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칼럼]축구인가 격투기인가

  • 입력 2002년 6월 20일 17시 54분


월드컵 대회가 열리기 전인 지난달 어느 날.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다가 시선이 멈췄다. 한국과 일본의 시각장애인들이 축구 시합을 하고 있었다. 신기하고도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서울 어딘가에 마련된 시각장애인 전용 축구장에서 공을 차고 있는 선수들은 행복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축구를 할수 있을까. 비밀은 소리나는 축구공에 있었다.

축구는 원래 건장한 남자들만의 운동경기였다. 필자도 학생 시절 안경을 고무줄로 매고 축구를 했지만 안경이 너무 자주 깨지는 바람에 축구와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몇 년전만해도 여자가 축구한다는 얘기는 듣기 어려웠었다. 지금은 여자축구대회가 생겼고 국가대표팀을 운영하는 나라도 여럿이다. 그렇다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누구나 축구를 할수 있는 것일까.

지난 18일 대전에서 벌어진 한국과 이탈리아의 16강전은 그야말로 축구가 과격한 운동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헤비급 복서출신이라는 이탈리아 비에리의 팔꿈치에 코가 부러진 한국의 김태영은 응급수술을 받아야 했다. 이탈리아의 코코는 눈언저리가 찢어져 머리에 붕대를 감고 뛰었다. 이쯤되면 축구가 아니라 격투기에 가깝다.

건장한 선수들이 온힘을 다해 뛰며 부딪히는데 어찌 부상이 전혀 없겠는가. 하지만 프랑스의 스타 지단처럼 누워있어야할 환자나 다름없는 선수들이 나와 뛰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선수들이 지금 당장은 관중들의 환호에 아픔을 잊고 뛰지만 나중에 별탈이 없을지 걱정이 앞선다. 하물며 선수가 아닌 일반인들은 어떤가. 공을 한번 제대로 차보지도 못한 사람이 의욕만 앞섰다간 다치기 십상이다.

하지만 축구는 넓은 운동장에서 딱딱한 축구공이 있어야만 할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그맣고 말랑말랑한 고무공을 가지고 놀이터나 심지어는 좁은 집 마당에서도 꼬마들은 축구를 곧잘 즐긴다. “아빠 축구하자”면서.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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