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士칼럼]장상/여성교육 국가지원 늘려라

  • 입력 2000년 8월 3일 18시 41분


1990년대 이후 인류는 다양하고 급진적인 환경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21세기의 변화를 가장 충격적으로 실감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여성이 문명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한다.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이라는 고정관념은 유교문화권인 우리나라가 조금 더 심한 편이었긴 하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근까지 성차별 문화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다.

새롭게 맞고 있는 21세기가 여성의 시대라는 감격적 구호는 지금까지의 세기가 남성의 지배였음을 역설적으로 대변하기에 충분하다. 20세기는 주로 남성의 근육에 의존하여 사회적 재화를 대량으로 창출 유통 소비하는 산업사회의 원리가 지배한 시대였다. 이에 따라 문제해결의 접근방법도 남성적 특성에 따라 남성이 주도해 왔다.

21세기가 열리면서 문명의 패러다임은 지식정보화, 세계화, 네트워크화, 지배구조의 변화로 표현되는 거대한 물결로 파도쳐 오고 있다. 1980년대 퍼스널 컴퓨터의 개발은 비약적인 컴퓨터 시스템의 발전을 초래하여 지식정보의 전달매체인 인터넷의 폭발적 성장, 지식정보의 온라인 멀티미디어로의 통합, 그리고 정보통신, 방송, 엔터테인먼트의 퓨전을 동시다발적으로 촉발시킴으로써 지식정보의 거대한 바다를 이루고 있다.

20세기 냉전의 종식은 지식정보화와 더불어 세계화라는 또 다른 변화의 급류를 몰아오고 있다. 굳게 닫혀 있던 국경을 허물고 시장을 개방함으로써 무한경쟁 속에서도 국제간 상호의존성이 필연적 현상으로 증진되고 있다. 유엔을 비롯한 세계무역기구(WTO)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와 같은 국제기구는 물론 유럽연합(EU)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과 같은 지역연합이 국제사회의 질서를 새롭게 잡아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식정보화와 세계화 물결은 결과적으로 인간 개개인이 갖는 선택의 자유와 기회의 다양성이 더욱 신장돼 산업사회가 기반하고 있던 사회 각 부문의 구조와 기능, 운영방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상호의존적으로 운영되는 다양한 형태의 네트워크 형성이 필연적이며, 그러한 네트워크는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다양한 참여자들을 수평적으로 연대시키고 국민국가의 정체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이와 같이 사회적 생산양식이 ‘근육에서 두뇌(from brawn to brain)’로 이행하는 지식혁명사회에서 감성적이며, 섬세성과 유연성을 중심으로 한 관계성이 뛰어나고 또한 창조적인 여성적 특징은 양성평등의 통합성 위에 새로운 인류문명 창출의 주역으로, 대안세력으로 각광받고 있다. 국가경쟁력 차원에서도 여성인력의 증가는 불가피하다. 21세기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경제 성장률을 확보해야 한다. 가령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7000달러)이 20년 후 일본(2만달러)과 같은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 한국은 일본의 3%를 훨씬 넘는 매년 8.5%의 경제성장률을 이루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인구의 절반인 남성인력의 참여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더욱이 고령화의 급진전이 예상되는 21세기에 젊은 남성인력만으로는 적정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해 선진국에 도달할 수 없다.

경제뿐만 아니라 이미 선진권에서 정치 외교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여성이 최고 지도력으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최근의 자료는 전세계에서 대통령 또는 총리로 활동중인 여성은 11명이며, 세계 190개 국가 가운데 15개국에서 지금까지의 관습을 깨고 외무장관을 여성으로, 14개국에서 재무장관을 여성으로 임명하고 있다. 여성인력에 대한 수요가 양적으로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여성인력에 대한 관심은 이제 낭만적인 페미니즘으로서가 아니라 인류문명사적으로, 그리고 국가발전의 전략 차원에서 우선적인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수한 여성인력을 배출할 여성고등교육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국가적 지원의 수위가 한국의 국가경쟁력, 선진국으로의 시간을 단축하는 바로미터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야말로 21세기를 위한 가장 적합한 준비라는 것을 제언하고 싶다.

<장상 이화여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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