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구 칼럼]부패와의 전쟁

  • 입력 1998년 10월 23일 19시 06분


부정부패를 개탄하고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높다. 신문을 펼쳤다 하면 하루도 빠짐없이 현기증 나게 지면을 장식하는 것이 공직비리고 뇌물이야기다. 신문은 사회의 거울이라는 말이 맞다면 이건 예삿일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매우 위중한 상황에 와 있다고 봐야 한다. 또다른 국가위기의 신호다. 빨리 손쓰지 않으면 국가대들보가 내려앉지 말라는 법이 없다.

▼ 공직비리에 국가 위기 ▼

역대 정권치고 출범할 때마다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지 않은 적이 없다. 사실 그동안 수없이 잡아들이고 또 옷을 벗겼다. 그럼에도 공직비리는 줄어들 줄을 모른다. 오히려 갈수록 대형화 지능화하고 있다. 손대는 곳마다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엮여 나오는 부패의 유착고리는 구조적이고도 뿌리깊다.

감사원이 제출한 ‘공무원범죄 발생 통보서’라는 국감자료를 보면 작년 1월부터 금년 8월말까지 모두 1천9백37건의 공무원범죄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한달 평균 97건인 셈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적발건수일 뿐 ‘발생’이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실제 적발되지 않고 물밑에 감춰진 빙산의 본체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비리유형도 가지가지지만 경찰 국세청 할 것없이 힘있는 부서일수록 고질화돼 있다. 작은 상가 하나 짓는 데도 30여명의 공무원이 넘보고 공사비의 20%는 뇌물로 바쳐야 한다는 어느 보도가 사실이라면 보통 병든 사회가 아니다. 도대체 급행료로 기름칠을 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 공사현장책임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시공기술이나 안전관리가 아니라 ‘관련 공무원 잘 모시기’라니 기가 막힌다.

형법상 뇌물수수죄는 받는 자나 주는 자나 똑같은 비중으로 처벌토록 돼 있다. 부정한 돈을 은밀하게 건넬 때는 반대급부를 노림이 분명한 이상 원인제공의 책임을 물어 증뢰자도 가차없이 법대로 다스린다면 사정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공직자 중벌과 증거확보 차원에서 주는 자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처벌하거나 불문에 부치고 있다. 이런 수사관행이 부패먹이사슬을 더욱 키운 측면도 없지 않다.

▼ 돈준사람 엄중처벌을 ▼

부정부패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까지 뇌물방지 국제협약운동에 나설 만큼 전세계적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유사 이래 뿌리뽑히지 않는 3대악이 도둑 매춘 뇌물이라는 말도 있듯이 동서고금을 통해 부정부패란 늘 있게 마련이다. 사회가 항상 샘물처럼 맑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 문제다. 어느 한곳 성한 데 없이 이렇게 마구 썩어서는 곤란하다. 이런 부패구조부터 고쳐놓지 않고는 나라에 될 일이 없다.

부정부패가 기승을 부리면 공정경쟁의 틀은 무의미해진다. 변칙이 판을 치면서 비효율과 비생산성이 사회전반을 지배하게 된다. 규칙을 지키는 자만 바보가 되는 이런 뒤죽박죽 사회에 국가경쟁력이 돋아날 리 없다. 정상적인 국가발전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서 부정부패는 그냥 방치할 수 없는 사회공적(公敵) 제1호다. 포도는 썩으면 달콤한 술이나 되지만 공직자가 썩으면 나라를 망친다. 이런 독버섯을 놔두고 무얼 개혁하겠다는 것인가. 구국적 차원의 대처가 시급함을 절감한다.

지금 김대중(金大中)정부가 깃발을 높이 세운 ‘제2의 건국’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아직 귀에 쏙 들어오는 게 없다.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차제에 부정부패 추방운동을 제2건국의 핵심 아젠다로 삼는 것은 어떨까. 부패를 척결하지 않고는 경제회생도, 제2건국도 헛구호일 뿐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실제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이보다 더 화급한 국정과제는 없어 보인다.

▼ 국정과제로 해결해야 ▼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엄두가 안날 것이다. 그러나 이제 부정부패만은 추방하자는 데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대통령이 작심하고, ‘부패와의 무한전쟁’을 선포하고 나선다면 국민적 호응은 확실하다. 뇌물 안주고 안받기 범국민 의식개혁운동에 불을 붙일 수 있다. 특검제도 좋고 싱가포르식 부패행위조사국도 좋다. 비리를 저지르면 반드시 패가망신(敗家亡身)한다는 인식을 백벌백계(百罰百戒)로 분명하게 심어줄 필요가 있다. 재임중 이것 하나만 해내도 김대중정권은 평가받을 수 있다.

남중구<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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