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 세계]MD "저보고 히트상품 제조기래요"

  • 입력 2002년 11월 10일 17시 23분


LG홈쇼핑의 고은정 대리(오른쪽)가 자신이 기획한 화장품 판매방송 녹화를 앞두고 스튜디오에서 쇼호스트와 방송에서 설명할 내용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박중현기자
LG홈쇼핑의 고은정 대리(오른쪽)가 자신이 기획한 화장품 판매방송 녹화를 앞두고 스튜디오에서 쇼호스트와 방송에서 설명할 내용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박중현기자
《“MD가 뭐냐하면요 ‘뭐든지 다한다’를 줄인 말이래요.”

LG홈쇼핑에서 이·미용 상품을 8년간 맡으면서 수많은 미용기구와 화장품으로 ‘대박’을 터뜨린 MD 고은정(高恩廷·30)대리는 이 회사 80여명 MD 가운데 최고 베테랑으로 꼽힌다.

고 대리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1995년 LG홈쇼핑의 전신인 한국홈쇼핑에 입사했다. 상품영업쪽으로 발령받아 처음 맡은 일이 이·미용 상품을 발굴하고 시장성을 검토해 구매로 연결시키는 MD.》

●LG홈쇼핑 베테랑MD 고은정 대리

MD는 원래 유통업, 특히 패션 분야에서 상품을 사들이는 구매담당자(Merchandiser 또는 상품기획자)를 뜻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홈쇼핑과 인터넷쇼핑몰 등으로 유통채널이 다양해지면서 업무영역이 크게 넓어지고 있는 직종이다.

MD의 주된 업무는 팔릴 만한 상품을 찾아내 수요분석과 시장조사를 거쳐 최종적인 판매전략까지 세우는 것. 최근 홈쇼핑에서는 직접 화면에 얼굴을 내밀고 상품을 소개하는 ‘방송인’의 역할까지 더해졌다.

고 대리가 터뜨린 최고의 ‘히트작’은 1999년 10월 LG홈쇼핑에 첫선을 보였던 가정용 스트레이트 퍼머기.

“당시 스트레이트 퍼머가 굉장한 인기였거든요. 미용실에 가지 않고 스트레이트 퍼머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시장조사를 했어요. 기계의 대당 가격이 25만∼30만원이었는데 유통과정이 6∼7단계나 돼서 중간마진이 엄청나더군요. 수입업체와 담판을 지어 유통과정을 건너뛰고 홈쇼핑에서 5만9000원에 팔기로 했죠.”

이 제품은 첫날 20분 방송에 준비된 물량 300대가 모두 매진됐다. 이후 올해 초까지 총 100만대가 넘는 퍼머기를 팔아 한국 홈쇼핑업계 사상 초유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제품 하나를 찾아내 판매로 연결시키기 위해 MD는 수많은 난관을 이겨내야 한다.

“2000년 4월 이탈리아의 미용쇼에서 미국산 치아미백제를 처음 봤는데 팔릴 것 같더라고요. 이가 누런 사람들이 얼마나 고민이 많은데요. 그런데 막상 수입하려니까 한국 의약관련 법규와 마찰이 있는 거예요. 식품의약청을 찾아다니고 법률을 검토해 결국 2년만인 최근에야 수입이 허용돼 팔게 됐죠.”

고대리는 오전 8시반에 출근해 몇차례 회사 관계자들과 회의를 가진 뒤 오후에는 이·미용 제품을 생산하거나 수입하는 업체 5∼6곳의 관계자와 면담하거나 직접 업체를 찾아나선다.

“몇 해 전만 해도 태평양이나 LG생활건강 같은 유명 화장품업체는 홈쇼핑에 제품을 내놓는 걸 꺼렸어요. 중저가 제품 같은 느낌을 줄까 봐서죠. 하지만 이제는 홈쇼핑의 위상이 높아져 한결 편해졌어요. 새로 개발한 화장품이나 이·미용제품을 써보고 소개해달라는 중소기업 사장님들의 연락이 하루에 50여통씩 와요.”

현재 LG홈쇼핑에서 일하는 MD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40%. 백화점이나 할인점 등 ‘오프라인’ 유통업체에 비해 대단히 높은 비율이다. 홈쇼핑의 특성상 화장품 의류 주방용품 가구 등 여성이 타깃인 제품이 많다보니 여성 MD의 활약이 두드러진 것.

고 대리가 한 달에 올리는 상품 매출은 약 35억∼40억원 정도. 1년에 올리는 매출은 500억원대에 이른다. 목표판매액을 넘는 액수의 일정 부분을 보너스로 받기 때문에 연봉은 같은 연차 대기업 직장인의 2배 수준.

“MD를 하려면 대학에서 마케팅이나 경영학, 심리학같은 걸 공부해두는게 좋아요. 하지만 더 중요한 건 ‘호기심’과 ‘순발력’이죠. 나이가 훨씬 많은 사람과 허물없이 만나 필요할 때 담판도 지을 수 있는 배짱이 필요해요. 제일 중요한 건 ‘고객의 생각이 나와 다를 수 있다’는 유연한 마음가짐입니다.”

이 직종의 미래는 어떨까.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최고의 MD들이 나중에 프리랜서로 활동해요. 독자적으로 전 세계를 돌며 팔릴 만한 상품을 ‘소싱’해서 홈쇼핑업체와 계약을 맺고 물건을 내놓는거죠. 머잖아 한국에도 그런 시대가 오지 않겠어요?”

고대리는 자신감 넘치게 대답했다.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CJ홈쇼핑 쇼호스트 박진호씨

CJ홈쇼핑의 ‘달리는 쇼호스트’ 박진호씨가 운동복 차림으로 직접 달리기를 하며 러닝머신 판매방송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제공〓CJ홈쇼핑

“매주 방송하면서 뛰는 거리가 마라톤 풀코스 정도는 됩니다.”

CJ홈쇼핑의 ‘달리는 쇼호스트’ 박진호(朴振豪·35)씨. 스포츠를 좋아하는 개인 취미와 맞물려 스포츠, 레저분야 홈쇼핑 방송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이력은 직업만큼이나 특이하다.

“대학시절 운동이 좋아서 근육을 가다듬는 헬스에 빠졌어요.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기 전에 MBC 아카데미 1기로 연기과정을 수료한 것이 계기가 돼 방송과 인연을 맺게 됐죠.”

경원대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박씨는 처음에는 전공을 살려 그래픽 디자이너로 2년간 활동했다. 그러나 94년 초 국내 누드광고 1호로 알려진 ‘ICE맥주’ 광고 모델로 출연, 옷을 벗고 얼음을 껴안은 광고가 주목을 끈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MBC의 ‘경찰청 사람들’에 청년사업가, 오렌지족 등으로 출연했고 96년에 SBS 아침 생활체조 진행을 맡았다. 이 때 높아진 인지도로 CJ홈쇼핑의 헬스상품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자주 출연했고 아침 생활체조 방송을 중단한 뒤 2년여간 미국에서 헬스기구와 홈쇼핑 방송에 대해 자료를 수집했다. 2000년에 CJ홈쇼핑과 계약을 맺으며 쇼호스트로 전업했다.

“러닝머신을 팔면서 방송을 보다 생동감있게 진행하려면 진행자가 직접 달리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일을 하면서 좋아하는 운동까지 할 수 있어 금상첨화잖아요. 게스트로 함께 방송을 진행하는 육상스타 장재근씨와 3년째 호흡을 맞추고 있습니다.”

박씨는 방송에 출연하는 것 외에 ‘몸 만들기’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다. 일주일에 3∼4번씩 헬스클럽을 찾아 몸매관리를 한다고.

건강과 운동에 대한 해박한 지식, 운동기구에 대한 감칠맛나는 소개로 그가 호스트를 맡은 스포츠, 레저상품 프로그램은 다른 프로그램보다 15∼20% 높은 매출을 올린다. CJ홈쇼핑과 연봉제로 계약을 맺고 있으며 연봉은 웬만한 대기업의 임원급.

“팔려는 상품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소비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고객에게 신뢰감을 심어줘야 한다는 겁니다. ‘물건만 팔면 그만’이라는 인상을 주면 쇼호스트로는 빵점이죠”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MD-쇼호스트 되려면

최근 대졸 취업지망생들, 특히 여대생들 사이에서 MD의 인기가 급등하고 있다. 활동적이면서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성과에 따라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

LG홈쇼핑 CJ홈쇼핑 현대홈쇼핑 등 홈쇼핑업체에 공채로 입사해 이 분야를 맡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일부 패션전문학원들이 MD과정을 다루지만 주로 패션분야에 치우쳐 있으며 홈쇼핑이나 인터넷홈쇼핑 등에 필요한 MD과정을 가르치는 곳은 많지 않다.

최근에 ‘토털 MD’ 양성을 목표로 개원한 아카비전(www.acavision.com, 02-332-6924)은 6개월 과정으로 △머천다이징 △소비자 행동분석 △현장실무 등을 가르친다. 전문대 이상 졸업자를 대상으로 하며 학원비는 6개월에 189만원.

‘쇼호스트’ 또는 ‘쇼핑호스트’라 불리는 홈쇼핑방송 진행자가 되는 길은 한마디로 설명하기 힘들다. 주로 방송국에서 리포터, 아나운서 등으로 활동해본 경력이 있는 사람이 유리하며 수시채용이나 1년에 한번 있는 홈쇼핑업체의 공채를 통해 연봉계약직으로 일한다.

홈쇼핑에서 팔리는 상품에 관한 특정 분야의 전문지식을 갖추고 있거나 그 분야에서 인지도가 있는 인물이 유리하다. 최근에는 MBC아카데미 등 각 방송국 아카데미에 쇼호스트 양성과정이 잇따라 문을 열고 있으며 일부 문화센터에도 관련 강좌가 개설됐다. 연령이나 성별의 제한은 없지만 전문대 이상의 학력을 요구하는 곳이 많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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