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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지금]히딩크 코리아의 상징-박지성

입력 2002-06-30 21:48업데이트 2009-09-17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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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길고 긴 월드컵이 끝났다. 마지막 터키전을 승리로 마무리하진 못했지만 대 격투 끝에 얻은 세계 4위였다. 경기 후 터키 선수들과 어깨동무하던 박지성은 입술을 꽉 물고있는 모습을 보였다.

여드름 자욱이 남아있는 아직은 앳된 얼굴. 대표선수 중 3번째로 어린 21세의 나이. 그런 그가 경기장에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불을 다루며 대표팀 선배에게도 무서운 얼굴로 소리를 지르곤 했다.

히딩크감독은 한국사회 속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지연, 혈연, 학벌중심의 풍조를 버리고 실력위주의 선수평가 방식을 도입시켰다.

박지성은 이런 특수한 상황속에서 발굴된 히딩크 사단 1호라 할 수 있다. '히딩크 코리아의 상징'이란 특집이 실린 한국 주간지도 있다.

한국 명지대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지성은 '교토퍼플'에 스카웃되어 휴학하고 일본에 건너갔다. 그 나이 19세. 무명선수였다.

"빨리 프로선수로 해외에서 플레이하고 싶었다."

일본에 건너간 후 놀라움과 당혹의 연속이였다. 일본에선 한국처럼 상하관계가 엄격하지 않고 나이 어린 선수가 나이 많은 선수에게 존칭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박지성은 한일 역사관에 대한 질문을 받아 당황한 적도 있다고 한다.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한국 스포츠라이터 신무광씨는 이런 말을 했다.

"적응하지 못하는 박지성에게 도움을 준 것은 오랜기간 일본대표의 맏형자리를 지키던 미우라 가즈요시였다." 당시 미우라는 퍼플팀에 있었다.

93년 월드컵 예선 한일전에서 미우라는 결승골을 터트렸다. 이에대해 한국에선 '한일합병이래 최대의 굴욕'이란 말이 나왔다. 박지성은 어릴적부터 "일본에게만은 지면 안된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왔다.

그러나 미우라는 박지성에게 따뜻했다. "혼자서 외롭지 않느냐." "맛있는 한국 음식점이 있는데 가보지 않겠냐."등 수시로 말을 걸어왔다.

미우라는 주장인데도 불구하고 연습에선 솔선하여 선두에 서고 팀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담당했다. "진정한 프로란 이런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월드컵 개막직전 한국은 전 대회 패자였던 프랑스와의 친성경기에서 2대3으로 졌다. 그러나 박지성은 자신감이 넘쳐있었다.

"프랑스는 이전만큼 강한 팀이 아니였다. 한국이 그만큼 강해졌기 때문일 것."

박지성의 말처럼 포루투갈, 이탈리아, 스페인과 유럽의 강호들을 차례차례 물리쳤다. 박지성은 모두 7경기에 선발 출장했다. 파울당한 수는 팀에서 가장 많다. 그만큼 상대 수비수들에게 마크당했다는 증거다.

"이 경험을 살려 계속 노력하면 세계 1위도 꿈은 아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그의 나이 25이 된다. 다음대회에서 그의 활약을 기대한다.

<아사히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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