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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의 이야기가 있는 요리]리듬&허브 비스킷

입력 2003-02-20 18:32업데이트 2009-10-10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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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얼마 전 음악을 들으며 숙성되는 과자반죽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국내의 한 업체가 자사제품인 비스켓을 반죽할 때 반죽 내 효모의 숙성을 위해 음악을 들려준다는 것이었다. 음악을 들으며 자란 젖소의 우유 산출량이나 쇠고기의 육질이 훌륭하다는 사례는 들어봤어도 빵반죽 속의 미생물인 효모까지도 음악에 반응한다는 것은 작은 충격이었다. 결국 소든 효모든 맛있는 결과물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과 관심 속에 다뤄져야 한다는 말이다.

● 부엌의 사운드트랙

음악이라는 예술의 형태는 그 줄기에 ‘박자’라는 뼈대를 두고 있다. 그 박자란 것이 바로 우리 심장고동의 일정한 울림과 같은 것으로 음악 속 빠른 박자는 심박을 덩달아 빠르게 몰아가서 흥분하게 만들며 느린 박자는 반대로 안정시킨다. 음악의 박자, 흔히 말하는 비트와 내 속의 심장박동이 다시 하나의 박자를 엇이루어 치고 받는 ‘육체적 경험’에 비하면 미술품을 감상하거나 문학작품을 읽을 때 오는 감동의 파장은 형이상학적이고 정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25, 26년전, 서울 어느 동네의 작은 부엌. 다섯 살이나 여섯 살쯤 된 나는 개수대 모서리에 올라앉아 요리하는 엄마를 바라본다. 좁은 부엌을 가득 메우는 음식냄새, 불에 지지고 볶는 스펙터클한 장면들은 친구들과의 그 어느 놀이보다도 흥미로웠다. 친구같은 회사원 남편과 두 남매를 둔 평범한 엄마는 그러나 비범한 요리솜씨로 주위의 동경을 사곤 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엄마의 부엌 한 쪽에는 늘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당신이 직접 흥얼거리던 시기가 있었고, 살림형편이 나아지면서는 작은 오디오가 부엌 옆에 놓여 ‘보헤미안 랩소디’부터 ‘가을비 우산속’까지 그야말로 장르를 넘나드는 배경음악이 부엌에 늘 흘렀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정식으로 요리를 배운 적 없는 엄마의 맛의 비결이 바로 그 음악에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음악으로 숙성된 김치와 직접 담그는 장들은 그 맛이 늘 특별했고 그 음악을 듣고 자란 필자는 너무 빨리 숙성되어 애늙은이가 되었다.

● 창의력을 키우는 요리학습

어린 시절에 요리를 다양하게 접한 아이들은 창의력이 발달된다고 한다. 거창한 ‘요리’가 굳이 아니더라도 밀가루반죽 따위를 밀고 조물락거리며 빚어보는 동안에 감각은 발달하기 때문인데, 실제로 많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음식만들기’를 통한 교육프로그램이 발달되어 있다.

예를 들어 오늘의 요리인 허브 비스킷을 보자. 만드는 법은 아주 간단하여 아이들도 참여하기 제격이다. 밀가루에 반죽을 위한 물 대신 막걸리를 섞어 약간의 발효를 유도한다는 원리다.

아이들에게는 밀가루를 채치도록 한다. 채를 치는 동안에 밀가루와 공기가 섞여 완성되는 빵이 더 부드럽게 된다고 설명해준다. 컵에 막걸리를 따른 뒤 냄새를 맡게 하여 새콤달콤한 맛을 후각으로 느끼게 할 수도 있다. 반죽이 완성되면 젖은 면보를 덮어서 반죽을 잠깐 쉬게하자. 이 때 막걸리 속의 효모성분이 잘 일어나 반죽도 부드럽게 부풀리고 감칠맛도 더할 수 있도록 음악 한 곡 틀어주면 어떨까? 아직 미혼인 내게 육아에 관한 수다는 좀 쑥스럽지만 요리사로서 보는 요리의 과정 하나하나는 감각발달에 좋다는 확신이 있어 하는 말이다. 적당한 크기로 구워낸 반죽은 버터나 기름이 섞이지 않아서 담백하고, 강하게 퍼지는 허브향이 봄느낌을 준다. 옛날의 봄처럼 뒷산이 온통 진달래 천지였다면 립스틱색깔같은 진한 핑크빛 진달래를 통째로 졸여 만든 시럽을 곁들였을텐데 아쉽다. 현대사회에서는 ‘탐미’가 점점 어려워진다.

● 음악이 흐르는 김치냉장고

숙성되는 식재료 이야기가 나온 김에 와인도 한번 짚고 넘어가보자. 와인이야말로 숙성과정에 따라 맛의 완성도가 현저히 달라지니까. 수확한 포도는 두 번의 발효를 거쳐 병으로 들어가는데, 와인 한 병당 적어도 1㎏ 분량의 포도가 고스란히 쓰인다고 한다. 그 속에 담긴 발효성분은 시간이 지날수록 숙성을 거듭하기 때문에 한날 한시에 태어난 와인이라도 개봉시기에 따라 다른 맛을 낸다. 우리나라에서도 와인의 수요가 점점 늘고 있는 가운데 제법 큰 셀러(와인저장실)를 갖춘 와인숍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셀러 안에 감미로운 음악을 들려주면 어떨까? 음악감상을 하며 익어가는 와인들이 10년 뒤, 20년 뒤에는 어떤 향기를 풍길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비단 와인 뿐만이 아니다. 김치나 치즈, 또는 각종 장류 역시 숙성시 음악을 들려주면 어떤 맛의 변화를 보일지 호기심을 일으키는데, 예를 들어 김치냉장고에 음향시스템이 있어서 음향을 이루는 진동파가 냉장고 내부의 김치에 전달되도록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맛’에 대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듯하다.

사상 최고의 상금이 걸린 로또복권을 추첨하던 주말, 나는 어느 카페에 앉아 있었다. 손님 종업원 할 것 없이 온통 복권 얘기로 떠들썩했고 그 와중에 배경음악으로 흐르던 콤팩트디스크가 튀기 시작했다. 샹송의 한두마디가 열 번 넘게 반복되고 있었으나 카페를 가득 메운 누구 하나 고개들어 알아채는 이가 없었고 그렇게 몇분이 지나갔다. 빵 반죽 속 효모도 음악소리에 반응한다는데 과연 우리들은 만물의 영장이 맞는지 의심스러운 순간이었다. 잘익은 김치 먹고 봄 오는 소리를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인생이라면 오히려 ‘역전’시키지 않는 것이 행복일 수도 있을 것이다.

● 허브비스킷

밀가루 2컵, 막걸리 1컵, 달걀 1개, 소금 1/2 작은술, 허브 말린것

1. 밀가루는 소금과 함께 채친다.

2. 1에 달걀과 막걸리를 섞고 반죽한다.(반죽의 농도는 생수로 조절)

3. 2의 반죽을 동그랗게 만들어 젖은 면보를 덮어 30∼40분 둔다.

4. 살짝 부푼 반죽을 한 번 쳐서 가스를 빼 주고 다시 면보를 덮어 10분 정도 둔다.

5. 200도로 예열한 오븐에 아이들 주먹 크기로 반죽을 떼 얹고 위에 허브가루를

뿌려서 25분 내외로 굽는다.

6. 오븐에서 꺼내기 전에 달걀물을 칠해주면 노릇한 색감이 살아난다.

*이 비스킷은 크림치즈를 바르면 와인과, 과일잼을 바르면 커피나 티와, 계란과 케첩을 곁들이면 아침식사로 알맞다.

박재은 파티플래너·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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