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士칼럼]한완상/離散의 눈물 닦아줄 정치를

  • 입력 2000년 8월 24일 18시 39분


나도 지난주 사흘 동안 많이 울었다. 이 눈물의 의미가 무엇일까? 눈물을 한낱 정보로만 보면 그것은 ‘물과 소금’일 뿐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사랑, 회한, 배신, 감사, 반성 등과 같은 참으로 소중한 인간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지난 8·15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 그들이 흘린 눈물의 깊은 의미를 우리가 제대로 깨달아야만, 사람 냄새가 나는 인간적인 민족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혈육의 살아있음에 대한 진한 감동이다. 지난 50년 동안 죽었다고 믿어 제사까지 지냈던 아버지가 꿈 같이 살아 계시니 얼마나 기뻤겠는가. 6·25전란 때 사라진 아들이 그동안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시퍼렇게 살아서 노모 앞에 나타났으니 감동의 눈물이 쏟아지지 않을 수 있을까.

죽음에서 부활한 부모나 자식을 보는 가족의 그 감동, 그것은 곧 생명 자체에 대한 진한 감동이다. 그래서 나도 울었다.

어디 그 뿐이랴. 그들의 눈물은 한(恨)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것도지난 50년 동안 너무나 억울하게 고통당했던 한이 풀리면서 흘린 눈물이었다. 남쪽에서는 가족 가운데 월북한 사람이 있으면 그 가족은 영락없이 빨갱이 가족이라는 연좌죄의 사슬에 묶여 스스로 숨죽이고 기죽이면서 얌전하게 살아야만 했다. 양한상씨의 노모는 큰아들의 울부짖는 목소리를 듣고 애절하게 “어디 갔다 지금 왔냐”라고 물었는데, 어머니의 그같은 순박한 물음 속에는 이데올로기란 독소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지난 50년 동안 그 노모와 자식들은 말할 수 없는 이념적 낙인의 고통을 겪었어야 했으리라.

이 낙인은 저주의 사슬이기도 했다. 그 눈물속에는 냉전체제가 50년 동안 민족의 삶을 부당하게 옥죄고 짓눌러온 고통의 역사가 침전되어 있다. 하기야 북녘에서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북을 배신하고 남으로 달아난 반동의 가족으로 겪은 아픔 또한 결코 가볍지 않았으리라.

이번 기회에 나는 그 아픔을 간접 체험하는 듯했다. 7년 전 통일부총리로 있을 때 동진호 선장의 가족을 만나고 장기려박사님을 찾아뵙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노인을 그리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나서 내가 받은 고통은 말할 수 없이 컸다. 비록 그때 국민의 70%가 그의 북송을 찬성했으나 냉전 수구세력이 교묘하고도 끈질기게 그의 북송을 비난했고 나를 괴롭혔다. 그때 받은 상처는 지금도 내 가슴 속 깊이 한의 응어리로 남아 있다.

도대체 정치란 무엇인가? 국민의 억울한 눈물을 따뜻하게 닦아주는 것이 정치인의 할 일이다. 그런데 눈물을 흘리는 국민의 뺨을 오히려 아프게 때리는 사람들이 정치인이라면, 그 나라의 앞날은 정말 캄캄할 뿐이다. 그런데 참으로 중요한 정치인의 역할은 억울한 일로 눈물을 흘릴 필요가 없도록 하고 기쁨의 눈물은 흘릴 수 있도록 반듯하게(正) 다스리는(治) 일이다.

민주정치가 좋다는 것이 무엇인가. 억울한 한을 풀 수 있는 장치가 붙박이처럼 그 제도 속에 박혀 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한 장치가 우리에게는 부족했던 것 같다. 그 동안 남북 양쪽에서 수많은 겨레들로 하여금 숨죽이며 가슴 조이게 했던 냉전 체제의 주술에서 이제 우리는 풀려날 때가 되었다. 이런 뜻에서 과거 남과 북의 정부가 모두 통일을 체제 안보를 위해 이용물로 활용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말은 참으로 놀랍고 경청해야 할 말이다.

통일을 악용하여 동포에게 한을 심어준 냉전체제는 이제 한반도를 떠나야 한다. 이번에 쏟아진 이산가족의 뜨거운 눈물이 앞으로 계속 쏟아져 냉전 빙벽이 마침내 녹아 없어져야 한다. 이제 이 땅의 정치인들은 한번 더 온 겨레가 서로 껴안고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게 해야 한다. 마치 베를린장벽이 무너질 때 바로 그 자리에서 베토벤의 ‘환희’교향곡이 전세계로 울려 퍼지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했듯이, 이 땅의 지도자들도 7000만 민족이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들과 함께 환희의 눈물을 흘리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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