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의 현주소(1)]개인과외 신고제 유명무실

  • 입력 2002년 4월 8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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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7일이면 헌법재판소가 개인과외 금지는 위헌이라고 결정한 지 2주년이 된다. 과외금지의 ‘빗장’이 풀리면서 그동안 음성적으로 이뤄지던 개인교습이 신고만 하면 가능하도록 양성화됐다. 그러나 당초의 우려대로 사교육비가 늘고 있고 교육과정을 심지어 1, 2년씩 앞당겨 배우는 선행학습이 유행하는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위헌 결정 이후 달라진 사교육 풍속도와 과외 효과 등을 점검해 보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초등학생 대상 A보습학원의 한 강의실. 강의실에는 강사의 책상과 각종 수학서적 등 사무공간이 배치돼 여느 강의실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 강의실은 지난해 한 개인과외 교습자가 월 100만원에 임대해 중고생 10여명에게 수학을 개인 지도하는 ‘과외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학원 원장은 “강의실을 임대한 강사는 학생당 월 50만원씩을 받고 대여섯명을 가르친다고 신고했지만 실제 월수입은 600여만원이 넘을 것”이라고 귀뜀했다.

2000년 4월 개인과외 금지 위헌 결정 이후 지난해 ‘개인과외교습 신고제’가 도입됐지만 교습자들이 제대로 신고하지 않는데다 불법과외 적발도 어렵고 기업 형태의 고액 ‘과외방’이 등장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과외방’ 성행〓지난해 7월 개인과외교습신고제 도입 이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는 학원 간판 대신 ‘○○아카데미’ ‘△△교실’ ‘××입시연구소’ 등의 이름을 내건 과외방이 들어서고 있다. 일부 과외방은 국어 영어 수학 등 과목별로 개인과외 교습자가 한 건물 내에 모여 있어 보습학원과 차이가 없을 정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보습학원 원장은 “대치동 지역에 보습학원은 180여개지만 개인과외교습자들이 운영하는 과외방까지 포함하면 300여개가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지역의 일부 학원들은 월 100만∼200만원을 받고 개인과외 교습자들에게 강의실을 임대하기도 한다.

또 개인과외 교습자를 직원으로 고용해 고수익을 올리는 ‘과외기업’부터 텔레마케터를 고용하거나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해 개인과외를 소개하는 알선업체 100여곳도 성업 중이다.과외전문 S업체는 3월 법인 설립을 마친 뒤 과외강사 60명을 고용하고 6개의 지부까지 운영하고 있다. 주2회 2시간씩 과목별 과외비는 50만∼100여만원이나 돼 일반 학원의 5∼10배가 넘지만 중고생 150여명이 등록돼 있다. 이 업체는 건물 내에4, 5명이 공부할 수 있는 소형 강의실 3곳까지 마련하고 새벽 1시반까지 수업하고 있다.

대표 길모씨(38)는 “2월 한달 매출이 2억원 정도지만 개인과외 신고를 마친 강사만 고용하고 세금을 정확히 납부할 계획”이라며 “과외신고를 하지 않고 과목당 400만원이 넘는 수강료를 받는 불법 고액과외도 많다”고 말했다.

▽고액과외 무풍지대〓교육인적자원분는 개인과외교습 신고제를 도입하면서 과외를 양성화와 세수 확보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오히려 불법 고액과외만 성행하고 있다.

학부모 김모씨(48)는 최근 한 과외 알선업체로부터 고3 자녀를 위한 대학수학능력시험 대비 그룹과외를 제의받았다. 월 200만원을 내면 과목별로 1년 동안 수능 전과목을 지도하고 대학 합격까지 책임진다는 것.

김씨는 “학교 시험이나 모의고사를 앞두고 개인과외 알선업체의 전화를 자주 받는다”며 “고액 과외에 대한 비밀을 보장하고 대학 합격을 책임지겠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지만 과외비 부담이 커 포기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의 일부 학부모들은 20명 내외로 그룹을 만들어 강사에게 한달 6000만원을 주고 과목별 그룹과외를 받는 ‘드림팀’을 만들기도 한다. 학생이 중도에 빠져나가면 나머지 학부모들이 그만큼 부족한 과외비를 추가 분담하는 방식이어서 의사 변호사 등 재력있는 부모들이 대부분이다.

학원강사 경력이 13년인 김모씨(41)는 “규제도 적고 고액 과외가 가능한 개인과외교습을 하려는 학원강사들이 늘고 있다”며 “100만원 이상의 고액 과외의 경우 세무조사 등을 우려한 학부모들이 과외교습 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불법교습 속수무책〓개인과외교습자가 주소지 교육청에 수강과목, 인원, 수강료 등을 신고하도록 되어 있는 현행 제도에 허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개인과외교습 신고지와 영업장소가 달라 관할 교육청의 지도감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울 강남교육청 관계자는 “경기도 등에서 과외 신고를 한 뒤 강남에서 과외방을 운영하는 사례가 많지만 타지역 신고자가 많아 실태 파악조차 어렵다”며 “과외방의 경우 설립 장소나 수업시간에 대한 규정이 없어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일부 보습학원은 “개인과외교습은 같은 시간대에 9명 이하의 학생을 지도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규모에서는 소규모 보습학원과 차이가 없다”며 “과외방이 영업시간이나 장소 등의 규제를 받지 않은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2002년 1월 현재 전국의 개인과외교습 신고자는 2만6056명. 서울의 한 과외교습자가 고교생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월 150만원을 받는다고 신고한 것이 최고액일 정도로 신고액은 대부분 소액이다.

전체 수강인원 19만7453명 중 고액 과외가 많은 고교생은 7.5%에 불과하다.

지난해 8월 이후 과외 미신고자 적발 실적은 72명. 미신고자나 허위 신고자의 경우 1차 적발 때 과태료 100만원 이하→2차 때 교습중지 명령과 200만원 이하 벌금→3차 때 1년 이하의 금고 또는 300만원 이하 벌금을 내도록 규정돼 있지만 신고 내용이 달라 적발된 경우는 한건도 없다.

국세청 관계자는 “5월 말까지 예정된 개인과외교습자의 종합소득세 신고를 토대로 누락사실을 확인하는 등 철저한 단속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 용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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