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요리솜씨] 연세대 최희암 농구감독의 참치샌드위치

  • 입력 2001년 8월 9일 16시 03분


◇ 아버지가 웃으며 요리하면 ‘꿀맛’

샌드위치 만들기는 밥 짓고 반찬 한두 가지 하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다. 요리에 아무런 지식이 없는 남성들도 일요일 한때, 슈퍼에 가서 재료를 사고, 30분 정도 시간을 내면 온 가족을 기쁘게 할 수 있다. 이 음식을 싸들고 가족이 함께 소풍을 간다면 더욱 좋다.

최희암 연세대 농구감독(46). 89∼90년 대학농구 전관왕, 93∼94 농구대잔치 우승, 96∼97.97∼98 농구대잔치 우승 등 연세대 농구팀의 화려한 전성시대를 연 주인공이다. 1990년대 초중반 대학농구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릴 때, 감색 양복을 깔끔하게 입고, 팔짱을 끼었다 풀었다 하며 팔을 뻗어 선수들이 뛸 방향을 가리키는 모습은 그 자체로 볼거리였다. 그는 지적인 외모와 조리 있는 말솜씨로 ‘카메라를 가장 잘 받는 감독’으로 불렸다.

시청자들은 최감독이 농구선수 출신이라면 잘 믿지 않는다. 이는 최감독이 풍기는 학구적인 분위기 탓이다. 그는 휘문중에 입학하면서 농구공을 처음 잡았다. 당시로서는 큰 편인 168cm의 키가 농구부장인 담임 선생님 눈에 띄었던 것이다. 그러나 휘문고, 연세대, 현대건설을 거치는 현역시절, 국가대표 한번 못해본 탓에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1978년 현대건설 농구팀 창단멤버로 입단했을 때도 수비 전문이어서, 박수교·신선우 등 쟁쟁한 동기의 그늘에 가렸다. 결국 그는 선수생활을 접고, 업무직을 자청해 1985년 이라크 바그다드 지사로 떠났다.

그는 1년 만에 모교인 연세대 농구팀 지도자로 돌아왔다. 당시만 해도 연세대 농구팀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포부가 있었다. 선수 시절의 꿈을 후배들을 통해 이루고 싶었다. 그는 젊은 혈기에 물불 가리지 않고 후배선수들을 몰아쳤다. 이런 집념은 연세대 농구팀을 곧바로 정상으로 끌어올렸다. 중앙대를 꺾고 대학농구의 정상에 올라섰고, 농구대잔치 93∼94시즌에는 사상 최초로 대학팀으로서 정상에 올랐다.

그는 무엇이든지 승부에 집요하다. 취미도 모두 고스톱, 장기, 바둑, 마작 같은 승부를 가리는 게임들이다. 과거에는 포커까지 했으나 판돈이 들어 그만두었다. 특히 마작은 잡념을 없애기 위해서 종종 즐긴다. 여기서 승부의 철학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코트만 떠나면 그는 승부사 기질을 벗고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 자상한 아버지로 변신한다. 최감독을 만나면 누구라도 편안해진다.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지위가 올라갈수록 더욱 어려운 일이다. 부인 조민경씨(42)와의 결혼에도 이런 점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 조민경씨는 최감독을 대학 4학년 때 축제 파트너로 처음 만났다. 당시 최감독은 선수생활을 막 끝내고 현대건설 자재부에서 샐러리맨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대학 4학년생과 회사원은 어울리지 않는 파트너였다. 더구나 조씨는 대학 생활 내내 미팅을 하더라도 체육학과 출신은 피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조건이 최감독에 불리했지만, 그에게는 특유의 매력이 있었다. 바로 표정이다. 처음 만났을 때도, 두 번째 만났을 때도 조씨는 약속시간보다 30분씩 늦었는데 최감독은 계속 웃기만 했다. 항상 웃는 얼굴이 조씨의 마음을 사로잡아 최감독과 조민경씨는 만난 지 1년 만인 82년 5월, 서울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결혼했다.

최감독의 웃음과 편안함은 가족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아들 둘을 키우면서 좀처럼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탈선만 하지 않으면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한다. 그는 이런 양육 방식을 결혼할 때 아내와 약속했다고 한다. 현재 고3과 중2인 두 아들은 개인 과외를 받아본 적이 없다. 큰아들은 고2가 되면서 보습학원에 다닌 것이 전부다. 교직원 월급으로 과외를 시키기도 힘들었지만, 최감독 부부의 교육 원칙은 억지로 공부를 시키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큰아들 원영 군의 경우, 고3인데도 저녁 10시30분이면 어김없이 잠자리에 든다. 아내 조민경씨도 아이들을 다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큰아들 원영 군은 “아버지, 어머니가 어릴 때부터 성적에 대한 부담을 좀더 주었더라면 지금보다 성적이 좋았을 텐데”라고 푸념할 정도다. 둘째 원섭 군은 초등학교 때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운동에 자질이 있었다. 최감독 부부는 그래서 둘째아들은 명지중학교에 진학시켜 농구선수로 키우고 있다.

부담 주지 않고 남을 편안하게 해주는 특성은 최감독의 식성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김치찌개 하나만 있어도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다. 뱀고기만 빼놓고 한식, 중식, 양식을 가리지 않는다. 아이들이 피자를 먹자고 하면 김치찌개처럼 잘 먹고, 라면도 마찬가지다. 그를 닮아 두 아들도 아무 음식이나 잘 먹는다. 이런 집안은 음식을 준비하는 주부가 한결 수월하지만 단점도 있다. 그 집안의 음식문화가 발달하지 못한다. 한 집안의 음식문화와 맛내기는 입맛이 까다롭고 까탈스러운 식구가 많을수록 발달할 가능성이 크다.

일요일에 온 식구가 같이 있을 때, 최감독 가족들은 샌드위치로 한끼 식사를 해결한다. 샌드위치 만들기는 밥 짓고 반찬 한두 가지 하는 것보다 훨씬 간편하다. 남자들도 아무 도움없이 시도해볼 수 있는 요리다. 샌드위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식빵이다. 샌드위치용 빵은 네모 반듯한 것이 모양이 깔끔하고 가장자리를 잘라냈을 때도 허실이 적다. 또 푹신한 것보다는 약간 단단하고 너무 두껍지 않은 게 적당하다. 요즘엔 건강 식빵이 많이 나와 있는데 샌드위치의 재료에 따라 식빵 종류를 달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예를 들면 호밀이나 호두 같은 견과류가 섞인 빵은 연어나 참치샌드위치, 건포도식빵은 과일샌드위치, 그리고 치즈야채식빵은 햄·달걀샌드위치에 잘 어울린다. 식빵은 가장자리를 잘라내 준비해둔다.

샌드위치 속도 어려울 것이 없다. 슈퍼에서 마카로니를 사서 팔팔 끓는 물에 삶아 익으면 건져 물기를 빼놓는다. 통조림 옥수수와 통조림 참치도 체에 쏟아 물기를 빼서 준비한다. 채소는 양배추와 오이를 다져 놓는다. 기호에 따라 토마토 등 다른 채소를 곁들여도 좋다. 이 재료에 마요네즈를 넣고 골고루 섞으면 샌드위치 속이 완성된다. 식빵에 이 재료들을 바르고 먹기 좋게 삼각형이나 직사각형으로 썰면 끝나는데, 샌드위치를 자를 때 빵칼이나 칼을 뜨겁게 달구어 썰면 자른 면이 깨끗하다.

샌드위치는 적은 돈으로 조금만 재료를 준비해도 온 식구가 배를 두드리고도 남는다. 여러 사람이 나눠 먹을 수 있어 소풍 음식으로도 적당하다. 최감독은 음식이 남으면 집에서 지척인 연세대 농구부 합숙소로 가지고 간다. 후배이자 제자인 연세대 선수들을 먹이기 위해서다. 현재 대학농구의 경기 수준은 4∼5년 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체격도 훨씬 좋아졌고, 덩크슛도 흔하게 나온다. 그런데도 대학농구는 과거와는 달리 팬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연세대 합숙소 앞 담벼락을 새카맣게 채웠던 오빠부대들의 낙서는 모두 4∼5년 전 것들이다. 말리는 사람이 없는데도 낙서를 하는 소녀들은 사라졌다. 요즘 대학농구의 관중은 학부형뿐이다. 대중의 사랑은 그만큼 변덕스럽다.

최감독은 지금 대학농구의 전성시대를 되살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최근에는 여자농구 해설자로서 TV시청자를 만난다. 최고의 에너지를 폭발하며 인생의 절정에 섰던 최희암 감독. 그가 어떤 모습으로 변신할지 궁금하다.

「요리과정」

1. 통조림옥수수를 체에 걸러 물기를 뺀다.

2. 통조림 참치를 체에 걸러 물기를 뺀다.

3. 물을 팔팔 끓이고 건조된 마카로니를 넣는다.

4. 마카로니가 알맞게 익으면 불을 끈다.

5. 익은 마카로니를 체로 걸러 물기를 뺀다.

6. 양배추는 잘게 썬다.

7. 오이는 반을 갈라 잘게 썬다.

8. 큰사발에 재료를 담고 마요네즈를 뿌린다.

9. 골고루 버무린다.

10.칼을 뜨겁게 달구어 빵 가장자리를 잘라낸다.

11.속재료를 끼운 뒤 먹기좋은 크기로 자른다.

12.모양있게 담아낸다.

글·최영재 기자 /사진·김용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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