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응의 미술과 시장]⑦일본인 수집가 “조선의 흙 되겠다”

입력 2002-07-28 17:26수정 2009-09-17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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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응 (서울옥션대표·경매사)
일제 강점기 일본의 무뢰한들이 수많은 고분을 도굴하고 수집가들은 수집가들대로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를 헐값에 약탈해 간 사실에 대해서는 안타깝기 짝이 없지만 그 당시에도 우리 골동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사들이고 우리 문화의 가치를 깨우쳐 주었던 선의의 외국인 투자자들도 없지 않았다.

이들 중의 으뜸은 아무래도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아닐까 싶다. 그는 “조선은 예술을 통해 군왕의 위치에 올라섰으며 조선의 예술은 중국의 모방이 아니라 민족의 고유한 독창성의 발로”라며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하던 조선백자와 우리의 민예품의 진가를 처음 밝힌 사람. 그는 글과 강연을 통해 조선 미술의 빼어남을 역설하여 백자 수집 붐을 일으켰으며 그의 컬렉션으로 경복궁 민속박물관에서 전시를 한 적도 있다.

야나기와 더불어 우리 예술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던 일본인으로는 아사카와(淺川) 형제를 들 수 있다. 형은 초등학교 교장으로 동생은 임업시험장에서 일하면서 우리나라 백자나 목공예의 아름다움에 빠져 엄청나게 수집했음은 물론 이에 관한 저서까지 여러 권 남겼으며, 동생은 해방 전 조선에서 죽으면서 “조선의 흙이 되게 해달라”고까지 말했다고 전해진다.

아무튼 당시 일인들의 우리 골동 수집 붐은 상상을 초월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열기가 우리나라의 식자층에게까지 확산되었던 모양이다.

그 시대의 서양 외국인 투자자들 중에는 프랑스의 가스피와 영국의 버나드리치라는 사람이 이름이 나 있다. 가스피는 장안의 청자 값을 올려놓을 정도로 큰손이었고 버나드리치는 본국에 돌아가서 ‘이조의 백자’란 책을 출판할 만큼 학구적인 사람으로 동양 도자의 특색을 들어 ”한국은 선이고 중국은 색채이며 일본은 모양”이라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외에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외국인 수집가들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일본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득세하는 고미술 시장에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 선생이 혜성처럼 나타나 외국인들이 감히 엄두도 못 낼 가격에 사들여 우리 골동 역사의 한 페이지를 통쾌하게 장식했다.

만주사변이 터지면서 가스피가 본국으로 돌아갈 때 그의 고려청자 컬렉션을 전부 간송이 인수했다고 한다. 인수 대금이 무려 50만원이었다고 하는데 당시 1만원이면 경성에서 기와집을 한 채 살 수 있었다 하니 그 규모를 가히 짐작할 수 있겠다.

선생은 당시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들이 헐값에 외국인 손에 넘어가는 것이 안타까워 사재를 털어서 문화재 유출을 막아냈으며 그 때의 컬렉션으로 성북동에 자리한 간송미술관을 설립했다. 그는 문화계에 있어서 진정한 애국자였던 것이다.

김순응 서울옥션대표·경매사 soonung@seoulauct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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