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플레이의 적들]<10>"여자는 역시…" 편견의 장벽

  • 입력 2002년 4월 10일 17시 18분


‘여성이라서, 장애가 있으니, 피부색이 검어서….’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장애나 피부색 등을 이유로 빚어지는 차별. 우리 사회의 ‘페어플레이’를 가로막는 요소 중 하나다.

차별은 우리의 제도 관습 전통 문화 등과 관련이 있다. 문제는 이런 차별이 통용되는 사회에서는 실력에 바탕을 둔 공정성이 설 자리를 잃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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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에서 무덤까지 계속되는 성차별〓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한 ‘2001년 여성 권한척도’에서 한국은 전체 64개국 중 61위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의 조사에서도 한국은 ‘여성지위 후진국’에 포함된다.

한국에서의 성차별은 평생 계속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통계연보에 따르면 2000년 현재 전체 인구 4600여만명 중 0∼14세는 남자 508만8000명, 여자 455만1000명으로 남자가 53만7000명 더 많다. 이는 남아 선호사상이 ‘개입’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남아 선호와 관련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얼마 전 아들 못 낳는 것을 비관해 자살한 한 종갓집 종부(38)의 사연은 극단적인 예. 그는 유서에서 “딸만 둘을 낳고 아들을 낳으려 온갖 노력을 다해 봤지만 몸만 축났을 뿐이다. 이젠 자유를 찾고 싶다”고 말했다.

취업 승진 임금 등에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기회를 제한당하거나 폄하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 9월 한국여성개발원 조사에서 기업들은 남성의 채용 기준으로 성적, 자격증, 재능, 발전 가능성 등을 주로 꼽은 반면 여성의 경우 용모, 인상, 성격을 중시한다고 답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유경준(兪京濬) 연구위원은 최근 한 보고서에서 1999년 여성 노동자의 월 평균임금이 106만원으로 남성의 63.1%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중 47%는 교육·근속·경력에 바탕을 둔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57%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발생한 ‘차별’이었다고 분석했다.

▽뒷전에 밀린 장애인과 노인〓승진 대상 1순위였던 충북 제천보건소장직에서 탈락한 장애인 의사 이희원(李熙元·40)씨는 “장애인은 몸이 좀 불편할 뿐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임면권자가 밝힌 그의 탈락 사유는 ‘능률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1987년 서울대 의대 재학 중 뇌출혈로 쓰러져 오른쪽 다리가 마비된 그는 지난해 11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하자 가장 먼저 이 문제를 진정했다.

서울대 김용익(金容益·의료관리학) 교수는 “장애인은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일반의 고정관념부터 언페어하다”고 지적했다. 장애인 혼자 휠체어를 타고 100m를 나아가기도 힘든 환경에서 장애인의 능력을 논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추산한 2000년 국내 장애인 수는 인구의 3.09%에 해당하는 약 145만명. 이 중 64.5%가 지체장애인이다. 이들은 법에 정해진 장애인 고용의무도 지켜지지 않는 현실 앞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영위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일할 능력과 의사를 가진 노인들도 뒷전에 밀려나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장지연(張芝延) 부연구위원은 “미국에서는 연령차별금지법에 따라 채용 배치 구조조정 때 나이를 이유로 차별하지 못하게 돼 있다”며 “한국도 나이보다는 능력으로 구별하는 쪽으로 사회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벌은 곧 계급〓올 2월 한 지방대를 졸업한 김모씨(26)는 사회 첫 관문에서 학벌의 벽을 절감해야 했다. 토익 900점에 대학 평균 3.7학점의 성적을 들고 대기업에서 벤처기업까지 무려 20여곳의 문을 두드렸지만 겨우 3곳에서 서류전형을 통과했을 뿐 한 군데도 면접을 통과할 수 없었다.

‘학벌 중시주의’는 기업들이 최근 수시채용 방식을 채택하면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사원이 학교 후배를 데려오는 ‘사원추천제’도 학벌 편중 현상을 부추긴다.

국민대 김동훈(金東勳·법대) 교수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출신 대학이 사회적 부와 권력, 신분을 매기는 결정적 기준이 되고 있다”며 “이 기준은 한번 결정되면 영구히 바뀌지 않는다는 점에서 봉건적 계급제도와 같은 성격까지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몇몇 대학 출신들이 요직을 독점하는 현상으로 이어진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2000년 11월 말 조사한 ‘국내 100대 기업 최고경영자의 출신 대학별 분포’에서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출신이 70%를 차지했다. 16대 국회의원 중 이들 3개교 출신이 56%, 검사의 경우 75%(2000년 7월 현재), 3급 이상 행정부처 공무원은 52%(1999년 1월 현재)였다.

▽인권 사각지대의 외국인 노동자〓국내에 사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임금체불, 산업재해, 폭행과 폭언 등은 다반사다. 국내 불법체류 외국인은 지난해 말 25만여명으로 전체 외국인 노동자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64.1시간으로 국내 법정 근로시간(44시간)보다 20시간이나 많다.

경기 성남시 ‘외국인 노동자의 집’ 김해성(金海性) 목사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내국인이 기피하는 힘든 일을 하면서도 언제든지 강제 추방될 수 있는 존재로 취급돼 왔다”며 “이제 이들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영아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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