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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칼럼]'숙취이론'에 빠진 일본은행들

입력 2001-03-12 18:33업데이트 2009-09-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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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일본의 미야자와 기이치 재무상은 “일본의 재정이 ‘붕괴 상황’에 가깝다”고 말해 시장을 깜짝 놀라게 했다.

최근 통계들은 일본 경제가 함정에 빠져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 경제가 함정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으나 관리들은 이를 단호하게 거부해 왔다. 특히 경제 논리상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미야자와 재무상을 도와 공격적인 통화확대를 할 수 있었고 또 해야만 했다. 그러나 일본은행은 ‘왜 할 수 없는지’ ‘왜 해서는 안되는지’ 등 그럴듯한 구실을 찾기에 급급했다.

지난해 여름 일본은행은 제로 금리 정책을 포기함으로써 경제에 압박을 가했다. 이에 따라 경기가 침체에 빠져 있으면서도 물가가 하락하는 증거가 나타나자 일본은행의 관리들은 ‘양호한 디플레이션’을 겪는 과정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양호함’이 틀린 것으로 판명된 지금 일본은행은 금리가 여전히 제로에 가깝기 때문에 경기부양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주장한다.

사실 일본은행이 할 수 있는 일은 여러가지가 있다. 장기적으로 화폐를 더 발행해 디플레이션을 ‘양호한 인플레이션’으로 유도하는 방법이 있다. 또 장기채를 사들여 장기금리를 인하하고 엔화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을 진작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일본은행은 이 가운데 어느 것도 시도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먼저 잘못된 경제 논리에 집착하는 하야미 마사루 일본은행 총재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는 경기가 과열된 후에는 침체가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편다. 일본의 경우 1980년대 일었던 버블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경기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를 ‘숙취 이론’이라고 부른다.

숙취 이론은 경제의 무기력함을 버블에 대한 죄값과 후회라는 도덕적 차원으로 변환시키는 감정적 호소력이 있으나 실제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금융버블 기간 중 올바르지 못한 투자가 숱하게 이뤄졌다. 일본정부는 그런 투자를 잘못으로 인정하고 과감하게 장부처리해야 했지만 숙취 이론에 빠진 정책 입안자들은 ‘경기가 나빠지면 좋아질 수도 있다’는 식의 자세를 취했다.

게다가 일본은행 관리들은 엄격한 규율주의자로 변신, 금리를 무기력에 빠진 기업들의 자세를 가다듬게 만드는 데 이용했다. 실제로 지난해 여름 하야미 총재는 제로 금리 정책이 기업을 나태하게 만들었다며 금리를 올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미국에서도 ‘경기침체를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된다’는 등 숙취 이론가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이런 주장은 그 싹부터 잘라내야 한다. 또 잘못 투자된 것이 있으면 과감히 장부처리를 해야 한다. 만약 미국에서 버블이 침체로 바뀌는 상황이 생긴다면 그 책임은 ‘너무도 안일하고 늦게’ 대처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있다.

<정리〓차지완기자>marud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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