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속으로]강은교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입력 2000년 7월 28일 18시 40분


강은교 시인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시에 대한 시인의 미학적 자의식이 투명하고 아름답게 표출되어 있는 이 책은 편지, 일기, 단장, 에세이 등의 다양한 형식의 글쓰기를 통해 진정한 시의 존재방식을 탐문하고 있는 독특한 산문집이다. 문학에 대한 온갖 주장과 추문이 다양하게 분출되고, 한편으로는 치열한 문학적 논쟁이 진행되는 이 시대에 문학에 대한 확고한 자의식을 지니지 못한다면, 문학을 한다는 것의 소중한 의미를 망각하기 십상일 것이다.

이런 시기일수록 문인에게 자신의 글쓰기를 총체적으로 점검해 보는 행위는 더할 나위 없이 의미 있는 작업이리라. 아울러 더욱 근원적으로는, 대부분의 뛰어난 문인들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정교한 자의식과 진솔한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도대체 왜 시를 쓰는가’에 대한 치열한 자의식이 실종된 시인에게서 탁월한 시가 나오는 예를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나는 강은교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으면서, 잠시 망각하고 있었던 문학과 시의 근원적 의미에 대해서 다시금 성찰해보는 소중한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다.

◆시인의 문학관 담은 산문집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지배하는 키워드들은 ‘소수’ ‘변방’ ‘고독’ ‘격리’ ‘꿈’ ‘침묵’ ‘외로움’ ‘소외’ 같은 단어들이다. 강은교의 문학관은 기본적으로 소외된 아웃사이더의 정서를 대변한다. 허만하 시인의 경우에도 해당되지만, 부산이라는 시인의 지역적 조건도 이러한 아웃사이더의 정서 형성에 중대한 영향력을 미친 요인 중의 하나로 보인다. 그리하여, ‘소수의 문학에는 결코 안이한, 그 시대의 규범이 지배하는 내용이 있을 수 없네. 지배집단적인 내용의 뒤편에 가려진, 당대의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 미처 보지 못하는 것, 미처 듣지 못하는 것들이 있을 걸세.’ (나무의 뼈를 집게), ‘모든 예술은 소외의 힘에서 창조됩니다’ (65쪽), ‘시를 쓴다는 것은 일종의 격리이다’ (133쪽) 등등의 표현들은 시인의 문학관을 명쾌하게 드러내고 있다.

나는 문학을 하면 할수록, 자신에게 주어진 고독과 소외를 숙명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지독할 정도로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서 투명하게 성찰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시인이나 문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강은교는 진정한 시인이 아닐까. 바로 다음과 같은 대목은 시인의 엄밀한 자기 성찰의 표정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그대의 문학은 오늘 잠시 찬탄받았는가, 또는 스스로 ‘찬탄’하였는가, 하나의 문학을 이루었으면, 얼른 그 문학의 ‘틀’을 떠나게. 그 찬탄 속에 머물러 있지 말게. ‘찬탄’은 가장 ‘틀’을 만들기 쉬운 것이니….” (39쪽) 그런데 이러한 경지에서 더 나아가, 어떤 면에서는 탈주나 소외의 표정 자체도 하나의 상투적인 행위나 안이한 타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까지도 시인이 명심해 주었으면 한다.

◆'서늘한 나침반'의 용도는

사실 소수, 탈주, 고독, 변방, 아웃사이더 같은 단어들은 또 다른 의미에서 이 시대의 유행어이자 손쉬운 표현일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인식이 시인으로 하여금 보다 독창적이며 개성적인 글쓰기를 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도 문학을 지망하는 이에게, 그리고 매너리즘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문인에게 강은교 시인의 산문집은 참으로 서늘한 나침반이 되어주리라. 특히, 지금 막 시를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산문집을 강력하게 권한다. 하여, 이 산문집을 통해 자신의 문학관이 해체되는 행복한 체험을 하게 되기를.

문학과 시에 대한 시인의 진솔한 성찰과 자기 돌아봄이 앞으로 씌어질 시의 소중한 밑거름으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

권성우 (문학평론가·동덕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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