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교수의 희망열기]정직과 진실이 애국이다

입력 2000-10-15 18:37수정 2009-09-22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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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캐나다에 갔을 때였다. 한 교회 부속기관에 들렀다가 비로소 처음으로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진실을 알게 됐다.

당시 국내에서는 언론이 통제돼 있었기 때문에 정부측에서 발표하는 내용을 반신반의하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외국언론의 기사와 현장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어째서 이런 비극적인 사실을 몰랐던가 하는 생각에 부끄러움과 죄책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

그런데 그로부터 이틀 뒤였다. 그 지역의 교포 지도자들과 만나 대화하는 시간을 갖게 됐는데 나는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된 심정을 솔직히 고백했다. 그랬더니 한 사람이 “선생님, 박정희정권 말기에 부산 데모 때는 더 비참한 사태가 벌어졌던 것도 모르십니까”라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모가 대규모로 벌어졌던 것은 사실이지만 큰 불상사는 없었다고 말했더니, 그 사람은 “최소한 300명이 총격으로 희생됐다”는 것이었다.

뜻밖의 얘기를 들은 나는 “내가 데모가 있었던 바로 다음날 부산에 갔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두세 명만 죽었더라도 부산 시민들의 표정이 그렇게 평온할 수가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 때 또 한 사람이 내게 물어왔다. 선생님은 김현희가 KAL기 폭파범이라고 믿느냐는 것이었다. 내가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구석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은 “김교수 같은 이들까지 정보부에서 조작한 사건을 그대로 믿고 있으니 한국의 현실이 너무 비참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광주의 비극을 정확히 몰랐던 것이나 교포들이 국내 현실을 왜곡해서 믿고 있는 일 모두가 우리 민족의 치부이면서 죄악상임을 부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 사회 전체가 정직과 진실이 실종된 상황에 처해 있다.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고 묻기는 송구스러우나, 돈과 수단 방법만 잘 쓰면 성공하고 출세할 수 있다고 믿어온 정치인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심정은 누구나 갖고 있다.

외국의 지도자들이 정직과 진실을 위한 노력을 무엇보다도 높이 평가하는 것은 그것이 곧 도덕성의 회복이며 민주사회 건설의 필수적 요체임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스위스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칼 힐티는 ‘어떻게 수단과 방법을 쓰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는가’라는 논문을 썼을 정도였다. 정직과 진실을 잃게 되면 그 민족은 모든 것을 상실하게 된다.

모든 학교교육은 정직을 높은 덕목으로 가르쳐야 하며 사회인은 수단과 방법을 앞세우기 전에, 사실을 사실대로 보아 진실을 밝히고 그 진실에 입각해서 객관적 가치를 추구해 가는 습관을 키워가지 않으면 안된다.

주관적 의도나 목적 때문에 진실을 멀리하거나 외면해서는 안된다. 때로는 교육자나 종교지도자들까지도 주관적 목적을 위해 허위를 비호하는 것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대부분의 사회인들은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권모술수를 정당시하거나 강요하는 일을 삼가지 않는다. 그것이 나라를 망치고 우리를 불행의 늪으로 몰아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폐습은 가시지 않고 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정직과 진실을 사랑하고 지켜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소중한 애국임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거짓과 허위 때문에 불신과 분열을 초래하며 지혜를 수단이나 방편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은 정치적 과오나 경제적 범죄보다 더 큰 해악을 조작하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일찍이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는 죽더라도 거짓말은 하지 말자고 호소했다. 거짓이 망국병임을 어디서나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가 오늘 우리 사회에 가득차 있는 거짓을 보면 무엇이라고 말할까. 정치의 민주화나 경제의 복지제도를 논하기 전에 거짓이 없는 지도자가 되라고 호소할 것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아 진실을 찾고 그 진실에 입각해서 미래지향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선한 사회를 지향하는 우리 모두의 신조가 돼야 한다.

김형석(연세대 명예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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