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사람들]편지쓰는 사람들  강지원 대표

  • 입력 2001년 1월 27일 13시 13분


감옥을 향해 사서함을 열어놓고 재소자와 정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98년부터 지금까지 감옥에 수감돼 있는 재소자들과 수천 통의 편지를 주고받아온 '편지 쓰는 사람들'(대표 강지원·34·여).

강씨를 만나기 위해 최근 이 모임의 사서함이 개설돼 있는 경기도 성남시를 찾았다.

약속장소에 나온 강씨는 둥근 창모자에 검은 정장 외투를 입고 있었다. 예상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무슨 선입견이었을까? 재소자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여성이라면 당연히 청바지 차림에 단발머리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제 파마를 했어요. 이렇게 요란하게 하고 나와서 이상하게 보이면 안 되는데…"

이런 강씨에게 선입견을 감출 필요가 없을 듯했다. 어떻게 보통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재소자들과 편지를 주고받게 됐는지, 우선 궁금했던 것부터 물어보았다.

"재소자들을 죄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다 좋은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착한 사람이 더 많아요. 재소자들에게 편지를 쓰는 회원들에게도 상대방이 '죄인'이라는 편견은 없지요. 오히려 이런 사람이 어떻게 감옥에 갔을까, 궁금해하는 회원들이 많아요."

강씨가 이 일을 시작할 때 만해도 두려움이 없지는 않았다고 한다. 재소자들이라 무섭기도 했고,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적잖이 걱정이 됐다.

지난 98년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드라마를 공부하던 강씨는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는 일을 해보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편지 쓰는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원래 미술을 전공했지만 드라마를 쓰면서 익혀둔 글솜씨에 자신 있었고, 이 일이 돈으로 남을 돕는 것보다 마음을 전하는 데 좋을 것 같았다.

현재 강씨처럼 재소자와 편지를 주고받는 회원은 400여명. 혼자 시작한 일이 이렇게 커지자 강씨는 대견스럽기도 하고 책임감도 느낀다.

지금도 답장을 기다리는 재소자들의 편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막상 답장을 해줄 회원은 턱없이 모자란 형편이다.

"눈물이 많은 편이라 재소자들이 보내온 편지를 읽으며 울 때가 많아요. 대부분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들이에요. 고아로 자라나 가스배달 등 안해 본 일이 없는 사람도 있고, 감옥에 들어와 이혼을 당하고 자식이 어디 사는지도 모른 채 연락이 끊긴 분들도 있어요"

유전무죄. 강씨는 법을 통해 '죄인'이라는 판정을 받은 재소자들이 과연 인간적으로도 '죄인'이 돼야 하는지 회의가 든다고 했다.

재소자들과 직접 편지를 나눠온 강씨 만큼은 죄인을 '나쁜 인간'이 아니라 각박한 세상이 만들어낸 '나쁜 상황'으로 보는 것 같았다.

"편지를 쓰면서 재소자들이 변하는 것을 봐요. 처음에는 감옥에 있는 동료들조차 '네가 무슨 편지를 쓰느냐?'고 비웃는대요. 그런데 편지를 계속 쓰는 재소자들은 일반 재소자들과는 뭔가 달라진대요. 그건 밖에서 편지를 읽어봐도 알 수 있어요. 사람들이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편지 쓰는 사람들'의 사정이 어렵다는 게 알려지자 요즘엔 재소자들이 편지 속에 우표를 동봉해 보내기도 한다. 재소자들의 편지는 '편지 쓰는 사람들'의 사서함을 거쳐 회원들에게 다시 배달되기 때문에 우표값이 만만치 않다는 것.

강씨는 우표가 동봉된 재소자들의 편지를 받으면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화가 나고 미안함을 느낀다. 이런 일은 밖에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편지를 주고받다 보면 재소자들보다 회원들이 얻는 게 더 많아요. 재소자들도 감옥 밖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를 알죠. 그래서 회원들은 오히려 재소자들에게 위로를 받아요."

지금 강씨와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는 재소자는 약 50여명. 재소자들이 자기의 죄명을 편지에 쓰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그중 소식이 끊기지 않는 분이 '중형'을 선고받은 사람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혹시 출소해 직접 찾아온 사람은 없었느냐고 묻자 강씨는 단 1명밖에 없었다고 대답했다.

"다들 출소한 뒤에 성공하면 찾아오겠다고 말하지요. 그러나 막상 출소하고 나서 성공하는 사람은 드물 거예요. 재활이 잘 안 되니까요. 저도 그분들이 고생하고 있는 것을 알겠어요. 미안해서 찾아오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으로서는 엄두가 안 나지만 강씨는 '편지 쓰는 사람들'이 보다 탄탄해져 재소자들의 재활까지 도울 수 있는 모임이 되길 바라고 있다. 그러려면 도움이 필요한데, 무엇보다 재소자들을 잘 알고 어떻게 돕는 게 좋을지 조언해줄 전문적인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강씨는 호소한다.

"이제까지는 못했는데, 올해부터는 재소자들과 직접 만나는 기회를 가져볼 생각이에요. 밖의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재소자들 사이에서는 '편지 쓰는 사람들'이 입소문을 통해서 유명해졌거든요. 그런데도 아직 제가 남자인 줄 아는 분이 많은 걸 알고 놀랐어요."

강씨를 모르는 재소자들은 강씨를 여러 이름으로 부른다. '선생님, 목사님, 사장님, 원장님…'. 심지어는 같은 이름의 검사인 줄 알고 '검사님'이라고 편지를 보내오는 사람도 있다.

지금 강씨에게는 이일을 시작하고 1년 후 결혼한 남편이 최고의 후원자다. 강씨 가족은 화가인 남편이 그리는 벽화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남편이 요리를 잘해요, 한번 놀러오세요"

어렵지만 예쁘게 사는 '편지 쓰는 사람들'의 강지원씨. 한번 놀러오라는 평범한 인사말이 서울로 돌아가는 발길을 푸근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편지 쓰는 사람들 주소: 경기도 성남시 성남우체국 사서함 45호

편지 쓰는 사람들 (461-600)

도움 주실 분들: 농협(221117-52-202181)

우체국(102335-06-017872) 예금주 정담

안병률/동아닷컴기자mok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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