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사람들]문화개혁시민연대  이유주혜 간사

  • 입력 2001년 3월 26일 18시 38분


봄바람 치고는 제법 센 바람이 따뜻한 햇살을 무색케 하고 있는 조금은 쌀쌀한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 골목을 지나 한참을 바람과 싸우며 도착한 곳은 허름한 솟을대문에 1층짜리 한옥풍 가정집이었다.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문화연대)'

"끼이익"

삐걱거리는 문을 밀고 들어가자 문에 매달린 종들이 서로 몸을 부대끼며 "땡그렁 땡그렁"하고 요란하다.

"저, 이유주혜 간사님 계십니까?"

부모의 성을 함께 쓰는 사람들이 늘고는 있지만 아직 큰소리로 부르기에는 어색하다.

건물 외형과는 달리 컴퓨터, 복사기 등의 '현대화' 장비가 놓여진 방에는 서너명의 사람들이 분주하게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어, '이유'야 동아닷컴에서 왔나 보다. 야, 니가 뭐 유명인사냐? 인터뷰를 다하게"

그 중 어려보이는 한 사람이 얼굴을 붉이며 후다닥 나와 옆 방으로 가자며 이끌었다.

이유 간사와 자리잡은 방은 각종 포스터로 덕지덕지 구멍을 메운 문풍지가 인상적인 미닫이문으로 돼 있었다.

방에는 작은 앉은뱅이 책상에 얇은 천이 덮여있고, 그 위에는 음료수 한 병과 자그마한 재털이가 놓여있었다.

방의 운치 탓인지 문득 담배 한대가 생각났다.

"저 담배 있으시면 한 개피만…"

"저 담배 안 피워요"

"어, 그래요"

요즘 유행하는 '허무 개그'가 그대로 연출됐다.

이유주혜, 나이 25세,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지난해 10월부터 자원봉사를 하다가 '말뚝박은' 케이스.

정식으로 유급 간사가 된지는 고작 3개월이다.

간단한 신상조사를 마치고 요즘 진행하고 있는 '가요 순위 프로그램 폐지운동'에 대해 물어봤다.

"순위 프로그램을 보면 음악성보다는 카메라 기술 등으로 '보이기'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지만, 공중파에서 매주 1시간씩 방송이라는 무기로 음반시장, 기획사들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문화연대'는 한국 대중음악이 문화적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상업시장만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을 부추기는 것이 바로 방송사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순위 프로그램의 순위는 80% 정도가 음반판매량을 기준으로 하는데 그 집계가 신빙성이 없고 특히 순위 변동을 모니터링해 보면 계획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3개월 밖에 되지 않은 신참 간사지만 또박또박 설명하는 모습에서 전문가다운 차분함이 느껴졌다.

문화연대 류승준 정책실장도 이유 간사에 대해 "일을 하면 할수록 더 빛이 나는 사람"이라면서 "뚜렷한 주관과 시민운동에 대한 애착이 강한 후배"라고 칭찬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마당을 휘돌던 바람이 미닫이문을 흔들며 방안으로 스며들어 한기가 느껴질 때에는 여섯살 무렵 할머니와 함께 자던 고향집 월셋방 생각에 잠시 고향의 모습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별명은 유럽연합이에요, 이유(EU)"

지난해 5월부터 어머니의 성까지 함께 쓰는 이유 간사는 문화연대에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EU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대학시절 '아저씨'라고 부르며 친했던 서강대 모 교수님의 영향으로 시민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간사는 회화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미술을 통해 본 문화'에 관심이 있다.

"아저씨가 성숙한 시민은 한 두개 시민단체에 가입해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문화연대에 자원봉사를 하기로 했지요. 그러다 굳었지만…"

얼마되지 않은 기간이지만 보람을 느낀 적이 있냐는 질문에 이유 간사는 "아직 말할 만한 것은 없지만 그런 경험이 많았으면 좋겠어요"라며 웃었다.

"내 생각의 기준에 맞춰서 세상을 바라봤었는데 세상이 너무나 다양하다는 당연한 진리를 이제야 느낄 수가 있게 됐어요"

이유 간사의 당면 목표는 '세상 바라보는 눈 키우기'

대단한 결의보다는 낭만적인 마음으로 출발한 시민운동에서 그녀가 꼭 갖추고 싶은 부분이다. 물론 전문분야에 대한 노하우도 마찬가지로 욕심이 난다.

"문화개혁을 한다고 하지만 저부터 개혁해야 할 대상 같아요. 순위 프로그램 문제를 얘기하면서 제대로 고민해서 음반을 구입한 적이 별로 없거든요"

이유 간사는 문화개혁을 위해서는 '문화 소비자'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직 방송 순위프로그램에서 1위를 한 적이 없는 가수 안치환씨를 좋아하는 이유 간사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이미자, 심수봉, 산울림 등 옛날 가수를 더 좋아한다.

이유 간사의 부모님께서는 시민운동을 하는 딸에게 '공부나 더 하든지, 시집이나 갈 것이지'라며 반대하고 계시지만, 서로 대화를 통해서 조금씩 차이를 줄여나가고 있다.

"아직 애인 없어요"라고 말하는 이유 간사는 문화개혁의 중심에서 활발히 활동하겠지만, 앞으로 조금은 더 부모님 속을 상하게 할 것 같다.

최건일/동아닷컴 기자 gaegoo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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