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NGO는요]노근리 대책위원회

  • 입력 2001년 1월 12일 17시 58분


지난 1994년 정은용(79)씨를 주축으로 80여명이 '노근리 미군양민학살 대책위원회'를 결성할 때까지만 해도 이 단체는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때만해도 한국의 한 조그만 농촌 마을 노근리가 세계 최강국 미국을 상대로 '사과'를 받아내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출범 첫해 대책위원회 위원장 정씨 등이 30여년간 한국전사, 미군 작전일지 등 빛바랜 수백 가지의 자료를 바탕으로 빌 클린턴 미대통령에게 보낸 청원서에는 회신조차 없었다.

그후에도 대책위는 노근리 사건을 알리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구체적인 입증자료가 없고 시효마저 소멸돼 조사할 수 없다는 무성의한 미국측 답변만 되풀이됐다.

대책위의 요구가 계속되는 가운데 당국은 사건현장인 노근리 터널에 시멘트를 바르고 페인트를 칠했다. 당시만 해도 진상이 그대로 은폐되는가 싶었다.

그로부터 5년후.

AP통신이 한국전쟁 당시 노근리에서 벌어진 양민학살사건을 긴급히 타전한 99년 9월 30일 새벽 2시(한국시간)부터 노근리사건에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캄캄한 어둠속에 묻혀 있던 진실이 빛을 발하는데 무려 49년이나 걸린 것이다.

이 보도 이후 대책위원회는 큰 원군을 얻은 듯 했다.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던 대책위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두 팔을 걷고 나섰다.

수시로 클린턴 대통령에게 노근리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청원서를 보냈고 조사과정에서 가해 병사들의 위증이 발표될 때마다 반박 성명을 냈다.

어린 나이에 부모, 형제, 자매가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을 목격한 유족들의 진술이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음은 물론이다. 대책위는 주한미국대사 등 관계자들과도 꾸준히 면담을 가졌다.

노근리사건을 만천하에 알린 공로로 대책위는 99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주는 ‘올해의 인권상’을 받았고, 다음해에는 정위원장이 미 남가주기독교교회협의회로부터 인권상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정위원장 등 유족 5명이 미국으로 건너가 가해 병사들과 '화해의 만남'을 가지고 돌아오기도 했다.

대책위가 집요하게 진실규명 노력을 벌인 결과 임기말의 클린턴 대통령이 12일 이 사건에 대한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의 유감발표에 대책위 회원들은 오히려 분노하고 있다. 여전히 미국측이 조직적인 학살을 인정하지 않고 상부의 사격명령도 없었다고 발뺌했으며 배상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날 가진 기자회견에서 7년간 대책위를 이끌어온 정위원장은 “한미 정부가 공동으로 현장발굴작업 등을 했다면 보다 정확한 진상을 파악했을 것”이라며 재조사를 요구했다. 이들은 미국 측이 제시한 장학금과 위령비 건립도 단호하게 거부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단순히 손해배상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한 강대국의 명분 때문에 약소국의 시민들이 당하는 것을 두고봐서는 안 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전쟁중이라지만 민간인 학살은 중범죄이고 미국이 이를 알고 진실을 밝힐 때까지 투쟁할 것입니다”

대책위 정구헌씨의 말이다. 대책위 초기부터 느껴온 국민들의 무관심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는 정씨는 지난 45년 동안 교편을 잡아온 선생님으로서 이 사건을 통해 시민들이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져주길 기대하고 있다.

지난 7년간 세계 최강대국을 상대로 벌여온 대책위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대책위는 미국측에 재조사를 요구하는 한편 오는 2월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국제모의재판을 벌일 계획이다. 우리 정부의 노근리 대책단이 해체되는 것도 적극적으로 막을 방침이다.

대책위 회원 80여명의 대부분은 빈농이나 영세상인으로 생활이 어렵지만 이들은 바로세워야 할 역사가 있고 조국이 있다고 믿는다. 그곳이 어디가 됐건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뛰어가겠다는 게 결성 7년째를 맞는 노근리 미군양민학살대책위원회의 다짐이다.

안병률/ 동아닷컴기자mok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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