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창의 NGO이야기]우리나라 시민운동의 시작과 지금

  • 입력 2000년 8월 22일 11시 07분


자, 지난 시간에는 참여연대의 창립까지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현재 말씀드리는 것은 후~욱 훑고 지나가는 것이라 빈 지점이 많은 이야기입니다.

이메일이든 게시판이든 옛날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언제라도 이야기해 주십시오. 저도 옛 자료 뒤적이면서 새롭게 느끼는 맛이 있으니까요.

1. 좌실련을 만들자?

그렇습니다. 참여연대가 창립되기 전에 저는 새로운 시민단체가 준비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분들이 경실련이 보수적이니 좀 더 진보적인 시민단체를 만들자고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론적 근거가 된 글은 조희연 교수의 글로 '시민사회와 시민운동(한울, 김호기·유팔무)'이라는 책에 실려 있습니다. 일컬어 진보적 시민운동론입니다.

아마 조희연 교수님의 그 견해는 지금도 크게 변화하시지는 않은 줄로 압니다. 지난해 당대출판사에서 나온 조교수님의 저술에도 그대로 실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일각에서는 경실련은 우측에 있으니 우실련, 새로 만들 단체의 성격은 좌실련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보수적 시민운동과 진보적 시민운동, 그 차이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건 토론거리입니다.

여하튼 당시에는 경실련이 김영삼정부와 가깝다고 느껴졌기 때문에 이는 새로이 시민단체를 만들려는 사람들에게는 설득력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더 중요하게는 '참여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정립했다는 것이고 '소송'이라는 운동적 형식을 새로이 확장했고 국민생활최저선운동을 통해 무엇을 지향하는가를 잘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참여연대의 창립은 경실련외에는 뚜렷한 사회개혁단체가 없어 보이던 시절 시민운동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 기여했고 재야성향의 학자, 변호사들이 시민운동으로 들어오는 통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많은 재야단체들이 시민운동단체로 변신하기 시작합니다. 지역의 전국연합 소속 단체들이 '참여'와 '자치'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기 시작하고 과거 국민운동본부 시절부터 존재하던 서울지역의 조직들도 열린사회시민연합이라는 이름으로 거듭났습니다.

즉 참여연대의 창립은 시민운동하면 경실련으로 동일시되던 흐름을 사회운동=시민운동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된 셈입니다.

2. 경실련식 시민운동의 파산

97년 3월 소문으로만 돌던 김현철의 국정개입사건이 한겨레신문의 보도로 밝혀졌습니다. 명백한 증거로 보이는 전화 녹음테이프가 한겨레신문에 의해 보도된 것입니다.

이 사건은 김영삼정부의 사실상의 몰락으로도 이어지지만 시민운동으로 보아도 소위 잘 나가던 경실련이 갖가지 우환에 휩싸이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두 달 후 한겨레신문에는 '경실련식 시민운동의 파산'이라는 제목아래 시민운동의 문제들을 짚어보는 기획기사가 실립니다. 백화점식 운동, 정부나 기업에 의존하는 재정문제, 언론에 의존하는 운동, 시민없는 시민운동 등 최근까지 시민운동에 대한 비판의 지점들이 이 당시 대부분 제기된 것입니다.

이 각각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이후 시간에 짚어 볼 계기가 있을 것이므로 이 문제들을 여기서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이보다 약간 앞서 서경석목사(경실련 초대 사무총장)의 정치진출로 인한 정치편향에 대한 시비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시민운동은 그동안 언론의 지속적인 관심에 힘입어 성장하면서 그 사이에도 약간의 비판이 있었지만 이렇게 전면적인 비판에 부딪힌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이후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말은 시민운동에 대한 비판의 중심이었습니다.

89년 창립이래 8년간 성장일변도로 나아가던 경실련은 당시 지역조직 40여개, 상근자가 본부에 시민의 신문 기자 포함 100여명, 지역조직에 상근인력 100여명 등 근 200여명에 가까운 상근자가 있는 거대 조직이었습니다.

정책위원회는 20여개에 달하는 위원회가 있었고 환경개발센타, 통일협회가 사단법인으로, 부정부패추방운동본부, 알뜰가게(재활용품매장), 생협이 특별부서 형식으로 존재했습니다.

이후 시민의 신문이 독립해 나가고 상근운동가들이 어려워진 재정형편 때문에 일부 떠나기는 했지만 골격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자, 그러면 경실련식 시민운동의 파산은 무엇을 뜻할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지요? 경실련식 시민운동은 어떤 식의 운동일까요? 이 문제도 토론거리로 남겨둡니다. 의견이 있으신 분은 게시판, 메일을 이용하시는 것 잊지마시고.

3. 정권교체, IMF와 시민운동의 성장

97년 대선을 통해 헌정사상 처음으로 야당이 집권합니다.

정권교체는 단순히 대통령의 교체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이전과는 다른 권력지도가 그려집니다. 새로운 지역적 편파인사에 대한 논란은 그래서 일어납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진통의 과정에 있습니다. 더구나 IMF사태는 우리 사회를 다시 나락으로 밀어 넣습니다.

지난 30여년간 우리 사회를 지배하던 박정희식 모델에 대한 개혁없이는 다시 일어서기 힘들다는 것이 공론이었지만 개혁의 방향을 놓고는 서로 다른 생각이 있을 법한 데 이 다른 생각들을 제대로 짚어 보지도 못하고 급한 불 끄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어느새 국가부채는 늘고 빈부격차는 더 커졌습니다. 최근의 벤처열풍은 상대적 박탈감을 더하게 합니다.

그런 와중에 시민운동은 다시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금모으기운동, 실업극복 국민운동, 민중생존권쟁취를 위한 국민행동 등 서로돕기 부터 개혁을 위한 제도적 개선까지 시민운동은 위기를 맞아 오히려 더욱 자신의 역할을 확대해 갑니다.

더구나 김대중대통령은 취임도 하기전인 98년 시민단체 신년하례 모임에 참석합니다. 신임대통령이 시민단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여 준 사건입니다.

야당이 시민단체를 일컬어 홍위병 운운하지만 이는 시민단체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까지 확대되어 가는지를 보여준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90년대 후반기 시민운동의 영향력 확대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입니다.

이 운동도 논란이 되기는 했지만 IMF이후 기업경영의 투명성제고는 경제개혁의 핵심적 이슈였는 데 참여연대의 소액주주 활동은 이 개혁과제와 맞물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대기업의 주총에 참여한 시민단체는 과거에는 없던 현상이었습니다. 증권거래법 등이 개정되고 몇몇 대기업이 참여연대를 비롯한 소액주주들의 견해를 반영하여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등 시민단체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너무나 명료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에 경실련이 정부의 예산을 감시하는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합니다. 과거처럼 정부의 정책대안을 놓고 어떤 방향이 옳으냐 어떻게 제도화되어야 하느냐를 다투던 시민단체들이 기업의 지배질서나 정부의 예산집행에 대해 감시하고 견제하는 일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환경련의 동강살리기 운동도 과거처럼 시민단체들이 한 번의 시위로 환경이 파괴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시민들로 하여금 직접 동강을 체험케 하고 동강을 살려야 한다는 공감대를 넓혀갔습니다.

이는 분명히 과거 경실련으로 대표되던 시민운동의 방식과는 다른 양태입니다. 시민들이 납세자나 소비자로서 자기의 권리를 주장할 뿐 아니라 그 권리를 통해 실제적인 결정과정이나 집행과정에 참여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민단체들의 영향력 확대는 언론에도 그대로 반영됩니다. 98년말 각 언론사들은 NGO란을 앞다투어 신설합니다. 매주 한 번씩 한 면을 할애하여 NGO소식을 전해주니 시민단체의 내부소식이랄 수 있는 것도 뉴스거리가 되기 시작합니다.

독자들의 시민단체에 대한 궁금중이 그만큼 구체적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가히 시민운동의 시대라 할 만 합니다.

시민운동은 제5부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반대로 시민단체들은 영향력이 커졌다는 것은 사회적 책임감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민단체들이 도덕적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 내부를 정비해야 할 필요를 느끼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4. 시민운동 10년과 경실련 사태, 그리고 총선연대

이렇게 주목받던 시기에 경실련은 사무총장의 일간지 칼럼대필사건을 겪습니다. 말을 하고 있는 본인이 관련되었던 일이라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는데 이 사건으로 시민단체 내부의 문제들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습니다.

내부의 민주주의 문제, 단체의 정치편향성 문제 등이 외적으로 보여진 문제라면 단체 내부적으로는 결국 변화된 시민운동의 조건에 따라 어떻게 운동의 방향을 모색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근원적으로 자리잡은 것이었습니다.

물론 후자에 대해서는 별반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기에 논점으로 부각되지도 못하고 말았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언론의 보도중에는 주간동아(당시 뉴스플러스 99년 3월 4일자)에 실린 서영아기자의 글이 참고할 만한 합니다.

경실련 사태는 시민단체도 더 이상 잘못을 덮어주는 분야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사회에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시민단체가 도덕적으로 권위를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려면 자신부터 보다 민주적인 체계를 갖추라는 것이며 정치권과 다투려면 더 정치적으로 공정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시민운동의 역사가 10년에 이르러 경실련과 참여연대, 환경련과 녹색연합 등에 대한 시민들의 인지도는 10%에서 20%에 이릅니다.(참여사회 조사결과, 1999년 1월호) 시민 열명중에 2명은 경실련을 알고 10명중에 1.5명은 녹색연합을 알고 1명 조금 넘는 사람이 참여연대를 압니다.

지지도조사와는 다른 것이지만 인지도가 이만큼 높다는 것은 시민단체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나를 잘 보여줍니다.

시민운동의 영향력 확대의 최근 정점은 총선연대 활동입니다. 총선연대의 활동에 대한 논란도 향후 시민운동의 방향과 관련해 중요한 토론거리이지만 분명한 것은 더 이상 과거의 정치질서, 정치문화로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잡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주었고 새로운 정치질서, 정치문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 잘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정치권의 질서에까지 도전한 시민운동, 그 성과에 따라 2000년대 시민운동의 방향과 영향력이 가늠될 것입니다.

자, 저는 오늘 몇가지 토론거리를 제공했습니다. 다음 이야기들을 통해 좀 더 진전시켜 볼 생각이지만 지금부터 함께 하시는 분들의 적극적인 의견개진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하승창(함께하는 시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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