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네트워크]'이슬람 바로 알리기' 聖戰의 전사들

  • 입력 2002년 3월 14일 15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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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말 문을 연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터키음식전문점 ‘메르하바’는 터키어로 ‘안녕하세요’ 또는 ‘환영합니다’에 해당하는 인사말을 그대로 식당 이름으로 쓴 경우다.

숯불이 타는 널찍한 화덕 위로 꼬챙이에 꽂은 양고기 케밥 ‘아다나’가 구수한 냄새를 내며 지글지글 구워질 무렵인 6일 오후 7시, 이곳으로 전문가 집단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터키음식점 '메르하바'에 모인 이슬람권 국가 전문가들. 앞줄 왼쪽부터 유왕종 이원삼 연규석 이희수 이영태 이종화 교수. 뒷줄은 신양섭(왼쪽) 최진영 교수.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호기심으로 출발한 중동학, 이슬람에 대한 공부가 이들을 하나의 인연으로 묶었다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이희수 교수, 한국외국어대 아랍어과 이영태 교수와 터키어과 연규석 교수, 명지대 아랍어과 최진영 이종화 교수, 선문대 신학부 이원삼 교수, 인천대 정치학과 유왕종 교수…. 그리고 ‘메르하바’의 사장이기도 한 한국외국어대 이란어과 신양섭 교수까지….

중동학관련 교수… 대학 선후배사이

1년에 한 편 이상 이슬람 관련 논문을 발표하고 현지 유학 경험이 있는 국내 이슬람 문화권 전문가는 30여명에 불과하다. 전 세계 인구의 4분에 1에 이르는 이슬람 인구에 비해 그야말로 ‘한 줌’인 셈. 이들 8명의 젊은 교수들은 이 ‘한 줌’ 가운데 중견 또는 소장파에 해당한다.

이들 가운데 7명을 포함한 12명의 학자들은 지난해 9월 8일 공동저서 ‘이슬람’(청아출판사)을 출간했다. 이슬람 세계에 대해 무지한 데다 일부 ‘적개심’마저 갖고 있는 일반인의 시각을 바로잡고자 한 ‘학문적 성전(聖戰)’의 결실이라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그리고 딱 3일 뒤 9·11 테러사건이 터졌다.

“평소 주목받지 않는 학문이라 ‘흥행성’에는 큰 기대를 걸지 못했는데 시기가 묘하게 맞아 떨어져 베스트셀러급 서적이 돼 버렸어요.”

책 ‘이슬람’ 낸지 사흘만에 ‘9·11’

이들은 이슬람학회나 중동학회에 소속돼 있어 적어도 매달 한 번쯤은 모임을 갖는다. 또 국내에 제3세계 언어를 가르치는 대학이 많지 않은 까닭에 대부분 한국외국어대 아랍어 이란어 터키어과와 명지대 아랍어과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서로에 대한 호칭도 ‘○ 교수’ 같은 공식적인 직함 보다 ‘선배’ ‘형’ ‘얘’ ‘쟤’ 처럼 허물없는 용어들이 사용된다.

이들을 하나로 묶는 관심사인 이슬람 세계. 왜 이들은 중동학과 인연을 맺었을까.

“입학 당시에는 오일 쇼크, 중동 건설붐 등이 맞물려 중동학이 ‘뜨는 학문’이었어요. 입학 경쟁률이 10 대 1에 이를 정도였습니다.”

“똑똑한 학생들이 중동학에 관심을 갖게 하자는 취지에서 정부에서 한 학기에 격려금 3만8000원씩을 주기도 했어요. 70년대 중반 한 학기 등록금이 19만원이었으니 꽤 큰 돈이었죠.”

유학 시점은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이슬람 문화권에서 7∼13년의 유학생활을 했다. 특히 한국외국어대 출신의 이희수 신양섭 교수는 터키의 이스탄불대에서, 명지대 출신의 이종화 이원삼 교수는 모로코 무함마드 5세대학에서 함께 공부해 학부에 이어 대학원 선후배가 됐다.

터키의 앙카라, 튀니지의 튀니스, 요르단의 암만, 모로코의 라바트, 이집트의 카이로 등 이슬람권의 대표적인 도시 곳곳에서 공부한 경험을 나누는 일은 아직도 이들의 단골 이야기 소재다.

“여성들 ‘히잡’만 봐도 신분 파악”

청년 유학생 시절, 이들의 마음을 가장 설레게 했던 문화적 코드는 머리에 뒤집어 쓰고 눈만 드러낼 수 있는 ‘히잡’ 차림의 이슬람 여성들이었다.

“여자들이 다 눈만 내놓고 다니니 길거리에서 남녀가 ‘찍고’ ‘찍히는’ 일은 없겠다”고 하니 이들은 “6년 정도만 지내면 스쳐지나가기만 해도 ‘히잡’ 차림에서 금세 나이, 교육수준, 부(富)의 정도까지 파악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여성의 실체를 파악하는 방법은 크게 4가지라고 한다. ‘히잡’ 옷감의 종류, 바람이 불어 ‘히잡’이 몸에 달라붙을 때 드러나는 몸매, 향기, 그리고 걷는 모습.

또 ‘히잡’ 앞 선의 각(角)을 미적으로 잘 잡았느냐에 따라 센스까지 판단할 수 있다.

보수적이고 ‘남녀상열지사’를 경계하는 걸프만 연안국에서도 가끔씩 외국인에게는 눈길을 보내는 여성들이 있어 ‘고맙기’만 했다.

현재 이들의 공통점은 화장실 사용 습관에까지 이어진다. 귀국 후 화장실에 비데를 설치하지 않은 집이 없다는 이들은 “아랍국가에는 치질이 없다”며 ‘인간적인’ 체험들을 털어놨다.

가장 최근에 귀국한 이영태 교수가 먼저 운을 뗐다.

“유학 초기에 공중 화장실에 갔더니 휴지는 없고 물 주전자나 수돗물 호스가 있더라고요. 그 곳 사람들은 물로 뒤를 닦는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죠. 그런데 하루는 뜨거운 날씨 때문에 데워진 수돗물 호스를 무심코 갖다 댔다가 봉변을 당하는 줄 알았어요.”

중동 국가에서 ‘용변 후 세척’을 고집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사막 문화권에서 날씨가 그렇게 더운데 씻어내지 않으면 습도와 기온에 따라 ‘녹거나 굳거나’ 하겠죠.”

노인들은 ‘사막형 처리 기구’인 뜨거운 돌이나 모래를 사용하기도 한다.

“상상은 안 가지만 잘 닦인대요. 그것이 ‘단련법’이 돼서 아랍인들의 정력이 좋다는 설도 있죠. 따라하다가 낭패를 봤다는 ‘유학생 괴담’도 있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오후 11시가 훌쩍 넘었다. 자리를 마무리하려는 데 이들은 “중동에서는 저녁 식사 후 이맘 때부터 ‘본론’을 나누기 시작한다”면서 홍차 한 잔씩을 더 청했다.

이들의 ‘본론’은 길이라도 물을라 치면 직접 도착지에 데려다 주고 나서야 스스로 만족하는 그 곳 사람들의 인심과 돈독한 의리로 귀결됐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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