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한보-대생 외화도피 안팎

  • 입력 2001년 5월 23일 18시 53분


한보, 대한생명의 기업주들이 해외에 거액을 빼돌린 사실이 확인됐다. 그동안 이들 회사의 외화 은닉설은 업계에서 꾸준히 나돌았는데 국세청 조사에서 사실로 밝혀진 것이다. 국세청은 올 1월부터 2단계 외환자유화가 실시된 뒤 외화를 해외에 빼돌린 기업주들이 더욱 늘어났을 것으로 보고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재기를 꿈 꾼 정태수씨〓EAGC의 외화도피 사례에서도 한보그룹 창업자 정태수씨 일가 특유의 무모함이 드러났다. 압류된 자산을 채권단 몰래 해외로 빼돌린 점이나 이미 한 번 사법처리를 당한 범죄를 3년 만에 태연하게 재연한 점이 그것이다.

서울지방국세청 이주성 조사2국장은 “정씨가 재산을 해외로 빼돌려 재기를 꿈꿨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EAGC의 최대주주인 SAG사가 사실은 정씨 일가의 회사임이 밝혀지면서 숨겨놓은 재산도 채권단이 회수할 것을 우려한 정씨측이 다급하게 루시아 페트롤리엄 주식을 처분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국세청의 이번 조사는 러시아 언론이 ‘한보측이 루시아 페트롤리엄 주식을 매각했다’고 보도함으로써 시작된 것으로 밝혀져 “채권단이 압류재산 관리에 너무 소홀하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8000만달러 날린 대한생명〓대한생명의 해외자산 유출도 조세회피지역에 개설한 역외펀드를 이용한 복잡한 ‘환치기 수법’의 전형을 보여주지만 그 동기는 단순하다. 대한생명의 계열사인 SDA인터내셔널이 빚독촉에 시달리자 최순영 회장이 계열사를 살리기 위해 모회사의 자산을 빼돌려 계열사를 지원한 것.

SDA인터내셔널이 문을 닫음으로써 대한생명은 8000만달러를 회수하지 못했다. 회사 주주와 수많은 보험계약자들의 자산이 오너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계열사에 투입됐다가 원금도 회수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대한생명에는 공적자금이 투입됨으로써 전 국민이 대한생명의 부실을 세금으로 떠안는 꼴이 됐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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