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구칼럼]중앙정치 볼모된 지방선거

  • 입력 1998년 6월 5일 19시 41분


6·4지방선거는 결국 또 한번의 일그러진 선거로 막을 내렸다. 돈선거가 줄어든 것은 진일보로 평가할 만하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가 전에 없이 추잡한 선거로 낙인찍힌 데는 중앙정치의 책임이 크다.

여 야당은 선거결과를 놓고 서로 아전인수하기에 바쁘지만 어느 당 소속 후보가 더 많이 되고 덜 되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는 지역살림을 바로 할 사람을 제대로 뽑았느냐다. 이 점, 정치권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

▼ 선거개입 자제했어야 ▼

물론 지방선거에도 정당후보공천(기초의원은 예외이지만)이 허용되고 있다. 또 새 정권의 중간평가라는 주장도 있었다. 게다가 IMF관리체제라는 비상시국이다. 비록 지방선거라 해도 그 결과는 곧바로 정계개편을 비롯, 정국향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었고 보면 어느 정도 중앙정치가 개입하는 것은 불가피하고 또 막기도 힘들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렇더라도 초장부터 여야 당 수뇌부가 총출동해 전국의 선거현장을 누비며 치고받은 중앙정치의 난무는 가관이었다. ‘내고장 일꾼’을 뽑자는 지방선거인지 정권의 향방을 결판짓는 대선 총선인지 도무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중앙에서 그만큼 싸움질을 하고도 모자라 지방선거 현장까지 힘겨루기 무대로 삼아 선거판을 한없이 오염시키고 휘저어 놓았으니 이러고도 무슨 ‘지방자치 정착’을 운위할 수 있을 것인가. 아무래도 도가 지나쳤다.

정치인들은 착각하고 있는지 모르나 우리가 바란 지방선거는 결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지방선거는 어디까지나 지방자치 일꾼을 뽑는 지역행사다. 후보들이 각자 내놓는 정책을 보고 내고장 살림을 가장 잘 꾸려갈 인물을 지역주민 스스로 골라 지역살림을 맡기자는 것이 본래 취지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여야 정치인들도 가급적 선거개입을 자제하고 지역주민이 차분하게 자신들의 일꾼을 뽑을 수 있도록 놓아두었어야 옳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참으로 무분별하게 설쳤다. 이제 겨우 2기째로 접어드는 풀뿌리 지방자치의 싹을 여지없이 짓밟고 다니며 지방선거의 의미를 형편없이 훼손하고 왜곡시켜 놓았다. 지역감정을 주로 부추기고 조장한 것도 그들이다. 심지어 중앙정치의 후견이 없으면 지방자치는 발전이 안된다고 외친 정당지도자도 있었다.

중앙정치의 쟁점이란 쟁점은 모조리 다 등장시킨 것도 볼썽 사납다.

그 중에서도 최대 쟁점은 환란책임과 정계개편이다. 여권은 이번 선거의 승리를 정계개편의 명분과 핑계로 삼아 몰아붙이겠다는 것이고 거기에 위기의식을 느낀 야당 또한 목숨 건 저항논리로 맞서 가는 곳마다 시끄러웠다.

심하게 말하면 지방선거라기보다 정계개편 찬반 투표같은 형국이 돼버렸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건 지역일꾼을 뽑는 지방선거의 쟁점으로는 전혀 맞지 않다. 내고장 살림과 이런 중앙정치쟁점들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 바람에 지방선거에서 꼭 필요한 후보자질이나 지방경영능력 검증은 뒷전으로 밀리고 주민들의 선택만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가뜩이나 무관심한 유권자들이 더욱 등을 돌리자 관심을 다시 불러모으려 기껏 동원한 것이 또 치사한 인신공격과 비방전이다. 기대를 모았던 TV토론만 해도 낯뜨거운 저질공방으로 막판에는 시청률이 고작 5%대로 떨어졌다. 극도의 정치혐오와 냉소 무관심을 증폭시킨 결과가 바로 38년만의 최저 투표율로 나타났다.

▼ 최저투표율 반성할 때 ▼

순수해야 할 지방선거가 중앙정치의 대리전 양상으로 변질된 것도 문제지만 마치 중앙정치의 파견원을 뽑는 선거처럼 전락해 버린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지방자치의 중앙정치 예속화, 장식물화가 몰고올 폐해는 물어보나 마나다. 그렇게 해서 뽑힌 당선자들이 지방살림에 전념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다. 지방자치폐지론 지방선거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는 이 후유증을 중앙의 정치인들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남중구(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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