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cer report]허정무 "너무 너무 장하다"

  • 입력 2002년 6월 22일 23시 16분


선수들의 투혼이 눈물겹도록 장하다. 이탈리아와의 격전을 치르고 사흘도 쉬지 못한 상태에서 그라운드로 나온 선수들이 그 누구도 예상하지 않았던, 아니 모두들 허황한 기대라고 말했던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뤄냈다. 선수들이 대견하고 축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오늘의 한국축구를 만들어준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뭐라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

스페인과의 경기는 예상했던 대로 아주 힘든 경기였다. 우리 선수들은 체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그 어느 때보다 몸이 무거웠다. 경기 초반 자주 패스미스가 나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대표팀은 예전의 대표팀이 아니었다. 선수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허둥대지 않았고 침착하게 스페인의 공격을 막아냈다. 특히 홍명보와 최진철 김태영 등 3명의 수비수는 너무나 돋보였다.

이탈리아 공격수들은 다소 둔탁하고 세밀하지 못한 측면이 있지만 스페인 공격수들은 다르다. 기술이 뛰어나고 세밀한 축구를 하기 때문에 기회가 생기면 정교한 드리블과 패스로 수비진영을 뚫고 들어온다. 이날도 엔리케 로메로와 페르난도 모리엔테스, 호아킨 산체스 등 스페인 선수들의 돌파는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위기 때마다 우리 수비수들은 적절한 협력 수비와 스페인 공격수보다 한발 앞선 위치 선점으로 공격의 리듬을 끊었다. 수비의 ‘핵’인 김남일이 부상으로 나간 뒤가 가장 큰 위기였지만 이영표와 박지성 송종국 등 미드필더들이 더 많이 뛰면서 공백을 잘 메워 실점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제 한국팀은 유럽 스타일의 축구를 하는 독일과 맞서야 한다. 포르투갈이나 이탈리아 스페인이 남유럽 국가들로서 기술을 바탕으로 한 정교한 축구를 한다면 독일은 힘과 투지를 앞세운 북유럽 스타일의 축구다. 한국팀이 상대하기엔 독일이 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대표팀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들을 지금까지 해냈다. 우승후보로 꼽히던 포르투갈을 예선에서 물리치고 16강에 진출한 데 이어 역시 우승 후보로 꼽히던 이탈리아와 스페인마저 ‘집으로 보내고’ 4강에 올랐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겠다”던 히딩크 감독의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이제 비로소 알 것 같다.

허정무 본보 월드컵 자문위원·축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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