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리포트]"21세기 新실크로드 거점도시" 부푼꿈

  • 입력 2001년 3월 13일 18시 46분


《“경제활동의 대동맥인 물류망을 갖추지 않으면 외부인에게 그 나라 경제를 내줘야 한다. 중국에서는 결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 주룽지(朱鎔基)총리가 이달초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경제개발을 위한 인프라 건설을 역설한 뒤 상하이(上海)를 중심으로 한 물류망 건설이 한층 빨라지고 있다. 최근 상하이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컨테이너 터미널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인근 저장(浙江)성의 양산(洋山)군도에 52개의 대형 컨테이너선이 동시에 짐을 싣고 부릴 수 있는 새 항구를 만들기로 한 것.》

▼글 싣는 순서▼
1. 총성없는 전쟁
2. "나를 더 이상 중국인이라 부르지 마라"
3. 피말리는 자발적 구조조정
4. 강요된 현지화:"내 돈은 내돈,네 돈도 내돈"
5. 발화하는 주식시장:'미래의 노다지'인가
6. 실리콘 밸리도 두려워하는 폭발 직전의 IT산업
7. 아시아 물류의 중심지로 거듭나는 상하이

상하이시 국제해운센터 쑤바이장(蘇伯章)건설국장은 “연간 40피트짜리 컨테이너 2100만개를 처리할 수 있는 규모”라며 “2010년까지 100조위안(약 2조5000억달러)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화물처리량 세계 1위인 홍콩항의 지난해 컨테이너 처리량은 40피트짜리 890만개(1780만TEU). 거의 2.5배나 되는 셈이다.

상하이시가 새 항구를 건설키로 한 것은 황푸(黃浦)강 연안의 기존 항구로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물동량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 94년 불과 120만TEU이던 물동량이 지난해 561만TEU로 늘었다. 중국 경제개발의 견인차인 상하이가 대륙으로의 ‘들 것’과 세계로의 ‘날 것’까지 책임지는 ‘중국 경제의 허파’로 확실하게 자리잡은 것이다.

상하이는 지리적으로 서부 쿤룬(昆侖)산맥에서 발원해 5000㎞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창장(長江)이 서해와 만나는 곳. 예로부터 대륙에서 밖으로 나가는 ‘물산’의 집산지이자 대륙으로 들어가는 외국물자의 공급처였다.

항저우(杭州), 난징(南京), 쑤저우(蘇州), 쿤산(昆山) 등으로 형성된 상하이경제권은 중국 최대의 공업단지로 원자재나 생산품이 모두 상하이항을 거친다. “내륙 도시는 물론 동북쪽의 대운하 권역을 오가는 컨테이너들도 상하이를 거치면 경비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 물동량이 연 30%씩 늘고 있다”고 쑤(蘇)국장은 소개했다.

상하이시는 새 항만이 완성되면 기존 중국북부(화북 및 동북 3성)지역 물류의 중계항 역할을 해 온 한국의 부산항과 광양항을 추월할 것으로 자신한다. 톈진(天津)과 다롄(大連)항에서 출발한 화물선이 한국이 아니라 상하이를 거쳐 미주와 유럽으로 떠날 경우 부대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것.

상하이가 21세기 물류의 중심으로 도약하기 위한 프로젝트는 바다에만 그치지 않는다.

상하이는 건국 50주년에 맞춰 99년 푸둥(浦東)공항을 개항했다. 130억위안(약 1600만달러)을 투입해 ‘아시아의 허브공항’을 겨냥한 것. 2003년 2단계 공사가 끝나면 연 2000만명의 승객과 75만t의 화물을 처리할 수 있다.

푸둥공항이 문을 열자 미국 노스웨스트항공사는 상하이∼디트로이트간 직항 화물편을 주 2회에서 3회로 늘렸다. 유럽 양대 항공사인 독일의 루프트한자와 프랑스의 에어프랑스도 푸둥을 아시아 물류중개지로 설정, 올해부터 상하이∼유럽 노선에 중국인 스튜어디스를 대거 투입했으며 기내식에도 중국식을 추가했다. 사람과 물자를 모두 잡겠다는 전략이다. 역시 아시아의 허브공항을 목표로 29일 개항하는 인천 신공항과 푸둥공항의 승부가 관심을 끈다.

전통적인 ‘물류 동맥’ 육상교통에 대한 투자도 적극적이다. 지난해 유럽으로 연결되는 중국횡단열차(TCR) 공사에 착수한 것. 서부 대개발의 최대 역점사업 중 하나인 난징∼시안(西安)구간이 2005년 완공되면 상하이는 21세기 ‘신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자 종착역이 된다.

또 올 초에는 상하이와 베이징(北京)을 잇는 징루(京瀘)고속도로가 개통됐다. 두 도시 사이에 고속철도도 곧 건설된다. 상하이시는 이를 앞두고 10년간 고가도로와 지하철 등 시내 인프라 건설에 150억달러를 투입했다. 쑤저우와 쿤산 등 창장 삼각주 경제권이 모두 1시간 거리 안에 든 것도 이 덕분.

이러다 보니 세계적인 물류회사들이 아시아의 거점을 모두 상하이로 옮기고 있다. 세계적 물류망을 갖춘 미국의 기업연구소(AEI)는 이미 푸둥개발구에 2만5000피트 규모의 물류단지를 확보하고 배송 환적 라벨링 등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상하이시 개발계획위원회 주자오쑹(朱沼松)부위원장은 “현재 상하이에는 20여개의 다국적 물류회사가 진출해 있으나 잠재수요를 충족시키기엔 여전히 부족하다”며 “싱가포르나 홍콩을 따라가기엔 아직 역부족”이라고 겸손해 했다.

이들 기간 물류망은 대륙 내 지역단위까지 전달체계를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직 불완전하다. 심지어 작은 행정단위로 물건을 보내려면 나룻배를 이용하는 경우마저 종종 있다. 나아가 항공과 해운, 육운의 유기적 결합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 부으며 추진중인 이 물류망 건설작업의 성공 여부는 상하이가 아시아 물자흐름의 ‘허브’가 될 것이냐는 문제를 넘어 상하이가 세계경제의 심장부로 진입할 것인지를 결정짓는 열쇠가 될 것이다.

▼양쯔강 연안~상하이 연결 물류주역은 소형 바지선▼

‘경제가 발전할수록 더욱 절실해지는 현대와 과거의 조화.’

난징(南京) 우한(武漢) 충칭(重慶) 등 양쯔(揚子)강 연안 도시들과 상하이를 잇는 물류의 주역은 바지선이다.

현지에서 ‘보촨’으로 불리는 이 배는 대부분 1000t 이하의 소형선박. 한때 무동력선도 적지 않았으나 물량이 급증하면서 대부분 동력선으로 개조됐다.

그러나 40피트짜리 컨테이너 50∼100개를 싣는 이 바지선들은 양쯔강 연안의 제조단지를 오르내리며 상하이를 양쯔강의 용머리 또는 여의주이자 중국 물류의 중심지로 만드는 데에 절대적으로 기여했다.

바지선의 장점은 철도나 육상교통에 비해 대량운송이 가능하다는 점과 운송비가 절대적으로 싸다는 점. 상하이에서 우한까지의 바지선 운임은 육상운송에 비해 10분의 1 수준이다. 상하이와 양쯔강 일대의 경제가 꿈틀거리면서 바지선 숫자도 최근 2, 3년 사이에 급증했다.

반면 수양제 시절에 건립된 북쪽의 대운하권역은 양쯔강에 비해 수심이 낮은데다 수로도 좁아 바지선이 아닌 100t 이하의 작은 배들이 운항중이다. 중국은 양쯔강의 물을 황허(黃河) 이북으로 끌어들이는 남수북조(南水北調) 프로젝트를 올해 시작되는 10차5개년 계획의 중점항목으로 선정해놓고 있어 바지선들이 대운하를 누빌 날도 멀지 않았다.

중국이 국운을 걸고 추진중인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모순개념으로 끝나느냐, 아니면 세계 경제의 축을 뒤바꾸는 획기적 전범이 될 것이냐는 문제와 ‘현대 속의 과거’ 양쯔강 바지선의 운명은 닮은꼴인지도 모르겠다.

▽특별취재반▽

반병희(기획취재팀) 이승헌 기자(기획취재팀) 김두영 기자(금융부) 이종환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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