은 도움을 받은 책으로 지금도 기억한다. 그 무렵 상대성이론에 대한 글을 읽은 것도 물리학자의 길을 택하는 데 주요한 계기가 됐다. 그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상대성이론을 꼭 알고 싶었다.

▼아인슈타인-함석헌에 감화받은 대학생 ▼

막상 서울대 물리학과에 들어와 보니 공부할 것도 많고 내용도 어려웠다. 특히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과 같은 현대물리학은 공부를 해도 정확히 이해를 했는지 아닌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이 철학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그는 문리대에서 철학 강의를 들으며 과학철학, 칸트철학, 현상학 등을 공부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종교와 과학 사이의 충돌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철저한 기독교인이었던 그는 대학에 들어와 종교적 갈등에 빠졌다. 이 때 그에게 영향을 미친 인물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함석헌.

자연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은 완전한 자연법칙의 조화와 질서 속에 우주가 운행되는 것을 보며 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기독교인이었던 함석헌은 기존의 틀을 과감하게 부수며 기독교의 본질을 지적했다. 두 사람을 통해 기독교와 과학의 충돌이란 피상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됐다. 그는 당당하게 기독교인으로서 과학도가 될 수 있었다.

대학 졸업 후 공군사관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다가 1965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캘리포니아대(리버사이드)를 거쳐 루리지애나주립대에서 고체물리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1969). 박사학위논문을 마친 뒤부터 ‘생명’에 대해 관심을 두었다. 이미 10여년 전에 DNA구조가 발견돼서 생명의 문제가 자연과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는 물리학의 기초를 다진 만큼 ‘생명’의 문제를 이해하기에 남들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판단했다. 시카고대 이론생물학연구소로 가서 생물학자의 길을 선택하려고도 생각했지만, 경제적 사정 등으로 인해그는 텍사스대에서 물리학으로 박사후 과정을 밟았다. 여기서 그는 훗날 생명의 기원에 관련된 연구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일리야 프리고진이 열역학적 방법으로 생명현상에 접근하는 모습을 눈여겨보았다.

▼1988년 발표 ‘온생명’論 학계 큰 반향 ▼

1971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한 그는 연구 방향을 바꿔야 했다. 대형컴퓨터가 필요한 물리학 연구를 계속할 수 없었던 당시 상황에서 그는 물리학의 이론적 성격에 관해 연구했고 동시에 ‘생명’ 연구에도 박차를 가했다.

그는 1980년대 중반부터 생명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88년 봄, 당시 유고슬라비아의 고도(古都) 두브로브니크에서 열린 과학철학 학술대회에서 ‘온생명(Global Life)’ 이론을 발표하며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것은 생명의 단위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제시한 것이었다. 의존적 생명의 단위인 ‘낱생명(Individual Life)’과 달리 자족적인 생명의 단위로 태양과 지구를 포함하는 ‘온생명’ 개념을 설정한 것이었다. 온생명 이론은 프리고진의 생명 이론,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어빈 슈뢰딩거의 생명론 등을 비롯해 동서양사상을 바탕으로 그가 창안해 낸 것이었다.

서양의 학문을 공부해온 그는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 또는 동양의 역사와 사상에도 관심을 기울였고 이를 이해하기 위해 한문도 익혔다. 집안의 선조인 조선시대 유학자 여헌 장현광(旅軒 張顯光·1554∼1637)의 ‘우주설(宇宙說)’을 읽으며 성리학의 사상과 자연관을 이해하고 동서양 사상과 학문의 차이점도 깨치게 됐다. 자신은 물리학을 통해서 ‘온생명’사상에 이르렀지만, 성리학자들은 삶에 대한 직관을 통해 자연 전체가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사상에 도달했다는 것, 그럼에도 그 도착지점은 ‘온생명’과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생태계 문제도 ‘온생명의 건강’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생태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그를 주목했다. 그는 1990년 과학의 철학적 기반과 이를 사회, 윤리의 문제로 연결시킨 ‘과학과 메타과학’을 낸 데 이어, 1998년 ‘삶과 온생명’(1998)을 출간하고 본격적인 온생명 사상의 전도사로 나섰다.

그는 “학자들은 자신의 이론적 바탕에 대한 확신없이는 현실에 접근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특히 자신과 같은 자연과학자들은 현실에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 총장은 ‘온생명’ 이론을 통해 생명과 생태계의 문제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됐고, 이를 토대로 현실에 적극 다가서게 된다.

▼서울대서 녹색대로…생명운동 본격화 ▼

2001년 그는 학부과정을 독자적으로 개설하지 않고 10여 개 국립대 과정을 합치자는 서울대 개혁안을 제시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 동안 서울대 개혁론 또는 폐지론이 여러 차례 거론됐지만 서울대를 졸업하고 30년간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던 중진 교수가 이런 혁신적 개혁안을 내놓은 것은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졌다.

이것은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대학서열화가 초중고 교육에 미치는 악영향이 너무도 심각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지만, 한국의 교육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은 오래전부터 그의 머릿속에 있었다. 대학교에 가서도 제대로 된 물리학을 배우지 못했던 그는 언제나 ‘혼자서’ 공부해야 했다. 1971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 후 결심했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제는 내가 학생이라면 받고 싶은 그런 방식의 교육을 하자”였다.

하지만 문제는 물리학 교육이나 서울대 개혁 정도로 해결될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교육의 문제가 문명에 대한 근본적 인식의 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믿었다. 마침 그는 생명운동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녹색대학을 만들자는 제안을 받고, 문명의 문제와 교육의 문제를 결합시켜서 기존 대학의 틀을 넘어 새로운 틀로 ‘교육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교육을 통해 문명의 대안을 찾자는 시도였다. 마침내 그는 2003년 봄 서울대를 사직하고 녹색대학 총장에 추대됐다.

녹색대학은 후원회인 ‘녹색대학을 지탱하는 사람들’의 1800여 명이 출연한 3억원을 토대로 해서 설립됐다.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 이정우 철학아카데미 공동대표 등 생명운동에 관심을 가진 학자와 활동가들이 교수로 참여해 녹색문화학, 녹색살림학, 생명농업학, 생태건축학, 풍수풍류학 등을 강의한다.

이제 장 총장은 온생명 사상으로 세계를 보는 비전을 가지고 이를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검증하려 한다. 녹색대학이 다른 대안공동체와 다른 점은 바로 학문공동체가 중심이 된다는 사실이다. “새 문명을 이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 정신을 실천하고 전파하는 최고의 ‘지성’을 길러내야 한다”는 것이 장 총장의 지론이다.

▼'온생명' 이론이란 ▼

기존의 생명 개념이 대체로 개별적 생명체를 단위로 하는 데 비해 온생명은 지구상에 나타난 전체 생명 현상을 하나의 실체로 본다. 이것은 개별 생명체를 유지하는 고립된 국소적 질서가 그 자체를 물리적으로 유지 계승시키는 주변 여건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다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온생명 이론에 따르면 지구상에는 태양과 지구 사이에 지속적인 에너지 흐름을 바탕으로 대략 35억 년 전에 하나의 생명이 형성된 후 성장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됐다. 태양-지구 사이에 나타난 이 생명은 우주 내의 다른 생명과는 무관하게 그 자체로서 하나의 독립된 실체를 이루고 있으며 이것이 우리가 보는 지구상의 ‘생명’이다.

물론 현재까지 알려진 온생명의 예는 태양과 지구사이의 에너지 흐름을 바탕으로 지구상에 나타난 생명 하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온생명’은 지구상의 생명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와 다름없이 사용될 수도 있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장획익 총장을 비롯한 생명운동에 관심을 가진 학자와 활동가들이 교수로 참여하고 있는 녹색대학. -동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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