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칼럼]아시아의 자존심

  • 입력 2002년 6월 19일 18시 41분


미국이 전주에서 멕시코를 꺾은 시간에 멕시코인들은 전 국민이 텔레비전을 시청하다가 통한의 눈물을 흘렸지만 미국인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미국 신문들은 미국의 8강 진출을 1면 머릿기사로 올리지도 않았다. 미국은 미식축구 농구 야구 골프를 더 좋아하는 나라다.

FIFA는 1994년 축구 후진국 미국에서 월드컵 대회를 개최하며 세계 최대의 시장을 끌어들이려고 공을 들였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미국의 한 칼럼니스트는 축구 붐을 일으키려면 94년 대회 정도로는 안되겠고 이번에 우승컵을 미국에 안겨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썼다. 한국 덕에 겨우 16강에 진출해 8강 결정전이 열리는 시각에 잠이나 자면서 욕심이 지나치다.

최근 워싱턴 포스트는 아시아 월드컵 대회는 FIFA의 실수였다고 악담을 하며 유럽과 미주에서 너무 멀어 관람 비용이 많이 든다고 꼬집었다. 이야말로 서구 중심적 사고이다. 또 표 판매가 부진하고 공동 개최국의 사이가 나쁘다고 헐뜯었다. 한국과 일본이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면서 과거사 때문에 미국팀을 불편하게 했다는 말인가. 초기의 표 판매 부진은 FIFA의 책임이 크다.

12억 인구의 중국, 세계 제 2의 경제 일본, 다이내믹한 한국 등 동북 아시아는 미국보다 축구의 잠재력이 큰 시장이다.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 대회는 94년 미국 대회보다 세계 축구 발전에 더 기여한 대회로 기록될 것이다. 아시아 축구의 평균 수준은 아직 유럽이나 중남미와 비교하기에는 이르다. 중국과 사우디 아라비아는 한 골도 못 넣고 돌아갔고 일본은 8강 문턱에서 패배했다. 유일하게 4강을 넘보는 한국은 아시아에서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월드컵을 성황리에 마무리 지어 아시아를 한 수 아래로 보는 미국과 유럽의 오만을 무색하게 해야 한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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