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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의 이야기가 있는 요리]아주 작은 밥상, 절밥

입력 2002-08-15 16:37업데이트 2009-09-17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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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다, 바캉스다하여 주변 곳곳이 들떠 있는 올 여름. 밀린 일거리에 쉬는 날 하루 없이 꼬박 7월까지 보내고 난 뒤 필자는 머리틈으로 용암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쉽게 말해서 과로로 인해 ‘뚜껑이 열린’ 것이다. 폭우가 쏟아지던 8월 초 어느 날 모든 일정을 미루고 무작정 절로 들어 갔다. 티셔츠 두벌에 양말 세 켤레 달랑 싸들고…. 불교 신자가 아닌 내가 하필 동쪽으로 간 까닭은 아주 단순했다. 절에서 명상하며 열난 머리를 식히고 또 요리사로서 늘 궁금했던 ‘공양’을 체험하기 위해서였으니….

스님들의 일과와 더불어 진행되었던 며칠간의 생활은 오전 3시 기상으로 시작했다. 만물의 잠을 깨운다는 스님의 외종소리가 대법당 뜰안의 나무를, 흙을, 나를 깨웠던 캄캄한 새벽. 아침 예불과 108번의 절을 마치고 나면 드디어 첫 끼니가 준비되었다. 아침 공양의 단골 메뉴로는 영양가 높은 죽 종류들이 등장했는데 108배하며 허기진 속으로 다정하게 흘러내리는 흑임자죽, 통밀죽 등이 어찌나 든든하고 따뜻했던지…. 자칭 미식가인 일본인 작가 무라카미 류는 ‘수프라는 음식은 근심, 걱정, 동정 따위를 잊게 만드는 무서운 존재’라고 말했는데 나는 질박한 죽 한 그릇이 더 무서울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아침마다 싹싹 그릇을 비웠다. 여기서 잠깐 ‘공급하여 기른다’는 뜻의 공양으로 불리는 절식사의 예절을 조금 들어 보기로 하자.

우선 ‘발우’라 불리는 식기는 모두 네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밥그릇, 국그릇, 찬그릇, 그리고 물그릇이 그것인데, 같은 모양에 그릇의 지름만 달라서 차례로 포개면 하나가 된다. 각 그릇에 음식을 채워 받은 뒤 백김치 한조각을 찬그릇 옆면에 잘 붙여 둔다. 식사를 마치면 밥그릇에 숭늉이 따라지는데 이때 백김치를 젓가락으로 꼭 집고 숭늉에 담가 발우 속을 싹싹 씻는다. 그릇을 씻고 난 숭늉과 백김치는 모두 먹음으로써 자신이 먹고 난 흔적을 없애야 식사가 끝난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오관게(식사전에 외는 감사문)

●프랑스풍의 맑은 양파 수프를

곁들인 3찬 반상

겉절이 같이 무친 신선한 야채는 자극성 강한 김치를 대신하여 찬그릇 한쪽에 놓는다. 초와 소금에 숨이 부드러워진 생야채는 향으로 둘러지는 참기름 몇 방울에, 맛으로 둘러지는 고춧가루 한스푼에 순순한 찬거리가 된다. 이웃한 반찬은 가래떡 장조림으로, 자칫 싱거워 질 수 있는 밥맛의 간을 맞춰 줄 찬거리. 고기 장조림하듯이 간장양념에 굵은 가래떡을 졸이는 것인데, 물엿도 첨가하여 반들반들 윤이 나는 메뉴로 쫀득쫀득 혀에 붙어나는 맛이 달콤 짭짤하다. 잎채소 겉절이에 가래떡 장조림, 그리고 김구이를 곁들이면 찬그릇이 벌써 꽉 찬다.

소박한 밥상은 들깨가 똑똑 씹히는 밥과 따끈 달큰한 양파 수프로 맛의 바탕을 이룬다. 쌉쌀한 잎채소류를 씹은 혀는 구운 김과 가래떡의 숨은 단맛을 찾아내어 느끼게 된다. 조미료를 쓰지 않은 소소한 찬 한두가지의 맛에 민감하게 집중하며 천천히 밥 한 공기를 비우다 보면 평소에 우리의 입안이 얼마나 짙은 양념에 절어 있었는가에 새삼 놀랄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조용한 밥상에 홀로 앉아 보는 것을 권하는 바이다. 마치 입속의 세포들을, 혀를 스케일링 하듯이.게다가식사에 집중하는 사이에 정신 또한 맑아지니 머리를 위한 보양식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겠다.

산사에서의 마지막 밤은 108배를 열번 반복하는 1080배로 마무리 되었다. 한 배 한 배 정성을 들이다가도 잠깐 육체의 피로에 신경이 오가다 보면 어느새 일이백배는 바람처럼 의미 없이 지나가 버리니,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노력하지 않으면 잠깐 사이에도 저 멀리 새어 나가는 것임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내가 퍼담은 김가루 하나까지도 흔적없이 지워야 하는 공양,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나를 찾는 참선, 말을 아끼게 만든 묵언 계율, 그리고 정작 육체보다는 인내심의 운동부족을 맛보게 했던 몇날간의 절하기를 마치고 하산하는 길로 서울 시내를 지난다.

비오는 거리, 꽉 막힌 교통, 밀고 밀리는 바쁜 사람들이 600배째, 601배째 집중해가며 자신과 대화하던 몇시간 전의 상황과 겹쳐지며 나를 어지럽게 한다. 이 거리의 나와 불과 몇시간 전 산속의 내가 같은 사람이었는지조차 혼란스럽다. 밥 한술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먹다가 배가 차면 미련 없이 버리고 일어나는 귀한 음식들. 너무 많은 말들과 한술 더 뜨는 휴대전화 벨 소리들이 향하는 곳은 도대체 어디인가.

●이곳에 가면 절밥이 있다

사찰음식이 건강식으로 조명되면서 또 다른 식문화 유행을 형성해 가고 있다. 일상과 멀게 느껴질 수도 있는 사찰음식을 접하는 방법 몇가지를 적어 본다.

▶이미 많은 요리연구가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선재 스님이 이끄는 ‘전통 사찰음식 문화연구원’(02-355-5961)의 홈페이지(www.templefood.co.kr)를 방문하면 정기 강좌와 각종 특강 및 체험의 기회를 문의할 수 있다.

▶근래 생겨난 많은 사찰음식 전문점들의 원조격인 18년 전통의 ‘산촌’(02-735-0312)은 서울 종로구 관훈동 골목 안에 있다. 음식 맛은 기본이고 매일 오후 8시부터 연주되는 전통음악으로 인해 외국인이 많이 찾는 명소가 됐다.

▶사찰음식이 어렵다면 채식레스토랑은 어떨까. 서울 강남구 대치동 ‘뉴스타트 채식뷔페’(02-565-4324)는 주인이 아침마다 직접 만드는 두부를 비롯해 직접 기른 콩나물 등을 재료로 한다. 레스토랑 한쪽에 자연산 식재료도 판매한다.

●양파 맑은 수프

재료〓양파 2개, 닭육수 1컵반, 생수 1컵, 통후추, 소금, 버터 35g, 월계수잎 1, 2장, 대파 20g, 파슬리 약간

만드는 방법

①양파는 1㎝ 두께로 썰어서 버터에 볶는다.

②①에 육수와 물, 월계수잎, 대파를 넣고 통후추를

띄워서 팔팔 끓인다.

③먹기 전에 소금간을 하고 파슬리를 뿌린다.

*감자를 깍둑 썰어 함께 끓일 수도 있고 빵 한 조각을

구워 띄울 수도 있다.

●가래떡 장조림

재료〓가래떡 100g, 간장 3큰술, 물 2큰술, 물엿 2큰술, 멸치 30g, 깻잎 약간

만드는 방법

①간장 물 물엿을 섞는다.

②가래떡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멸치, 깻잎 썬것을

①과 함께 넣고 졸인다.

※기호에 따라 다진마늘, 꿀을 첨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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