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봉의 야구읽기]믿는다 '대성 불패'

  • 입력 2001년 4월 9일 18시 32분


86년 2월 어느날. 대전고등학교 운동장에 이 학교 교장선생님을 비롯해 꽤 많은 학부모와 동문들이 몰렸다. 이날은 서울에서 내려온 고교팀과 대전고가 연습경기를 하는 날.

수백명의 관중이 모인 것은 이제 중학교를 갓 졸업하고 대전고에 입학예정인 한 신입생의 투구를 보기 위해서였다. 비록 중학교지만 전국을 제패한 투수였기에 기대가 컸다.

그러나 선배들과의 대결이 부담이 됐을까. 이 투수는 1회초 상대팀의 1, 2, 3번타자에게 연속 볼넷을 허용했다. 무사 만루.

“역시 고교타자는 다른가 보구나.”

“아직 어린 티가 나네.”

관중석이 시끄러워졌다.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간 것은 당연한 수순. 감독은 이 어린 투수와 몇마디 나눈 뒤 등을 한번 툭 쳐주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이 때문이었을까. 어린 투수는 그때부터 완전히 다른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4번, 5번, 6번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잡고 여유있게 마운드를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동문들이 감독에게 물었다.

“감독님, 뭐라고 하셨기에 저렇게 달라졌어요?”

“나는 아무 말도 안하고 저 녀석 말을 듣기만 하고 내려왔어요.”

“저 아이가 뭐라고 했는데요?”

“아 저 녀석이 다짜고짜로 하는 말이 ‘감독님 걱정마세요. 주자가 없으면 재미가 없어서 일부러 세명을 내보냈어요. 괜찮을 거예요’라고 그러잖아요.”

이 어린 투수가 바로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블루웨이브에서 뛰고 있는 구대성이다.

타고난 배짱과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으로 현역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불리는 구대성. 충남중―대전고―한양대―한화를 모두 정상에 올려놓았고 지난해 시드니올림픽 3, 4위전에서 일본에 완투승을 거두며 우리에게 동메달을 안겨준 그의 ‘대성 불패신화’는 일본에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믿는다.

(야구해설가)hyobong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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