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산책][방송]돈주고 절도현장 찍은 日TV의 부도덕

  • 입력 2002년 7월 3일 17시 53분


이영이 도쿄특파원
이영이 도쿄특파원
일본의 한 방송사가 절도단에 돈을 주고 범죄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뒤 절도현장을 촬영해 보도한 사건으로 언론의 도덕성이 또 다시 도마에 올랐다.

사건은 민영방송인 TV도쿄가 5월 중순 절도단의 한 중국 남성(50)으로부터 범죄계획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는 대신 현금 35만엔을 건네준 것. 5인조 절도단은 계획대로 이달 25일 도쿄(東京) 시내 한 건축자재회사 사무실에 침입해 금고를 훔치려다가 3명은 잠복중인 경찰에게 체포되고 2명은 도망중이다.

TV도쿄는 당시 범인들이 침입했다가 체포되는 순간은 물론 절도단의 현장 사전답사 장면도 미리 촬영해 이달 27일 저녁 뉴스프로그램 ‘뉴스아이’에서 ‘특종-범행·체포의 전모’라는 제목으로 7분간이나 방영했다.

이 뉴스가 보도되자 ‘조작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일었다. 또 절도 피해자인 회사 측은 “TV도쿄가 우리를 이용해 뉴스를 만들었다”며 분노했다.

결국 TV도쿄는 2일 기자회견을 통해 “금전을 제공하고 정보를 받은 것은 사내 보도윤리강령에 위반되는 것”이라면서도 “범죄계획을 경찰에도 미리 알렸으며 절대 ‘사전 뉴스조작’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또 “외국인 범죄의 실상을 알리겠다는 취재 의욕이 앞선 나머지 물의를 빚게 됐다”며 해당 기자에 대한 인사처분 방침을 밝혔다.

도쿄TV에 정보를 제공했다가 현장에서 잡힌 중국인 남성은 “범죄 세계에서 손을 씻고 싶어 방송사에 알렸다. 대신 내가 체포된 후 가족이 안전하게 도피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요구했다”고 수사과정에서 자백했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것은 최근 방송사들 사이에 사건뉴스를 드라마처럼 재구성해 전달하는 ‘오락경쟁’이 과열되고 있기 때문. 뉴스 진행 방식도 연예인 토크쇼 같아서 얼핏 보면 오락프로그램으로 착각할 정도로 시시콜콜한 흥미 위주 뉴스가 넘쳐나고 있다.

매스컴의 조작 논란은 일본에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89년 아사히신문 사진기자가 일부러 산호초에 알파벳을 새겨 넣고 사진으로 찍어 바닷속 자연이 훼손됐다며 보도했다가 당시 사장과 편집국장 등이 물러났던 것을 비롯해 몇 차례 조작이나 오보사건이 있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현상이 매스컴뿐만 아니라 일본 사회 전반에 만연하고 있다는 것. 미쓰비시자동차의 대규모 리콜 은폐사건, 유키지루시식품의 국산 쇠고기 허위 표시 사건, 구석기 유물 날조 사건 등과 함께 급격히 무너지고 있는 일본 사회의 도덕률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영이 도쿄특파원 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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