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리포트]"나를 더 이상 중국인이라 부르지 마라"

  • 입력 2001년 3월 6일 18시 53분


상하이 토박이인 스쉰(石遜·32)은 누가 봐도 잘 나가는 ‘여피족’. 상하이 자오퉁(交通)대 재료공학과 88학번인 그는 98년 동(銅)케이블 제작사를 차려 지난해 매출액 7000만위안(약105억원)짜리 중견기업으로 키워냈다. 결혼 4년째인 은행원 아내의 연봉은 13만위안(약1950만원). 올초엔 ‘상하이다중’(上海大衆)이 최근 출시한 중형승용차 ‘PASSAT’ 2300㏄급을 구입했고, 주말에 인근의 항저우(杭州)로 드라이브하는 것이 취미다.

스씨는 2년 뒤 사장직을 동료에게 잠시 넘길 계획이다. “미국 가서 MBA를 이수할 겁니다. 처음엔 기술 하나만 믿었는데 회사 규모가 커지니 미국식 회계와 금융 기법을 모르고는 자금 확보도 어렵겠더라고요. 남에게 맡기는 게 좀 불안하긴 하지만 그냥 버티는 것보다는 ‘리스크’가 작겠죠.”

하루 하루를 개방과 혁신의 소용돌이 속에 살아가는 상하이인들은 이제 더 이상 ‘사회주의 중국인(Socialist Chinese)’이 아니다. ‘시장경제의 DNA’를 뼛속 깊이 체화해 스스로를 중국인이 아닌 ‘상하이니즈’(Shanghainese)라고 부르는 이들에게, 혁명성이나 공동체 의식 등을 강조하는 ‘중화인민공화국’식의 가치는 이미 낯설 뿐이다.


▼글 싣는 순서▼
1. 총성없는 전쟁
2. "나를 더 이상 중국인이라 부르지 마라"
3. 피말리는 자발적 구조조정
4. 강요된 현지화:"내 돈은 내돈,네 돈도 내돈"
5. 발화하는 주식시장:'미래의 노다지'인가
6. 실리콘 밸리도 두려워하는 폭발 직전의 IT산업
7. 아시아 물류의 중심지로 거듭나는 상하이

대신 이들 상하이니즈는 “베이징과 상하이 시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 개방의 속도가 너무 느리다”며 세계무역기구(WTO)가입 이후에도 통할 ‘글로벌 생존법’에 몰두해 있다. 여기엔 나이차도 없다.

자신이 운영하는 항톈호텔(航天賓館)에서 만난 마쥔(馬軍·47)사장은 앉자마자 “‘궈투이민진’(國退民進)이 아직 멀었다”며 시정부를 몰아붙였다. 아직 국영기업의 비율이 높고 민영화 작업이 더디다는 것.

96년 공군 준장으로 예편한 마사장은 “내 계급이면 공안(公安·경찰)의 부국장은 충분히 할 수 있었지만 비전이 없어 보였다”며 현재 군대 동기 16명 중 8명이 기업가라고 소개했다. ‘점심을 사겠다’며 기자를 호텔 식당으로 이끌어 놓고 정작 마사장 자신은 만두 2개만 먹은 뒤 “유럽 고객 유치를 위한 세미나가 있다”며 15분만에 자리를 떴다.

이같은 상하이니즈의 출현 배경으로는 △전통적인 상업도시 상하이 특유의 유연한 기질 △상하이의 개혁 개방을 이끄는 중앙당 수뇌부가 대부분 상하이 출신인데다 이공계 출신의 실용주의자라는 점 등이 꼽힌다. 장쩌민(江澤民)주석은 상하이 자오퉁(交通)대를 졸업한 기술 관료 출신이고 주룽지(朱鎔基)총리는 칭화(淸華)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다른 한편으로 다른 한편 평범한 상하이니즈들의 ‘글로벌화’ 욕구는 영어 공부 열풍에서 가장 잘 확인된다. 상하이 시교위의 주위룽(茱玉龍) 부위원장은 “상하이에서 영어학원을 찾거나 그곳 학생들을 만나는 것은 ‘커커우커러’(可口可樂·코카콜라) 보는 것만큼이나 쉽다”고 말했다. 기자가 탔던 상하이 택시의 운전사들 가운데 20∼30%는 영어 교육방송을 듣고 있었다.일부 대학생들의 영어공부 열기는 ‘집착’에 가깝다. 상하이의 화둥(華東)대에서 중문학을 전공한 뒤 중학교 교사로 일했던 주(茱)모씨(25·여). 그는 최근 3년동안 푸단(復旦)대로 유학 온 미국과 호주의 남학생과 각각 동거하기까지 했다. 영어 발음 교정이 목적이었다.

“나는 중국어를 줄테니 너는 영어를 다오 하는 식이었죠. 친구 중에 나같은 애들이 꽤 있죠.” 그는 4월쯤 외국기업에 원서를 낼 작정이다.

상하이 학부모들에게도 자녀의 영어교육은 “아이의 일생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라는 ‘신념’에 가까웠다. 홍장루(虹江路)에 위치한 ‘민리(民力)외국어소학교’는 상하이의 사립 외국어 초등학교 15곳 가운데 92년 가장 먼저 생긴 곳. 국립학교의 1년 학비가 100위안 정도인데 비해 이 학교는 6000위안. 그런데도 입학 경쟁률은 늘 10대1 이상이었다.

기자가 이 학교 3학년2반 교실에 들어섰을 때 52명의 학생이 “Good Afternoon, Sir!”를 외쳤다. 기자가 영어로 “한국에서 왔고, 여러분이 공부하는 것을 구경왔다”고 하자 한 여학생이 “Is this your first visit to China?”라고 물었다. “홍콩은 가봤지만 본토는 처음”이라고 했더니 이내 “What’s the difference between Hongkong and Shanghai, do you think?”라는 질문이 돌아왔다.

머뭇거리는 기자에게 샤밍(杉明)교장은 “회화 위주의 교육으로 학생들이 원어민과 대화하는 데 지장없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며 “상하이의 오늘이 중국 대륙의 미래”라는 게 내 교육철학”이라고 말했다. 그 꼬마들은 다름 아닌 상하이라는 ‘인큐베이터’에서 자라는 미래의 ‘글로벌 경제 전사’들인 셈이었다.

물론 이런 세계화 열풍에 합류한 상하이니즈는 아직 일부일 것이다. 아직 상하이 전체 인구의 절반이 채 안될지도 모른다.그럼에도 글로벌화에 대한 열망과 집착은 이런 분위기를 주도하는 관(官)과 그 필요성을 절감하는 민(民)이 착착 맞물려 놀라운 집중도와 확산력을 보여준다. “이건 아닌데…”하면서도 아이를 ‘학습 기계’로 만들어 가는 우리의 조기 사교육 광풍과는 진행 과정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상하이의 세계화 교육▼

상하이(上海)의 세계화 전략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 중 하나가 교육 분야. 특히 시정부는 이를 위해 교사들의 ‘교육 능력’을 대대적으로 보강하고 검증하기로 했다.

3년 전부터 260여개 초중고교의 영어교사들을 미국 캐나다 등에 연수 보낸 데 이어 1월4일에는 98년부터 시범운영해 온 ‘교사자격증’ 제도를 모든 학교로 확대했다. 시교위 관계자는 “앞으로 교사가 되려면 학력과 교육능력 조건 등에 대한 보다 ‘철저한’ 심사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상하이에서 교사의 첫째 미덕은 학생들의 경쟁력을 높이도록 ‘복무(服務)’하는 데 있다. 상하이 훙차오루(虹橋路)의 A중학교 교장 왕(王)씨는 “교육도 하나의 서비스이기 때문에 교사와 학생은 평등한 서비스자와 피서비스자 관계”라며 “실제 일부 학교에는 교사의 수준이 낮다고 판단되면 학생이 교사를 해고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소개했다.

한편 상하이시는 폭증하는 영어 열풍에 맞춰 영어 수업을 확대, 강화하기로 했다. 지난달 12일 끝난 상하이 공산당대회는 9월부터 초중고교의 영어수업 비중을 높이기로 했다. 현행 초등학교 3학년부터 실시되는 영어교육을 1학년부터 의무화하는 것을 비롯, 30여개의 고등학교를 선정해 시범적으로 수학 컴퓨터 물리학 역사 등의 수업을 50% 이상 영어로 진행하기로 한 것.

상하이 시교위의 차이선저(彩深蟄)위원은 “학생들을 최대한 영어에 노출시켜 세계 어디로 진출해도 경쟁력을 갖게 하는 것이 목표”라며 “고교생은 원어민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공교육이 사교육에 치여 삐걱거리고 있을 때 상하이 공교육계는 이미 철저한 시장논리로 무장하고 있었다.

<특별취재반>

반병희(기획취재팀)이승헌기자(기획취재팀) 김두영기자(금융부)이종환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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