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은의 이야기가 있는 요리]게살 샐러드

  • 입력 2003년 3월 13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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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골목골목은 보물창고 같다. 좁은 미로같은 코너를 돌면 펼쳐지는 작은 레스토랑, 오래된 보석가게 혹은 또다른 골목들이 끝이 없다. 투박한 돌길은 언제나 나의 구두굽을 엉망으로 만들지만 100년 아니 200년 전 바로 이 길 위를 내달렸을 고급 마차 속의 여인들을 생각나게 하여 나를 설레게 한다. 에밀 졸라의 나나, 혹은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처럼 잘록한 스커트를 차려입고 사랑으로 물든 뺨을 마차창에 기대었을 그녀들은 프랑스의 봄날에 어울리는 얼굴들이다. 평탄치 않은 삶속에서 장미향을 뿜어내던 여인들을 떠올려보자. 오늘은 프랑스 내륙에서 물맛이 가장 좋다는 부르고뉴지방으로 봄놀이를 가려 하니까.

● 부르고뉴

부르고뉴 지방은 물 좋고 산세가 수려하다. 파리 시내에서 기차를 타고 두어시간만에 다다르는 이곳은 예로부터 파리 귀족들의 휴식처이기도 했는데, 특히 물이 맑은 동네인지라 이곳 유모들의 젖의 질이 좋다고 여겨 공주, 왕자들을 모두 부르고뉴로 내려보내 기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돈이 흘러들어왔고 떠들썩하게 번화하기보다는 고급스러운 상권과 소수를 위한 미식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다.

부르고뉴를 우리 개념의 ‘도(道)’로 친다면 다시 몇 개의 ‘군(郡)’으로 나뉘는데, 그 중 ‘코트도르’(cote d’or, ‘황금언덕’이라는 뜻)라는 동네에서 오래 둥지를 지켜온 일류 요리사를 만난 적이 있다.

베르나르 로와조라는 이름의 이 고집 센 요리사는 일류 요리를 만들어내는 특급 셰프로 프랑스내에 알려져 있고 그의 이름이 붙은 책과 소스류가 판매될 정도다. 그러나 그의 주방은 화려한 파리가 아닌 부르고뉴에 박혀 있었다. 흔히 스타급 요리사로 급부상하게 되면 파리를 거쳐 뉴욕으로, 도쿄로 진출하며 사업가가 되어 버리는 몇몇 요리사들과 비교되어 시골 구석의 로와조는 더욱 빛나 보였다.

필자가 실제로 그의 레스토랑을 찾아 코트도르로 떠났던 몇 년 전, 관광 비수기인 동네는 아주 한가로웠다. 로와조의 레스토랑은 멀리서 찾아오는 미식가들을 위해 멋진 잠자리도 갖추고 있었는데, 호텔처럼 운영되는 객실은 소박한 앤티크 가구로 채워져 있었고, 문을 열면 보이는 정원에는 잔디밭과 꽃나무가 정성스레 가꿔져 있었다.

두 시가 조금 넘어 도착한 내게 혹여 시장기가 있지 않은지 매니저가 물어왔고, 간단한 요깃거리를 부탁한 지 30여분 후에 샴페인 한 잔과 푸릇한 샐러드가 내 방에 날라져 왔다. 게살의 미세한 단맛과 야채가 어울린 이 게살 샐러드가 바로 오늘의 요리. 로와조의 요리책에도 그 레서피가 실려있는 게살 샐러드가 여행에 피로해진 나의 입맛을 확 당겨주었던 기억이 난다.

저녁을 기다리며 둘러본 동네풍경은 낡은 교회와 소박한 맥주집같은 일상적인 모습들이었고, 다만 하늘이 구석구석 너무 파래서 ‘이 하늘이 특급 셰프의 발목을 붙잡는가’하고 생각했었다. 저녁 식사시간 별채에 마련된 레스토랑은 적당한 크기의 홀을 갖추고 있었고 빳빳한 테이블보와 은식기들이 정갈하게 놓인 식탁에서는 과장되지 않은 셰프의 말없는 고집이 엿보였다.

● 로와조의 음식

핑크빛이 도는 로제 샴페인으로 식사는 시작되었고 카나페에서 전채로, 수프로 이어지는 맛의 전시는 한 코스 한 코스 지날수록 더욱 깊은 맛이 되어 나를 잡아끌었다. 부르고뉴산 레드와인의 섹시한 자줏빛이 달빛에 익어 둥근 그림자를 떨굴 때쯤 나는 디저트를 먹고 있었다. 미국 영화 ‘Big Night’ 속 주인공인 요리사 프리모의 명 대사가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맛난 음식을 먹는 것은 신에게 가까워지는 일이다. 즉 천국이 따로 없다.”

다음날 아침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와인에 흠뻑 취했던 나의 몸이 너무나 가뿐했고 부기나 숙취없이 또다시 식욕이 돌고 있었다. 가벼운 아침식사 후 나를 기다리는 것은 로와조와의 인터뷰였다. 이날 로와조 셰프와 나눈 대화는 두고두고 나의 글에 인용되곤 하는데 이를 테면 그의 ‘물맛’에 관한 고집같은 거다.

셰프는 부르고뉴에 눌러앉게 된 이유가 ‘수질’이라고 말하며 좋은 물 먹고 자란 좋은 재료를 갖게되니 좋은 요리는 자연스레 만들어지게 되어 떠날 수가 없게 되었다고 했다. 정말로 전날밤 저녁의 음식들은 재료가 충실했었다. 아삭거리는 야채들은 모두 줄기가 짱짱했고 터질 듯 통통한 생선의 하얀 속살하며 우유를 들이부은 것같은 치즈와 버터. 이어서 셰프는 말했다. “나에게 있어 요리의 핵심은 다음날 아침 얼마만큼 내 뱃속이 편안한가에 있다.” 명료한 이 한 문장이 내게 준 깨우침은 아직도 생생하다.

고집을 지켜나가는 예술가의 삶이란 천국과 지옥을 수만번 오가는 자찬과 자학의 연속이다. 에밀 졸라의 또다른 소설 ‘작품’의 주인공인 화가는 끝없이 떠오르는 이미지의 여인을 그리다 그리다가 미쳐버려 목을 매고, 이미지를 좇는 눈에 모든 생을 걸던 먼 옛날의 예술가들은 마녀나 악마로 치부되던 시대도 있었다. 얼마 전 접한 로와조의 자살소식은 너무나 큰 충격을 주어 나를 우울증에 빠뜨렸다. 좋은 물을 물감 삼아 대작을 그려가던 예술가 로와조는 또 어떤 이미지에 목이 말라 괴로웠던 것인지 마음이 아파온다. 그의 비극적 말로를 두고 이유가 분분한 가운데 프랜차이즈가 난무하는, 계산기가 요리하는 이 시대에 고집스레 버텨가던 거장의 빛나던 눈빛이 아주 그립다.

▼게살 샐러드▼

게살 300g, 완두콩 150g, 양파 1개, 버터 25g,

올리브유 1/5컵, 식초 1/4컵, 설탕 2큰술, 소금, 후추,

샐러드 야채, 토마토 100g, 토마토 퓨레 3큰술

1. 양파는 아주 잘게 다져서 물에 담가두어

매운맛을 빼준다.

2. 1을 15분쯤 후에 체에 거르고 잘게 찢은 게살과 한데

섞어서 식초 1큰술, 설탕 1큰술, 소금, 후추로 간해둔다.

3. 2에 게 내장(진짜 게를 썼으면 등껍질 안쪽을 긁어서

모은다), 토마토 퓨레, 완두콩을 버터에 볶아둔다.

4. 올리브유, 식초, 설탕을 볼에 넣고 거품기로 빠르게 저어

설탕이 완전히 녹으면 드레싱이 된다.

5. 4에 씻어둔 샐러드 야채와 토마토를 버무린다.

6. 접시에 5를 깔고 2를 꼭 짜서 중앙에 올린다.

7. 마지막으로 3을 상단에 둘러준다.

박재은 파티플래너·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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