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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 그 사람]용산역 광장의 ‘밥퍼 아줌마’

입력 2002-10-13 17:59업데이트 2009-09-1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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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짧아서 아쉬운 가을이다. 이제 곧 선선한 바람이 차갑게 느껴질 것이다. 연탄 걱정, 김장 걱정하던 예전에 비하면 겨울맞이가 한결 가뿐해지기는 했다. 하지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면 그녀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4년 전 이맘때 KBS 1TV ‘아침마당’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그녀를 만났다. 나보다 조금 작은 체구와 조금 어린 나이인 그녀는 하루 700명의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 만큼 기운차 보이지는 않았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그녀가 커다란 밥솥을 들고 역 광장에 나가기까지는 수월치 않은 인생사가 있었다.

남편과 맞벌이를 하며 알뜰살뜰 살아가던 그녀에게 알 수 없는 열병이 찾아왔다. 몸을 일으킬 수조차 없는 고통에 시달리며 유명한 병원은 다 찾아 헤맸지만 병명도 밝혀낼 수 없었다. 그러기를 3년여, 직장도 돈도 잃고 남편 사업까지 부도나는 바람에 반지하 전셋집마저 날아갈 처지였다. 시골 부모님이 부쳐주시는 쌀로 밥만 안 굶고 살아가던 어느 겨울날, 용산역 광장을 지나다가 할아버지 한 분을 보게 되었다. 추위에 시달린 손발은 동상에 걸렸고 며칠을 굶었는지 걸음도 못 걷는 모습에 눈물이 났다. 할아버지를 부축해 국밥 한 그릇과 연고 하나를 사드렸더니 무척이나 고마워하셨다. 다음날 밥숟갈을 드는데 할아버지 얼굴이 아른거리기에 밥을 넉넉히 지어 김치 한 통 챙겨들고 역 광장으로 나갔다.

그렇게 하루 이틀 밥을 지어 나가다 보니 신기하게도 아프던 몸이 말짱해지고 없던 기운도 솟아났다. 집에 쌀이 떨어지자 근처 상가의 상인들이 쌀을 내놓고 팔다 남은 반찬거리도 내놓아 본격적으로 노숙자들을 위해 점심을 짓기 시작한 게 2년이 되었다. 단체나 기관의 도움 없이 주위의 조그마한 정성만으로.

자신의 몸이 아프기 전에는 남의 고통을 잘 몰랐다는 그녀, 내 한 몸 건강하게 남을 돕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그녀. 이 계절에도 여전히 그녀는 수많은 노숙자들을 위해 따끈한 밥 한 끼를 짓고 있을 것이다. 다가올 겨울을 걱정하면서….

이금희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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