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브리그]김병현도 한때는 초특급 타자

  • 입력 2001년 3월 16일 15시 56분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정말 이 길이 옳은가?” 또는 “혹시 잘못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며 한 번쯤 고민한 적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과연 투수가 적성에 맞는지, 아니면 타자로 전업해야 하는지 등 진로 선택에 대해 끊임없이 헷갈리게 마련이다. 선수 자신도, 그를 오랫동안 지켜봤던 스승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답을 내리기 어렵다. 특히 그가 만능선수라면 해답은 더욱 오리무중으로 빠지기 일쑤다.

지금 메이저리그 시범경기는 동향에 고교 선후배 출신인 한국 선수들의 활약으로 떠들썩하다. 불과 3년 만에 메이저리그 초청선수 명단에 뽑혀 연일 화제를 부르고 있는 좌타자 최희섭(시카고 컵스), 그리고 역시 3년째인 2001시즌 애리조나의 주전 마무리로 도약할 김병현. 이들은 야구명문 광주일고 1년 선-후배 사이(김병현이 1년 위)다. 이미 고교시절부터 탁월한 재능을 보여줬던 이들은 각각 김병현이 성균관대, 최희섭이 고려대로 진학한 2년 뒤 학교의 적극적인 후원 속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다른 선수들이 마이너리그의 힘든 시절을 연장하고 있는 것을 고려해 볼 때 김병현, 최희섭의 승승장구는 더욱 돋보인다.

김병현은 잠수함 투수로, 최희섭은 뛰어난 좌타자로 활약하고 있지만 시계를 5, 6년 전으로 되돌리면 흥미로운 일화가 발견된다. 김병현은 투수로서도 활약했지만 타자로서의 재능도 뛰어났다. 김병현이 고교 3년 시절 국가대표로 발탁됐을 때 그의 보직은 놀랍게도 외야수. 광주일고 중심타자로 매서운 방망이 솜씨를 보여 태극마크를 달게 된 것이다. 최희섭은 “병현이 형은 그때 정말 정교한 타격을 선보였다. 나랑은 비교도 안 됐다”며 1년 선배를 높이 치켜세운다. 최희섭의 겸손을 감안하더라도 김병현의 실력이 대단했음은 틀림없는 듯하다.

하지만 지난해 김병현의 타격(내셔널리그라 투수도 타석에 들어서야 한다)을 가끔 지켜본 이들은 알겠지만 빅리그 투수들의 빠른 공이 사뭇 두려운 듯 엉덩이를 잔뜩 뒤로 빼고 방망이를 걸친 그의 모습은 예전 타자로서의 ‘전성기’와 비교해보면 상상이 가지 않는다.

연일 불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는 최희섭은 공교롭게 투수였다. 2m에 가까운 큰 덩치는 어린 시절에도 독보적이었고 중학시절 감독이 그의 체격을 높이 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타석에 서는 게 좋다며 일찌감치 투수의 길을 포기했다고 한다.

전업 성공의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88년 김응국(롯데)의 타자로의 전환이다. 당시 2군 투수였던 김응국은 ‘땜빵’으로 타석에 들어섰다가 호쾌한 타격을 선보여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좌타자로 남게 됐다. 그때까지 10여년간 야구를 해왔으면서도 자신의 재능을 늦게 발견한 셈이다. 물론, 바꾼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투수 혹은 타자의 길을 선택하면서 ‘가지 않은 길’을 후회하다 아까운 시간만 낭비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성공사례가 흔하지 않다는 점에서 선택의 중요성은 더욱 값지게 마련이다.

그때 만약 최희섭이 투수의 길을 걸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김병현이 계속 배트를 들었다면 또 어떤 상황이 전개됐을까.

<주간동아/스포츠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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