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스포츠]공포의 외인구단

  • 입력 2001년 8월 6일 18시 42분


우리는 스포츠를 일상의 바깥에 속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답답한 일상과는 동떨어진 어떤 것. 그저 일주일의 피로를 날려주는 청량제일 뿐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세상의 어느 것도 우리의 현실과 동떨어진 것은 없다.

스포츠 역시 예외는 아니다. 소득 수준 1000달러 시대에 우리는 탁구를 쳤다. 그러다 5000달러가 넘으면서 동네 곳곳에 수영장이 생겼고 1만달러를 상회하면서 골프가 대중화되었다. 만일 우리가 아직 1000달러 시대에 머물러 있다면 과연 박세리 김미현이 요즘처럼 국민적 스타가 될 수 있었을까. 골프가 대중 스포츠로 인식되면서부터 세계적인 선수가 배출될 수 있었고 그 다음에야 오늘의 박세리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스포츠는 특히 그 시대의 정서와 깊은 관련이 있다. 가령 이장호 감독이 요즘 ‘공포의 외인구단’을 만든다면 15년 전의 욕망과 애증의 옥타브는 두세 칸 쯤 낮아졌을 것이다. 그땐 그랬다. 사랑하는 여인이 있고 절대 강자가 있고 운명의 저주에 맞서는 불사신들이 있다. 그리고 야구가 있다. 안성기와 최재성이 눈을 부라렸고 이보희는 마치 바그너의 악극에 등장하는 비운의 여주인공 이졸데처럼 운명의 광풍에 몸서리치는 가녀린 엄지가 되었다.

‘별들의 고향’ ‘바람불어 좋은 날’ ‘바보선언’ 등으로 평생 이룰 업적을 일찌감치 성취해버린 천재 감독 이장호가 5공화국의 살얼음장 같은 사회 현실을 밑그림 삼아 비극의 드라마로 만든 ‘공포의 외인구단’. 아시다시피 원작은 그 유명한 이현세의 동명 만화다. 이 두 작품은 5공화국의 심리적 반사거울로써 그 답답하고 암울했던 파시즘 시절에 정확히 대응한다.

모든 것이 극단으로 치닫던 시대였으므로 영화의 모든 요소 또한 극단에 극단을 달린다. 한 발 물러서서 보면 대단히 두렵고 위험한 감정의 낭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땐 그랬다. 조금의 여유와 틈도 없던 시절이므로 이현세와 이장호가 야구를 소재로 빚어낸 이 예술은 어쩔 수 없이 감정의 극단, 저주스런 운명에 대한 반작용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 누군가 이를 재현한다면 그것은 철없는 투정이요 시대정신이 결여된 빈약한 상상의 장난이 될 뿐이다.

그러니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이 영화의 유명한 노랫말 역시 정확히 그 참담했던 시대를 향한 종결어미로 의미있다고 하겠다.

<정윤수·스포츠문화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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