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네트워크]영어고수들 이합집산 10년 '人의 그물망'

  • 입력 2002년 2월 7일 15시 53분


서울 강남역 일대의 ‘외국어학원가(街)’. 80, 90년대 대학입시학원들이 모여 있던 노량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수강생들이 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인다. 강남역 외국어 학원가에는 ‘비법토익’ ‘단기완성 CBT영작’ 등 세분화된 과목을 가르치는 단과(單科) 학원이 대부분이다. 몇 해 전까지 명맥을 이었던 ‘타임독해’나 ‘22000 단어’ 같은 과목은 대부분 퇴출됐고 토익(TOEIC) 토플(TOFLE) 등을 가르치는 ‘테스트 잉글리시’의 물결이 도도하다.

‘설날특강’ 공고문까지 나붙을 정도로 수업열기가 뜨거운 이곳에도 입시학원처럼 ‘스타강사’ 군단은 존재한다. 이들 중 일부는 한때 선배와 후배, 강사와 학생, 학원장과 고용된 강사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다. 직장인 영어학원이 ‘성장산업’으로 호황을 누려온 지난 10여년간 이들의 관계는 한때의 피고용자가 어깨를 겨루는 치열한 경쟁자로 급부상하거나 공생의 파트너가 되는 등 엎치락뒤치락 변모해 왔다.

●‘트윈 타워’, 고인경과 이익훈

강남역 학원가의 ‘터줏대감’격인 고인경 회장(59·파고다아카데미), 이익훈 원장(55·이익훈외국어학원)은 학원강사 세대교체 바람에도 불구하고 입지를 공고히 지키고 있다. 이들은 90년대 초반부터 강남역 부근에 일었던 성인 어학원 붐을 주도했던 인물들. 파고다외국어학원과 이익훈어학원 강남분원은 유명 영어강사를 많이 배출해 ‘강사 사관학교’로도 불린다.

고 회장은 요즘도 1 대1 개인지도 회화프로그램인 ‘다이렉트 잉글리시’를 만들어 보급시키고 있다. 이익훈 원장은 여전히 주말을 포함해 하루 8시간 이상 강의에 나선다. “‘AP뉴스’(AP통신의 5분 뉴스)를 앞세운 나름의 ‘영어듣기 노하우’가 수강생들에게 지속적으로 어필하는 것 같다”는 것이 학원가의 분석이다.

●‘특화영어’의선구자, 박정과 김재호

파고다외국어학원을 거쳤던 김재호 원장(35·김재호어학원)은 “젊은 강사를 키우고 발탁하는 안목이 탁월하셨다”며 고 회장을 떠올린다. 한때 이익훈어학원에 몸담았던 박정 원장(40·박정어학원)은 “강사 초년병 시절 이 원장님의 성실함에 많은 자극을 받았다”고 말한다.

박정어학원은 토플 GRE GMAT 등 이른바 ‘유학영어’, 김재호어학원은 토익만 가르친다. 둘은 90년대 초반 서울 교대역 부근에 있는 ‘유진어학원’에서 함께 강사생활을 시작한 인연을 갖고 있다. 이들의 강의법에 대해서는 “점수는 확실히 올려준다”는 평가와 “찍기 영어만 가르친다”는 비판이 동시에 비등하지만 두 사람의 신념만은 확고하다.

“어차피 토플은 외국인만을 평가하는 시험입니다. 시험 자체를 오래 붙들고 있으면 뭐합니까. 선진 학문을 배우러 가는 시간을 하루라도 단축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박 원장)

“토익 시험에 나오는 문장이나 상황들 자체가 훌륭한 영어 교재입니다. 단계적인 점수 상승이 영어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도 합니다.”(김 원장)

박 원장은 10여년간 토플 강의를 하며 직접 만든 토플문제들을 문제은행화했다. 그는 이 자산을 갖고 곧 중국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교양영어’ 전공 이보영

이보영씨(36·EBS 고급영어회화 진행자)에 대해서는 고 회장 이 원장 등 ‘베테랑’ 강사급과 백선엽(34·㈜밀레21 기획이사) 이지영씨(33·KBS라디오 ‘굿모닝 팝스’ 진행자) 등 ‘신예’급 모두 “예쁜 영어, 표준 영어를 잘 구사한다” “순수한 열정으로 영어교육에 임한다”는 호평을 내린다. 이씨는 영어학습 홈페이지인 이보영닷컴(www.eboyoung.com)에 콘텐츠를 공급한다.

이보영씨는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인프라가 많이 확충돼 중상위권 영어실력을 갖춘 사람들은 늘어났을지 모르지만 상위권은 오히려 예전만 못하다. 인사말은 유창하지만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회화능력을 갖춘 사람은 드물다”고 말한다.

이보영씨는 4년 전 이익훈 원장의 초청으로 특강을 한 것이 계기가 돼 이 원장과 정보교류를 해 왔다. 백선엽, 이지영씨와는 비슷한 연령대라 방송 활동을 통해 친해졌다.

●‘소장파’ 백선엽과 이지영

백선엽씨는 98년 미국 아이오와대 재학 시절부터 4년간 열여덟권의 회화책을 내며 ‘엔터테인먼트 영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미국인들의 연애관 성생활 라이프스타일 등에 관한 회화문구를 속어를 포함, 완전 구어체로 구성한 ‘미국 20대가 즐겨쓰는 박스영어’ ‘365단어로 코쟁이 기죽이기’ 등을 냈다. 두 책은 4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됐다. 최근에는 ‘미국영화표현 다짜고짜 따라듣기’를 냈다. 백씨는 “재미있는 영어책으로 ‘영어 참고서’의 역할을 해내고 싶다”고 말한다.

이지영씨는 중고교와 대학, 대학원을 영국에서 마친 유학파지만 강의 실력은 웬만한 토종 베테랑 못지 않다. 최근 라디오방송 진행자로만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90년대 중반 유명 대입학원 강사들의 강의를 녹음해 듣고 다녔고 성문종합영어, 맨투맨 등 ‘한국형 참고서’를 죄다 섭렵했던 것이 주효했다”고 말한다. 보습학원 강사로 영어 가르치기를 시작한 그녀는 대입 특강 강사를 거쳐 이익훈어학원에 스카우트돼 강사로 활동했다.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30,40대의 영어배우기에 관한 조언▼

고인경·청취의 경우 AFKN이나 CNN 뉴스의 ‘일기예보’부터 도전해 본다.
·미국 영어에 집착하지 말고 ‘동양인다운 영어’를 구사할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이익훈·목표를 ‘광고’해라.
·‘귀’로 시작한다. 받아쓰기, 큰 소리로 따라하기 등을 병행하려면 최소한 워크맨 3개는 고장 낼 각오를 해야 한다.
박 정·쫄지 말고 공부해라. 학습한 만큼 반드시 실적이 있다.
·영작문을 영어 공부의 시작으로 삼는 것도 방법이다.
이보영·소액이라도 주식투자를 했다면 주가의 확인과 분석은 한국신문을 보기에 앞서 영자신문의 경제면과 주식면을 참조해라.
·사무실에서는 자투리 시간에 양질의 인터넷 영어공부 사이트를 적극 참조한다.
김재호·생활영어든 시험이든 목표를 명확히 세워 출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도 포기할 확률이 높다.
·학교 다닐 때 읽었던 참고서나 정리해둔 단어장을 천천히 리뷰해 본다.
백선엽·영어를 상대로 바람을 피우자. 매일 챙겨주지 않으면 안된다.
·영화 보기 등 저절로 공부되는 ‘당의정’으로 재미를 찾자.
이지영·발음 발성 성조도 6개월만 노력하면 수정이 가능하다.
·영작을 할 때 의식적으로 주어 동사 다음에 ‘who, what, where, why, how, when’을 떠올리며 글을 써 보면 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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