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연의 젊게 삽시다]비만, 행복을 밀어내는 병

  • 입력 2003년 3월 27일 17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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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한 연구소의 통계에 따르면 8등신 미녀들의 10%가 자신의 몸매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한다. 국내 다이어트 산업 시장규모가 1조원을 넘어섰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은 가끔씩 터지는 다이어트 후유증 사고에는 촉각을 곤두세우지만 비만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엔 별 관심이 없다.

2001년 서울시 학교보건원 조사에 따르면 남학생의 17%, 여학생의 11.2%가 치료가 필요한 비만 판정을 받았다. 청소년기 비만이 쉽게 치료되지 않는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20년 후에는 국민 100명 중 약 15명이 허리둘레 40인치 이상의 고도 비만 환자가 될 우려가 높다.

‘뚱뚱하다’가 ‘건강하다’와 동격을 이루던 때가 있었다. 비만은 부러움을 살 만한 부자들만의 병(?)으로 풍요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최근 비만은 완치가 어려운 질병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서구에서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국제비만특별조사위원회(IOTF)의 최근 조사 결과 세계에서 과체중 또는 비만인 사람은 17억명. 세계 인구(62억명)의 약 27%에 해당한다.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는 연간 250만명이 체중 관련 질환으로 사망했고 2020년에는 그 수가 500만명에 이를 것으로 봤다. 이는 기름진 육류를 즐겨 먹는 서구 사회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아시아의 비만 인구 성장률이 서구를 앞질렀다는 보고도 있다.

비만이 암이나 에이즈(AIDS)처럼 생명에 치명적이지 않으면서도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개인의 건강한 생활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비만에서만 벗어나도 골관절염을 50%까지 줄일 수 있다. 비만은 지방간, 담석증, 수면중 무호흡증, 대장암, 전립샘암, 유방암 등 질병을 동반할 가능성이 높다. 또 ‘살찐 정력가’라는 말이 없는 것처럼 성기능 장애도 불러온다. 배가 나온 남성일수록 남성호르몬 분비가 줄어들어 발기 부전의 원인이 되고 지나치게 두꺼워진 아랫배에 음경이 파묻혀 성행위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결국 대인관계가 위축되고 우울증과 불안증을 불러와 거식증, 폭식증, 야간 식이 증후군 등에 시달리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미국 보스턴 아동병원의 마크 페레이라 연구원은 15년간의 연구 끝에 1주일에 두 번 이상 패스트푸드를 먹고 하루 2시간반 이상 TV를 시청하면 비만이 될 위험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3배나 커진다고 결론 내렸다. 지난해에는 미국 비만자들이 패스트푸드업계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기도 했다. 최근 국내 의학계는 체질량 지수(BMI·체중을 키(m)의 제곱으로 나눈 수치)가 25이상인 비만 환자가 전체 성인의 약 25%에 이른다는 추정치를 내놓았다. 문제는 한국의 비만 유형은 상체와 복부에 지방이 몰리는 이른바 올챙이배 형. 유독 내장에 지방이 많이 축적되는 복부비만은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등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높다.

비만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유전적 또는 환경적 이유로 체내 에너지 조절 기능이 깨져서 생긴, 그래서 치료가 반드시 필요한 질환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언제부터 비만이었는지, 체내 지방 분포는 어떤지 등 비만의 원인을 우선 파악해야 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지방 흡수 차단제나 식욕 억제제도 원인 파악 뒤에 처방해야 한다.

기술의 발달로 엔더몰로지, 아로마 마사지, 부분 지방 흡입술 같은 외과적 비만 치료도 가능하다. 여기에 50여년 전 프랑스의 피스토르 박사가 시작한 메소테라피도 비만치료 효과가 입증되면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셀룰라이트(지방주머니) 때문에 울퉁불퉁해진 피부도 메소테라피의 멀티프리킹(multipricking) 방법으로 일주일에 한번씩 두 달가량 받으면 많이 개선되며 특히 부분비만에도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방법은 자기 스스로 노력을 한 뒤의 2차적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먹을 때 손과 머리를 같이 쓰자. 생각하면서 먹자는 말이다. 되도록 흰밥이나 빵보다는 섬유질이 많은 보리나 정제되지 않은 잡곡과 야채를 많이 먹자. 단백질원으로는 생선이 좋고 지방원으로도 등푸른 생선이 좋다. 또 움직일 수 있는 곳에서는 움직이자. 운동할 시간이, 공간이 없다는 말은 핑계일 뿐이다. 엘리베이터 옆의 계단이 운동기구이고 한 정거장 먼저 내린 버스 정류장 옆 인도가 운동 공간이다. 이렇게 하루 100㎈씩만 열량소비를 늘려도 1년이면 5㎏을 줄일 수 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은 비만 치료에 딱 맞는 말이다.

이무연 제롬 크로노스 원장·의사 mylee@GeromeKron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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