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의 톡톡스크린]지브리의 유별난 캐릭터사랑

  • 입력 2002년 7월 11일 19시 03분


요즘 인기 있는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는 20개 가량의 캐릭터가 나옵니다. 저는 그 중에서 왕따 귀신인 ‘얼굴없는 요괴’에 제일 마음이 끌리더군요. 현대인의 외로움을 상징하는 듯한 그 캐릭터는 어딘가 연민을 자아내지요.

‘얼굴없는 요괴’의 일본 이름은 ‘카오나시’인데요, 저처럼 이 외톨이에게 끌리는 사람이 많았는지 일본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라네요.

한국에서 ‘센과…’가 개봉되자 제작사인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는 ‘얼굴없는 요괴’의 의상과 가면을 한국에 보내왔지요. 이 복장을 하고 극장에 나가 캐릭터를 홍보하라는 것이죠.

저의 관심을 끈 것은 ‘얼굴없는 요괴’의 옷을 입고 이 캐릭터 행세를 할 사람에 대한 조건이었습니다. 지브리는 10개항에 이르는 지침을 한국 수입사측에 보냈는데요, 주요 사항은 대략 이렇습니다.

1. 키는 180cm 정도가 될 것. 2. (동정심과 연민을 자아내려면 덩치가 크면 안되므로) 마른 체형을 뽑을 것. 3. (숫기없는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고개의 각도는 늘 5도 아래를 보고 있을 것. 4. 양손은 항상 모으고 있을 것. 5. 말하지 않을 것. 6.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되 아주 천천히 걸어다닐 것.

일본에서는 ‘얼굴 없는 요괴’역을 할 사람을 뽑아 위의 조건에 맞게 한동안 훈련까지 시켰다는군요.

캐릭터에 쏟는 지브리의 애정은 이 뿐 아닙니다. 영화사들은 보통 관객 사은품으로 티셔츠를 많이 제작하는데 대부분 값싼 면을 사용하지요. 그런데 지브리측은 “품질 나쁜 옷에 우리 캐릭터를 넣을 순 없다”고 하는 바람에 영화사측은 홍보용 티셔츠의 샘플을 갖고일본까지 가서 질감을 확인받아야 했답니다.

‘얼굴없는 요괴’는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아 개봉 후 캐릭터 상품의 판매량이 200∼300%씩 증가했다는군요. 캐릭터 마케팅의 예인 셈이죠.

얼마전 안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탄 이성강감독의 ‘마리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이 영화에는 ‘몽’이라는 커다란 강아지 나오는데요,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르는 분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아직 국내 캐릭터 산업이 영세하다보니 지브리나 디즈니처럼 캐릭터 마케팅에 비용을 쓸 수 없는 탓이죠. 그나마 안시 수상을 계기로 올 하반기에 ‘몽’ 캐릭터 상품이 국내외에서 출시될 예정이라는데요, 몽이 ‘황금알을 낳는 강아지’가 돼 캐릭터 산업에 바람을 불러일으키면 좋겠습니다.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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