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의 테마여행]화가들의 유토피아 남프랑스

  • 입력 2003년 4월 3일 16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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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와 샤갈의 미술관이 있는 니스의 해변풍경. 해변에 깔린 검은 자갈로도 유명하다. 4월이면 벌써 햇볕을 찾아 남하하는 북유럽의 여행객들로 해변이 북적이기 시작한다.사진제공 월드콤
마티스와 샤갈의 미술관이 있는 니스의 해변풍경. 해변에 깔린 검은 자갈로도 유명하다. 4월이면 벌써 햇볕을 찾아 남하하는 북유럽의 여행객들로 해변이 북적이기 시작한다.사진제공 월드콤
지중해의 푸른 바다와 일년 내내 변함없이 내리쬐는 포근한 햇살. 세상에 지친 예술가들에게 프랑스 남부 리비에라만큼 여유로움을 선사하는 곳은 없을 것이다. 이미 18세기부터 시작된 예술가들의 남행은 인상파 화가들에서 두드러졌고, 2차 세계대전의 피바람이 그친 뒤로도 그 행렬은 계속됐다. 프랑스 남부의 지역 관광청들은 이를 기억하기 위해 각 예술가들에게 크고 작은 미술관들을 헌정했고 이를 관광상품화 해서 하나의 테마여행 루트로 개발해 놓았다.

● 아를에서 시작되는 고흐의 흔적

‘빛의 화가들의 흔적을 좇아서’라고 이름붙은 남프랑스의 예술 테마여행 상품은 프로방스-아를-코트다쥐르 관광국의 연합상품명이다. 이 코스는 프로방스의 아비뇽에서 시작해서 생레미, 아를, 엑상프로방스를 거치는 코스로 이웃한 코트다쥐르의 작은 미술관들을 돌아보는 예술기행상품과 연결된다.

길 안내자로 삼는 화가는 단연 고흐와 세잔이다.

고흐가 ‘예술의 미래는 남프랑스에서 발견될 것이다’라고 언급한 것처럼 프로방스는 화려한 색감과 따뜻한 기후, 온화한 사람들로 예술가들의 미감을 설레게 하는 곳이다.

고흐가 입원했던 생 레미의 정신병원. 지금은 고흐의 그림이 판넬로 걸린 관광명소가 되었다.
엑상 프로방스의 세잔 박물관. 사진제공 캠프

우선 고흐가 처음 여행을 시작해 도착한 아를. 오래 전부터 예술가의 공동생활에 기초한 유토피아 건설을 꿈꾸었던 그가 고갱을 초대한 도시다. 이 곳에서 광기에 휩싸인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른다. 지금의 반 고흐 병원에서 그 다음해 옮긴 생레미의 정신병원까지 오랜 병원생활 동안 무려 200점 가까이 그림을 그려냈다.

그가 병상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그렸던 풍경과 끊임없이 화폭에 옮긴 올리브나무들, 해바라기들이 캔버스에 남겨졌고 지금도 이 지역엔 그 풍경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1세기가 넘게 지난 지금도 옛날 모습 그대로 노란색인 카페에서는 고흐가 1888년 9월에 그린 ‘밤의 카페 테라스’를 떠올려볼 수 있다.

엑상프로방스 출신의 화가 세잔의 흔적 역시 엑상프로방스 전역에서 만나 볼 수 있다. 고흐와는 달리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난 세잔은 이 곳에서 생애 대부분을 보냈다. 교외로 나가면 그가 사랑했던 프로방스의 풍경들이 시간을 거슬러 눈앞에 펼쳐진다. 특히 1011m의 생트 빅투아르산은 세잔의 그림 속 모습 그대로이다. 어릴 적 고향 친구인 에밀 졸라와 함께 근교에 있는 아르크 강가나 비베뮤의 채석장으로 놀러 다니면서 목탄을 갖고 낙서를 즐겼던 세잔은 그 풍경들을 성장 후 그의 작품 속에 등장시키곤 했다. 이 곳에는 당시 그가 사용하던 아틀리에가 그대로 보관되어 있고 거리 곳곳에 동판으로 세잔이 다녔던 길이 표시돼 있어 이방인이라도 쉽게 그 흔적들을 코스별로 더듬을 수 있다.

앙티브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의 외관
고흐의 작품 배경이 된 아를의 카페.사진제공 캠프

● 코트다쥐르에서 만난 예술가들

그리스인들이 처음 도착해서 세운 도시로 알려져 있는 앙티브에는 피카소 미술관이 있다. 원래 중세의 대주교 저택이었다가 이후 그리말디 가문의 요새이자 성으로 쓰였던 미술관 건물은 1946년 이후로는 피카소의 거처가 되었다.

이 곳에서 피카소는 지중해를 닮은 파스텔톤의 색조로 다양한 시도에 몰두하게 된다. 신화와 앙티브 해안마을의 전설 등이 캔버스에서 되살아났다. 세인들은 당시 연인 프랑수아즈 지로와 함께 이 성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기 때문이라고도 풀이한다.

25점의 주요 회화와 스케치를 비롯해 그리스 토기 제작방식을 떠올리게 하는 수백점의 도예품들로 가득 찬 피카소 미술관은 이 작은 마을을 세계적인 예술의 도시로 만들어주었다. 현재 피카소 미술관은 세 군데. 앙티브 외에 파리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각각 세워져 있다. 하지만 이 곳은 오직 앙티브와 프랑스 남부 연안의 정취에서 영감을 받은 것들, 이 곳에서가 아니면 그려내지 못했을 것들만 전시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유럽 최대의 카니발이 열리는 곳으로도 유명한 니스. 이 도시의 가장 오래된 구역인 시미에에는 마티스 미술관과 샤갈 미술관이 이웃하고 있다.

마티스는 니스를 끔찍이도 사랑한 나머지 이 곳에 묻힌 인물. 1921년부터 니스에서 살기 시작한 마티스는 야수파 시기가 지난 뒤 청결하고 간결해진 선과 색을 이용하거나 화려한 아라베스크 무늬 등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시미에에 있는 로마시대 원형경기장 인근의 마티스 미술관은 ‘창문이 있는 정물’ 등 그가 50년대 이후 몰두해 제작한 콜라주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17세기 별장 건물이었던 미술관은 외관과는 달리 밝고 세련된 느낌의 실내 전시 공간이 갖춰져 있다.

마티스가 니스에 쏟아 부었던 사랑은 이 곳에서 북서쪽으로 20㎞ 떨어진 방스의 로제르 성당 건축에서도 드러난다. 1948년부터 51년까지 건축된 이 성당은 내부에 그려진 성 도미니크 벽화를 비롯해 마티스 예술의 결정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샤갈 미술관은 시미에 지역 들머리에 있다. 사실 샤갈은 자신이 만년을 보낸 생폴드방스에 미술관을 세우고 싶어했지만 마땅한 부지도 없고 시 당국과 의견 조율이 쉽지 않아 이 곳 니스로 낙점된 것. 니스의 샤갈복음미술관은 그의 작품 가운데서 특히 성서를 테마로 한 것들만 모아 놓았다. 노아의 방주, 천사, 홍해의 기적 등 성서의 몇몇 상황들이 영화처럼 화폭에 옮겨졌고 대부분 대형 캔버스를 이용해 보는 이를 긴장시킨다. 유화뿐만 아니라 대형 모자이크, 스테인드글라스 등 다양한 기법을 함께 만날 수 있지만 메시지는 오직 하나. ‘신의 영광과 평화’다.

시인이면서 화가, 희곡작가, 무대 디자이너, 평론가, 영화 감독과 제작자 등 현대 예술 분야 전반을 섭렵했던 장 콕토. 이탈리아 접경의 해안도시 망통은 그의 흔적으로 더욱 빛나는 마을이다. 17세기 외적을 막기 위해 세운 바스티용 요새는 1967년 장 콕토 미술관으로 변신해 일반에 공개됐다. 그가 망통시청의 웨딩홀 장식과 벽화 제작 의뢰를 받았던 것이 1950년대 말. 이 작업이 끝난 뒤 콕토는 낡은 요새에 자신의 예술을 집대성할 계획을 세웠고 생전에 시작된 미술관 개조 작업은 1963년까지 계속됐다.

● 여행정보

1. 찾아가는 길

우리나라에서 프랑스 남부 도시로 이동하려면 대한항공이나 에어프랑스를 이용, 파리를 경유해서 니스로 이동해야 한다. 파리에서 다시 국내선을 타고 니스국제공항으로 이동하는 데는 1시간35분 정도 걸린다. 이 곳에 각 남부 도시로 가는 기차편과 일반 교통편이 마련되어 있다.

2. 기타 정보

각 미술관 관람정보와 위치 등 프랑스 남부 여행에 관한 문의는 프랑스 관광성(www.franceguide.or.kr, 02-773-9142)으로 하면 된다.

여행칼럼니스트 nolja@world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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